[리추얼]음악 속에 켜켜이 포개어진 과거의 나에게서 충전

보리 bori
2020-12-19
조회수 453

최근에 읽은 유병욱 작가의 <평소의 발견> 

책에 등장했던 카피 중 '노래는 현존하는 최고의 타임머신'이라는 표현이 무의식에 깊이 새겨졌던 듯하다. 당시 책을 읽다 말고 글로 묘사된 음악들을 찾아 감상했던 기억이 해거름 따뜻한 햇살처럼 기억에 남았다. 

이런 무의식의 끌림이었을까, 믿고 보는 취향을 가진 사람의 추천 때문이었을까 

모두 다 하고 싶었던 밑미 온라인 리추얼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막상 결정은 충동적으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를 신청했다.


첫 2주간은 아침에 음악 한곡을 집중해서 듣고 10분 동안 음악과 감정을 기록한다.

출근 전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음악을 듣고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은 작심삼일보다 빨리, 단 이틀 만에 깨졌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고 노트에 손글씨를 쓰는 상상 속의 나는, 출근길 지옥철 사람 사이에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을 쓰고 있었다.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효과에 감사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최근 2년 정도, 나에게 출근길은 하루 사이 잔뜩 찬 이메일과 SNS에 그득한 각종 새로운 정보들을 머릿속에 흘러넘치게 부어 넣어 주어야 하는 시간이다. 가장 정신이 말똥 할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털어 넣어 주었다.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생각을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물을 주는 것을 포기했다. 잠시 내려놓고, 나의 선택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렇게 2주간 음악으로 출근을 했다. 어느 날은 음악이 존재도 잊고 지내던 나의 과거 SNS로 인도하기도 했고,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책으로 연결되어 출근 전 잠깐 꿈을 꾸고 최면에서 풀리듯 깨어나는 듯한 경험도 했다. 신기하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정보의 인풋은 줄어들었는데 생각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바지런하게 뭔가를 읽고 배우며 가득가득 채워 넣어도 항상 부족하다 느껴져 동동거렸는데, 음악을 들으며 갖는 잠시 멈춤의 시간은 주변을 보고, 그리고 나를 보게 만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일을 할 때도 대화를 나눌 때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막상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알맹이는 모르는 겉핥기. 최근 나는 그랬다. 그동안 쉬지 않고 불안한 마음에 욕심만 앞서 보내왔다.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외부적인 탓도 있겠지만 올해 여행을 다녀온 적도 없었다. 쉬지 않고 물을 주니 숨을 쉬지 못해 곧 뿌리가 썩어버릴 지경이었다.

마음으로 빛과 바람이 통하니 오히려 회사 생활도 안정되어갔다.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에도 고슴도치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유하게 팀의 분위기에 숨을 불어넣어주고,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위로해 주고, 내가 도와주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내 코가 석자인 주제에 :)


3주 차부터는 저녁시간에 리추얼이 이어졌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은 램프의 지니가 보물상자를 열어준 느낌이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니, 마음이 그렇게 풍요로워질 수가 없었다. 아티스트라도 된 냥, 영감이 퐁퐁 샘솟았다. 쓰고 싶은 글도 정신없이 적고, 그 음악이 인도하는 나의 과거와 마주하며 추억놀이를 했다.

존경하는 아이유가 그랬다. 작사를 할 때 과거의 자기 일기장에서 글감을 찾아서 활용한다고, 본인은 과거의 나를 꺼내 먹고 있다고... 음악을 듣고 매일 짧은 글을 쓰는데 나의 과거를 먹고 산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음악을 들으며 떠오른 나의 과거를 풀어 글을 쓰고 있었다. 남이 만든 남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구겨 넣는 게 아닌 내가 만들어낸 나의 창작물을 짧게나마 하나씩 만들어내는 게 뿌듯했다. 개인적인 감정과 흐름이 맞아떨어졌고 너무 행복했다. 

감정이 풍부해져서 저녁시간 거실의 백색 형광등 대신 노란 조명을 갖고 싶었고, 블루투스 스피커도 갖고 싶어 졌다. 그렇게 '더 스피커'가 내게 왔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모아보겠다며 애쓰다가 오랜만에 소비를 하니 간만에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다. 역시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시즌 함께 읽었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 나왔던 문구처럼,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으니 나는 행복했다. 

밑미 온라인 리추얼을 통해 내 채널에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조금 충동적이었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엄마의 환갑 기념 속초 여행도 다녀왔다. 엄마가 행복해 한 만큼 또 내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더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될 지금의 나를 꺼내먹을 수 있게, 물만 잔뜩 부어 넣지 않고, 햇빛도 쏘이고 바람도 씌워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그렇게 살자. 


나만의 플리 기간 작성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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