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두번째 24살의 보물찾기와 보너스[원데이 원드로잉 x 짧은 글쓰기]

박윤****
2021-04-30
조회수 482

이런 게 갱년기일까. 시도 때도 없이 주책맞게 터져버리는 눈물보 덕분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문득 다른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바꿀까, 전화번호를 바꿔볼까. 가당치도 않은 상상도 보탰다. 이름, 전화번호는 내 본질이 아닌데. 다른 나로 살고 싶다면 내가 변해야 한다.

 

장애인 보조기기, 특허, 아내, 엄마, 딸 나의 어떤 역할과도 관련 없으나 하고 싶은 일 목록에 계속 등장하는 일들을 해 보기로 했다. 까짓 것 하면 된다 라는 용기가 문득 솟았다. 내가 하는 중증장애인 관련 일들. 그 분들의 일상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사진과 영상은 사용할 수 없다. 글로 하는 전달에는 한계가 있다. 그림일기, 이왕이면 스피디하게 그릴 수 있는 마카가 좋겠다. 취향대로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작가의 원데이클래스를 찾아 갔다. 사람 그리기 연습이 필요해서 지인의 SNS 계정의 사진을 찾아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와 지인들에게 나름 이벤트 같은 시간이었다.

  장애인 보조기기

=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중증의 지체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 일을 한다. 내 사용자의 일상을 그림으로 나누고 싶었던 처음의 꿈 =

 

100장 정도 그리고 나니 회의감이 들었다. 의무감 가득한 그림 그리는 시간은 점점 재미를 잃어 갔다. 알아주는 이도, 응원하는 이도 없는데 계속해야 하나. 무엇보다 SNS 계정에 연결되어 있는 일로 만난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이 느껴졌다. 네가 그림을 왜 그려. 그려서 뭐할 건데. 그 시간에 일이나 하지. 좀 더 솔직하자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목소리이다.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된 디자이너 동료가 아이패드를 강하게 권한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눈물보를 틀어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던 시기. 당장 손에 넣기 위해 재고가 있는 매장을 찾아 손에 넣었다.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다. 다시 같은 질문과 회의감이 올라온다. 이번엔 당당하게 응대했다. 재미있잖아. 그거면 됐지.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로 살고 싶었다. 인스타계정을 만들었다. 프로필에 개인 정보는 모두 감추고 지인을 팔로잉하지 않았다. 최소한 여기서는 새로운 나, 척하지 않는 그냥 나로 살아보는 거야. 철저하게 그림과 글로 나를 표현한 계정의 목표 팔로워는 10명.  그래도 헛헛했다. 외로웠다. 친구가 필요했다. 실수해도, 실수하기도 전에 실수할까봐 벌벌 떨고 있는 나에게 “괜찮다”고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친구. 밑미를 찾고 회원가입을 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카드정보를 모두 입력하고도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림일기라니. 나 아직 사진 보고도 잘 못 그리는데. 일기면 보지 않고 내 모습을 상상해서 그러야 하잖아. 어쩌지. 롤리님 그림, 후기의 그림. 거 봐 모두 작가잖아. 나는 자격 미달이야. 아니지. 잘하면 혼자 하면 되지, 왜 함께 하겠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일단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거, 알면서 왜 그래? 혼자 수 일 동안 엄청 싸웠다.


결국 새로운 주기 시작 직전 두 눈 딱 감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단체대화방에 초대되었다. 심장이 활활 타올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줌 미팅에 참가했다. 롤리님이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선 하나, 그저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색만 칠해도 된다고. 그것도 그림이라고. 매일매일 잘해도 좋지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뭐 이래, 너무 괜찮은데. 히히. 말도 안 되게 그려 공유한 튤립 사진에 댓글이 달린다. 세상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무지 많다고. 자기만의 스타일과 이야기가 있으면 된다고. 나보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젊고 예쁘고 멋진 친구들이 나를 윤경님이라고 불러주며 에너지를 매일 밤 가득 충전시켜준다. 은혜에 보답하듯 나는 매일 그리고 쓰고 있다.

 

 = 전시회도 가고, 골라입는 옷은 흑백TV에서 칼라TV로 진화하고, 아크릴화 원데이도 도전!! =


부대끼며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일상. 다른 사람은 내가 아니므로 나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서로 양보하고 포기하면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에너지는 매일, 매순간 고갈될 수밖에 없다.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를 보충할 재미는 삶의 필수요소로 꼭 포함되어야 한다. 재미를 포기하면 연료가 바닥나 엔진이 정지해 버리는 자동차처럼 급정지할 수 있다. 부릉부릉 신나게 달려달려를 하기 위해 하루 단 몇 분이라도 내가 정말 원하는 선물을 나에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눈물보 틀어막기는 포기했다. 터져 흐르는 눈물의 맛이 달콤하게 변해서 그냥 두기로 했다. 가끔은 더 흘러라 응원도 보낸다. 밑미는 잘 살아낸 나의 두 번째 24살에게 주는 “보물”이다. 그리고 내버려 두기로 한 눈물보는 보물찾기 숙제를 잘 해서 받은 보너스이다.

 = 밑미가 선물한 나^^ =

 

치열하게 살고 있는 동네 예쁜 동생에게 밑미를 은근히 권하고 있다. 아직은 에너지가 남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예쁜 동생의 에너지가 바닥나 급정지하기 전에 함께 하는 재미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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