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고민상담소] 고민이 있다면, 밑미에게 털어놔 보세요!

스스로 비난하는 은이 님의 고민

은이 님의 고민

습관적으로 저 자신에게 '내가 그럼 그렇지. 난 못해.'라고 비난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질책, 훈계, 비교의 언어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상담을 받았지만, 뿌리 자체가 치유되진 못했고, 계속 저를 살피고 보듬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저를 밀어붙일 때가 많아 자꾸만 자신을 자책하고, 누군가가 저를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임신 중인데 아이에게 제 부모 같은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나고,  상담을 시작하고 싶지만, 예전의 기억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두려워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박현순 님의 답변

은이 님, 안녕하세요? 우선, 다른 걸 떠나서, 은이 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새로운 생명을 나의 몸 안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저도 두 아이의 엄마다 보니, 그 시절이 참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은이 님이 보내주신 글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저의 경험과 많이 비슷해서, 잊고 있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서 잠시 멈추어졌습니다. 현재 임신 중이라셔서 제 마음이 특히 더 쓰이는 것도 발견함을 알아차립니다. 저는 ‘알아차림’을 좋아해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욕구를 만나는 시간이죠. 매 순간 알아차릴 순 없지만, 중요한 것들은 꼭 놓치지 않으려 해요.

은이 님, 어린 시절에 질책, 훈계, 비교의 언어들을 많이 들으셨네요. 존재가 통째로 아팠을 그 말들이 지금까지도 은이 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요. 우울증도 심하셨고, 상담도 오랜 시간 받으셨는데 참 질기네요. 그렇죠? 떨쳐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막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행복감을 느끼는 그림을 그릴 때도 펜 촉에 눈이 달린 것 같으셨다니,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사람의 뇌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주변의 말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사춘기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때 꺼내어서 정리를 해요. 부모님께서, 친구들이, 선생님이 한 말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 내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험한 세상 잘 살아가도록 머릿속에 깊이깊이 기억해 둔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바로 꺼내어 쓸 수 있도록 늘 옆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죠.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바로 튀어나와서 우리에게 알려줘요. ‘너, 이런 사람이라고 했지? 네가 그러면 그렇지. 역시 못한다니까.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더 준비하고, 잘했어야지. 이렇게 해서 되겠어?’라며 우리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뇌는 어떨 땐 약간 멍청해요. 실제로 어떤지 잘 모를 때가 많아요.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자동화 시스템이 된 건 수정이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 들리는 말은 진짜가 아니에요. 뇌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검증되지도 않았고, 믿을 수도 없어요. 이제부터 은이 님께서 진짜를 찾는 거예요. 제가 아까 ‘알아차림’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죠. ‘알아차림’을 해 보는 거예요. 머릿속에서 나를 질책하는 말이 들릴 때, 은이 님이 잠시 멈춰서 그 목소리와 대화를 해 보세요.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 잠깐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처음이라 실수했어. 마음이 급하니까 흔들렸어. 그리고, 나 잘하는 것도 많아. 10개 중에 1, 2개 실수잖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워. 지금 실수한 걸 기억해서 다음에 더 잘해 볼게!!!’라는 식으로요. 습관적으로 들리는 말은 어릴 적, 나에게 했던 말들이잖아요. 그 말을 하셨던 부모님 역시 은이 님을 온전히 존중하고, 따듯한 시각으로 말씀해 주신 게 아니잖아요. 진짜 은이 님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힘을 낼 수 있어요. 이제, 은이 님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니까요.

어린 시절의 은이 님을 떠올리면, 어떤 아이인가요?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장점과 고유한 모습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능력이 필요했나요? 누구나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잖아요. 어린 시절의 아이가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으로 온전히 바라봐 주세요. 지금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벅차고 신비한 사랑처럼 은이 님도 그러한 존재랍니다.

저도 현재 중학생인 첫째를 임신하고 6개월 차에 상담을 받았을 때, 이런 말을 하며 울음이 터졌어요. “이 아이도 저처럼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해요? 인생이 너무 불행하고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런 엄마여도 괜찮을까요?” 엄마가 된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두렵고 불안했어요. 상담사로서 상담을 받고, 공부를 많이 해도 제 뿌리가 치유된다는 느낌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답니다. ‘괜찮아, 내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사랑해.’라는 목소리가 나오던 날이 지금도 생생해요. 엄마로 살며, 치열하게 나를 만나게 된 덕분이랍니다.

은이 님께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프지만, 엄마라서 용기를 내고 싶으신 거죠. 상담이 꼭 아픈 기억을 직면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현재 느끼는 두려움, 불안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단단해졌을 때, 선택할 수 있어요. 은이 님의 상태와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야기하고, 보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나’로도 충분하답니다.

은이 님, 아픈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신 것이 대단하고,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삶을 살아오신 자체가 용기였어요. 며칠 동안 은이 님의 글을 품으며 떠올렸던 저의 마음이 온전히 은이 님 마음에 닿길 바라며, 응원합니다. 어떠해도 우린 모두 소중한 존재랍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내 고민 얘기하러 가기

10 0

COMPANY

(주)밑미 / 대표이사 손하빈

사업자번호 162-88-01794

통신판매신고번호 제 2020-서울성동-01873호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길 44, 4층

이용약관 l 개인정보처리방침

 © meet m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