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될까 두려운 흰동가리의 고민

흰동가리의 고민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요...”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이 해외 취업으로 바뀌면서 해외에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희망하는 국가에서 취업할 수 있는 경력이 없기도 하고, 당장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일단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할 수 있나? 한 지역에 오래 머물 수 있나? 멘탈이 약해서 금방 그만두면 어쩌지? 해외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나? 등등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아요.
이런 생각이 가득한 머릿속을 헤집다 보면 '내가 아버지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묻혀 있습니다. 이걸 마주할 때마다 아직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적이고 힘듭니다. 아버지는 최소 십수 년 전부터 은둔하다시피 경제 활동 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형태로 집에서만 지내셨습니다. 10대 때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하고 나름대로 좋은 대학을 갔지만 그 대학이 저한테 너무 과분하고 버거운 존재 같아요. 취업을 못 한다는 인문계 학과지만 동기들은 취업 준비도 잘하고,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은데 저는 대학원을 자퇴한 이후로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박적으로 경제적 독립을 꼭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일머리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도 늘 일 못해서 잘리고, 버티기 힘들어서 금방 그만두는 걸 반복하다 보니 나도 아버지처럼 일을 못 한 채로 그냥 지내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습니다. 해외에서 취직하고 싶은 마음도 너무 비현실적인 거 같고, 너무 늦은 거 같고, 그렇다고 취직하기에는 서류부터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도 잘 안 구해지거나 일을 잘 못하는 모습에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요. 그래도 조금씩 그림을 그렸었는데 이제는 그림도 잘 안 그려져요. 나름대로 오기를 부려서 자취해서 아르바이트든 프로그램이든 신청하고 지원하고 그러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제 모습에서 아버지가 계속 보이는 거 같아서 무섭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흰동은 아버지를 포함한 어떤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니 나의 편이 되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을 해봐요.”
흰동가리(이후 흰동), 반가워요. 잘 왔습니다. 저도 아들이자 아버지이기 때문일까요? 고민 글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아버지처럼 될까 봐 무섭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네요. 흰동이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알바를, 어떤 국내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오래 묵은 두려움과 반복되는 실패들, 막막한 상황과 미래까지 제가 흰동이라도 무력감과 좌절감에 움츠리고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부터,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은 어떤지부터 점검해 보기를 권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잠드는지, 수면의 질은 어떤지, 평일에는 주로 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식습관과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주말은 어떤 일정들로 채우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등 흰동의 일주일을 자세히 기록해 보세요.
그다음에는 청소년 시절부터, 대학 공부, 대학원 진학과 자퇴, 아르바이트와 취업 노력, 유학과 해외 취업 고민 등 일에 관련된 흰동의 최근의 역사를 정리해 보세요. 고민 글처럼 요약본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날짜와 기간까지 포함해서요.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여기에 이르렀구나’,‘지금 나의 상황은 이렇구나’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요. 그래야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 첫걸음은 어떻게 내디뎌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잖아요.
사실 위의 내용은 흰동이 저를 찾아 상담실에 온 내담자라고 생각하고 제가 궁금한 것들을 적어본 거예요.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흰동의 변화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마도 흰동에게 필요한 건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작 행동이에요. 흰동에게 도움이 되지만 도중에 힘들어서 그만두지 않을 만큼 비교적 현실적이고 쉬운 과제요. 불규칙적이고 몸과 마음에 해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건강하고 규칙적인 시간 관리일 수도 있고요. 전일제 아르바이트, 취업에 곤란을 겪고 있다면 파트타임 일자리 찾기일 수도 있어요. 완전한 경제적 독립이 어려우면, 아주 부분적인 독립부터 해나가면 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자꾸 가라앉고 자신감과 대인관계 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면, 편안하고 즐겁게 누군가와 함께 대화하거나 배우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모임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어요.
흰동은 지금 이미 늦었다고, 그럴 시간 없다고, 당장 제대로 된 취업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여러 번 실패하고 있는 과제는 지금의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일 가능성이 높아요. 실패를 거듭할수록 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마저 잃고 작아져 목표와는 점점 더 멀어지기도 하고요.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고,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장의 방법이에요. 그 과정에서도 실수와 실패는 있겠지만, 다음 걸음을 위한 배움으로 삼을 수 있고요. 흰동과 속도가 다른 타인과의 비교와 비난이 괴로울 수는 있지만, 그게 흰동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멈추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도 흰동이 시작해야 할 것들 중에 하나겠네요.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흰동의 이야기로 답변을 마치려고요. 최근 십수년 이전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흰동의 삶에, 오늘에 집중하고 싶네요. 흰동은 아버지를 포함한 어떤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에요. 흰동의 삶이에요. 흰동이 선택할 거고요. 흰동이 살아낼 거고요. 흰동이 책임질 거예요. 그러니 자신의 편이 되어 줍시다. 누가 뭐래도 흰동은 흰동의 손을 잡고, 응원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사랑해줍시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작합시다. 저도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종종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요. 종종 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들도 있습니다. 응원의 마음을 보내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