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후, 사회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어리아리의 고민

어리아리의 고민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5년 전쯤 회사를 다니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버티다가 결국은 퇴사를 반달 남겨놓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직을 하지 못하고 인생에 약 5년의 공백이 생겨버렸습니다. 약 2년 정도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나가보려고 했지만 이전에 번아웃이 너무 컸던지라 쉽게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3년 정도 시간이 더 지나버렸네요.
작년에는 국가기관의 프로그램을 받아서 취업을 다시 해보려고 했지만 이력서나 이런 걸 다 작성을 해도 면접을 못 보겠더라고요. 심지어 오퍼가 와도 무언가 두려운지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한번 대화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저를 가로막더라고요.)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1년이 지난 지금 방어기제나 저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지긴 했습니다만…. 지금 나이나 경제 상황을 보면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나가지 못하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밑미레터 에디터 은지의 답변
“길고 긴 생각의 터널에서 빠져나와서 딱 한 걸음만 움직여 보세요.”
어리아리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사연에 써주신 ‘5년의 공백이 생겨버렸습니다’라는 표현을 읽으면서 어리아리님이 지난 몇 년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어요. 처음에는 건강을 회복하느라, 다음에는 번아웃이 남긴 흔적 때문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긴 공백으로 느껴지시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왜요. 나이나 경제 상황 때문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이해가 됩니다.
사실 어리아리님이 공백이라고 표현한 그 5년이라는 시간은 긴 번아웃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은 번아웃이 며칠 혹은 몇 달 푹 쉬면 괜찮아진다고 착각하지만 심한 번아웃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해요. 번아웃은 단순히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우리를 정서적으로 완전히 소진시켜버리거든요. 번아웃을 겪으면 내가 그동안 믿었던 가치들, 이를테면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올 것이고, 내가 마음을 쏟으면 그만큼 알아봐 줄 것이란 기대 같은 것들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지게 돼요. 그렇게 무너진 것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알아차리고 다시 회복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에요. 그 시간 동안 나의 건강을 회복하고 또 내가 가진 방어기제나 나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는 건 너무 반가운 일이에요. 그러니 내가 보낸 5년의 시간을 공백이라고 받아들이는 대신, 내가 내 삶을 재건하고, 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지금은 실감 나지 않겠지만 어리아리가 보낸 이 5년의 시간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자, 그럼 이제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까요? ‘오만 생각이 저를 가로막더라고요’라는 표현을 보니 지금 어리아리는 ‘생각’이라는 늪에 빠진 것 같아요.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해요. 그동안 밖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는 나를 들여다보고 회고하고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졌을 테니 계속해서 생각이 작동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길고 긴 생각의 터널에서 빠져나와서 뭐든 일단 행동하는 것이 필요해요.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자동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계속해서 과거나 미래로 끌려다니게 돼요. 지금도 생각을 할 수록 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이유들을 만들어 내면서 두려움에 빠지며 나를 가로막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는 생각을 내려놓고 행동하는 연습을 해봐요. 생각을 줄이려고 하면 줄어들지 않을 테니, 생각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단 몸을 움직여 보세요.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걷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행동의 에너지를 바꾸다 보면 생각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끌려가지 않을 힘이 생길 거예요.
그렇게 힘이 생기면 이제 조금씩 내 반경을 넓혀봐요. 5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막막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러니 우선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해 봐요. 집 근처에서 하는 작은 책 모임 같은 것에 참가하며 새로운 사람들 만나보거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일 아르바이트같은 것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감각을 키워보는 거예요.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겁이 난다면 봉사활동 같은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아요. 일단 뭐든 작게라도 새로운 경험을 쌓아보는 거죠. 우리 뇌는 아주 단순한 경향이 있어서 이렇게 작은 성공 경험을 하다 보면 점점 ‘어라?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럼 난이도를 조금씩 높여보는 거예요. 두려워했던 면접을 보고, 좀 더 긴 아르바이트에 도전해 보는 식으로요. 중요한 건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작은 행동으로 전환해서 일단 해보는 거예요. 이런 작은 시도들을 통해 성공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해요.
아마 번아웃을 겪기 전과 완전히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번아웃을 겪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미 나의 가치관, 생각,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요. 아마도 생각은 계속 트집을 잡을 수도 있어요. ‘예전에는 얼마를 벌었잖아.’ ‘예전에는 더 많이 일했는데 왜 이제는 못 하는 거야?’와 같이 지금의 나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말을 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생각이 만들어 내는 비난의 말에 빠지지 마세요. 번아웃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고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나에게 더 이상 행복과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거잖아요. 그러니 과거와 비교하거나 나와 비슷한 다른 또래들의 삶과 비교하는 대신, 번아웃을 겪으며 달라진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잘 맞는 일의 모양을 찾아서 한 걸음씩 움직여 보세요. 일단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걸음들이 내디뎌지기 시작할 거예요.
심리학자 칼 융은 한 개인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에서 고통스럽고 힘든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우리가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인 거죠. 어리아리가 보낸 5년이라는 시간도 그런 시간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믿고 용기를 내서 작게 시작해 보세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향해 걸어갈 어리아리의 삶을 응원할게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