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엄마를 바라보는 게 힘든 초미의 고민

초미의 고민
“어린 나이에 치매에 걸린 엄마를 두고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엄마가 초로기 치매 환자이십니다. 초로기 치매는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치매로, 일반 치매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성격 변화나 행동 이상 같은 증상이 나타나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해요. 벌써 3년 차네요. 처음에는 왜 아직 만 55살도 되지 않은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화와 울분,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정신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의 안 좋아진 상태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덜컹합니다. 초기의 저는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온전한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떡하지?'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 물음표들의 음량을 줄이는 것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저의 어떤 부분을 없앤 것 같기도 하지만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저 혼자 부여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저를 힘들게 할 때가 많아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그 중요성도 알지만 더 악화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장래 희망도, 꿈도,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런 혼란을 엄마의 병이라는 더 큰 당장의 현실 앞에 미뤄 두고, 어떻게 보면 엄마의 병에 과몰입해 저의 문제를 회피해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본질적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루하루 버텨 나가는 느낌, 하루하루에 충실해서 얻는 성취감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염세적인 생각도 자주 듭니다.
다들 혼자만의 시간, 엄마와 떨어진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취미 수준으로 좋아하는 것조차 ‘내가 이걸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고, 부정적인 마음이 이어집니다. 다른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어떨지, 특히 일을 그만두고 엄마를 돌보시겠다는 아버지의 선택도 제게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짐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늙는다는 것’이 죽음이라는 개념보다 더 무섭고 싫었습니다. 요즘 악화되는 엄마의 상태를 보며 시간의 흐름이 괜히 더 미워집니다. 저의 창창한 미래(?) 제가 살아가게 될 나날들이 두려울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허심탄회하게 써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사랑하는 분들이 건강하시길, 새해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밑미 메이트 강원의 답변
“이 변화 가운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허심탄회하게 써 보았습니다." 이 문장에 가서야 편지를 읽는 내내 느꼈던 긴장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궁금했어요. 초미는 이 편지를 쓰고 난 뒤 마음이 좀 가벼워졌을까. 더 쓰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동시에 초미가 겪고 있는 상황과 감정을 언어로 완전히 표현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이 편지가 열 장, 백 장이었어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초미도 이미 알고 있겠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가 삶을 덮칠 때 내뱉게 되는 “이제 어떡하지?”는 질문이 아니라 탄식 같은 조용한 비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초미의 편지로 초로기 치매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초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초로기 치매에 대해 찾아보는 데 썼을까요. 예상되는 진행 경과와 증상, 약물이나 치료에 따라올 부작용, 숫자로 이루어진 편리한 확률과 통계들. "막연하고 그려지지 않는 추상적인 미래" 앞에서 진단 의학이 던져준, 그나마 명료한 병명을 붙잡고 밤낮으로 씨름한 나날이지 않았을까…
저는 재작년에 사랑하는 엄마를 영영 떠나보냈어요.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 폐암과 호스피스에 관한 정보를 수도 없이 찾고 또 찾아보았습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제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통과하면서 초미의 표현처럼 제게도 숱한 물음표가 쌓였어요. 엄마는 떠났지만, 그 물음표들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이 물음표를 품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는 게 삶일지도 모르겠어요.
초미. 그래도 이 변화 가운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초미는 편지 속에서 자신의 힘듦을 털어놓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깊이 살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로 비롯된 짐을 다른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호자로서의 책임감, 어디서 오는지 모를 죄책감, 아버지의 퇴직 결정에 대한 복잡한 속내까지. 저는 제안하고 싶어요. 초미가 자신에게 “혼자 부여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무거운 물음표를 밖으로 꺼내보기를. 혹시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답을 찾기 위한 물음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서로를 위한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요.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그만두기로 한 건지. 초미는 화와 울분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어떻게 버텼는지. 3년 차로 접어드는 엄마의 돌봄 동안 정말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는지… 이 대화가 현실을 바꾸어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변화가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 변화 속에 ‘우리’가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미워졌다는 말.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시간을 미워하게 되는 순간은, 잔인할 만큼 예외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변화를 직면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는 성장이고 확장이어서 관계에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늙어가고 아파지는 변화 앞에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분마저 듭니다. 온전했던 엄마를 점점 잃어가는 상황에서 지난 3년 동안 초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공황장애 치료를 받으며 자신을 돌보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물음표들의 음량을 줄여보려고 노력했고, 그 와중에 썰물처럼 흘러드는 불안, 죄책감과 같은 감정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네요. 그날들이 모여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막막했던 시간을 결국 온몸으로 통과해 온 건 초미, 자신이라는 점을 꼭 짚어주고 싶어요.
저의 답장은 여기까지입니다. 사랑하는 엄마를 상실해 가는 변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자신에게 ‘회피’라는 단어는 쓰지 말기로 해요.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삶을, 그리고 사랑을 지켜내고 있는 초미에게 저의 깊은 진심과 응원을 보냅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밑미 메이트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