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을 이제야 찾았어요” 백미순님 인터뷰
“당신이 꿈을 찾아 모험한다면, 문이 있으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이 열릴 것이다.”
미순님의 인터뷰를 마치며 신화학자 조셉켐벨의 이 말이 떠올랐어요. 언젠가부터 “꿈”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꿈보다는 현실적으로 똑 부러지게 살아가는 게 더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미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나의 어렸을 적 꾸었던 꿈을 기억하나요?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아무 조건도 이유도 없이 좋아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나요? 어렸을 적 꾸었던 꿈을 60이 넘어서 실현하고 있는 미순님의 이야기를 통해 내 꿈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어렸을 적부터 춤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어렸을 적에 대전 문창동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우리 집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어요. 저는 너무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친정엄마 말씀이 엄마가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제가 사라졌었데요. 그래서 찾아다니다 보면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하면서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데요. 그때가 3살 4살 하던 때인데 말이죠. 그런 걸 보면 그냥 아주 어렸을 적부터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었나 봐요. 나도 모르게 몸에서 동작이 나왔던 거죠.
나중에 판암동으로 이사 와서 국민학교를 입학했는데, 우리 집 옆에 벽돌공장 하는 사장님이 있었어요. 그때는 벽돌 공장하면 부잣집이었는데, 그 사장님 딸들이 한국 무용을 배우러 다녔어요. 너무 부럽더라고요. 우리 집은 당시 가난해서 학원 다닐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대신 학교에서 행사를 하면 제가 늘 무대에 섰어요. 그때 의상이 없으니까 옆집에서 빌려 입고 그랬죠. 어렸을 적부터 남들 앞에서 무대에 서고 나를 표현하고 그런 것들을 그냥 본능적으로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 그 시절엔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무용수가 되거나 이런 건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죠.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는 부모님이 인문계 말고 상업 고등학교를 가서 졸업한 다음에 동생들한테 도움을 주라고 하시더라고요. 대전여고를 가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대전여상에 갔어요. 주판, 타자, 부기, 대차대조표 같은 것들을 배우는 데 저랑 참 안 맞아서 힘들었죠.
🍊 아주 어렸을 적에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것을 다시 알아차리고 꿈을 향해 다시 내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아내이자 엄마로, 또 춤과는 멀리 떨어진 일을 하며 살다가 어떻게 그 꿈을 다시 알아차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아들이 고2 때 춤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딸과 아들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고 그전에는 춤을 배운 적도 전혀 없는 아들인데 갑자기 춤을 하고 싶다고 해서 생각해 보니 아들도 저처럼 어렸을 적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는 게 떠오르더라고요. 아, 나도 춤을 참 좋아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움직임이 아들에게도 전달되었나보다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춤을 배우겠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저는 현실주의자거든요. 살림하고 가정 꾸리는 게 먼저였죠.

🍊 그렇게 현실적으로 살다가 춤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뭐였어요?
아들이 2021년에 군대에 갔는데 그때 저한테 책을 한 권 보내줬어요. 엄마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고요. <나의 눈물에 춤을 바칩니다>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니까 가슴 저 바닥에 웅크려 있던 오래된 꿈이 올라오면서 뭔가가 계속 열리는 거예요.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눈물이 났어요. 두 번을 읽었는데, 구절마다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노트에 적어 가면서 울면서 책을 읽었죠. 그렇게 읽고 나니 이 책을 쓴 무용가 선생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작정 전화를 해서 이 저자분을 꼭 뵈어야 하는데 어떻게 좀 연결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엄청 바쁘시대요. 그래도 한 번만 연결해 줄 수 있냐고 부탁드렸더니 한 번 말씀드려 본다고 해서 제 전화번호를 드렸는데 전화를 주셨어요. 전화를 하면서 제 마음을 그대로 책에 기록하신 것 같아서 너무 감동받았고 꼭 뵙고 싶다고 했더니 날을 잡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약속을 잡았죠.
(재민,아들) 사실 그 전에 집에 좀 큰일이 있었는데, 2020년 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다음 해에 바로 군대에 갔고요. 저는 춤을 추는 데 군대에 있으면 몸을 못 움직이니까 이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야겠다 싶어서 춤과 관련된 책을 찾아서 다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이 아버지가 이야기하던 철학이나 가치관과 연결되는 내용들도 많이 나왔어요. 상처를 춤으로 치유한다는 내용도 있었고요. 엄마가 일단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보내게 되었죠.

🍊 재민님(아들)이 보낸 책 한 권이 씨앗이 되어서 엄마의 꿈을 깨웠네요. 그렇게 계룡에서 서울로 책의 저자를 만나러 처음 오신 거네요?
네 사실 서울을 잘 몰라요. 서울 지리도 전혀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덜컥 약속을 잡은 거죠. 딸한테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물어보니까 딸이 그 날 휴가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버스터미널에서 만나서 처음 선생님을 만나러 갔어요. 그리고 다음에 열리는 춤의 학교를 바로 등록해서 공부를 시작했죠.
🍊 계룡에서 서울까지 혼자 연습 다니는 거 무섭지는 않으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엄청 겁났어요. 저 진짜 혼자 못가거든요. 길치고 운전도 오래 했는데도 엄청 당황하고, 게다가 한적한 계룡과는 달리 서울은 엄청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자신 있어요. 무용학교를 찾아가야 하고 꼭 알고 싶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무섭지 않았어요. 작년에 딸이 워킹홀리데이로 잠시 머무는 호주에 다녀왔는데 거기에서 또 자신감을 얻었어요. 19일 동안 있었는데 호주는 말이 안 통하는 데 서울은 말이 통하잖아요. 그런데 뭐가 어려워요?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르면 물어보고 또 물어보자. 그렇게 찾아가보자는 생각을 하니까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는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들을 다녀요.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잘못가면 내려서 돌아오면 되고, 정 안되면 다른 지출을 줄이고 택시의 도움을 받자, 주소만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신감이 들어요.
🍊 춤을 배운다는 설렘이 낯선 곳에 가야 하는 두려움을 녹여버렸네요. 그렇게 춤을 배우니 어떠셨어요?
춤의 학교에 들어가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니 정말 너무 신나고 눈물 나도록 행복했어요. 교육을 받고 행동으로 이렇게 해보세요 라고 해서 몸을 움직이는데 가슴이 두근대면서 너무 좋은 거예요.
춤의 학교 수업은 어떤 동작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몸짓, 그러니까 몸을 그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리고, 앉았다 일어나고, 손을 올리고 이런 모든 동작을 다 춤이라고 이야기해요. 꼭 아름답고 짜여진 것이 춤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움직임, 발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춤이라는 거죠. 사실 우리는 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책을 읽고 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할 무렵에는 상처가 많았어요. 40년간 함께했던 남편과 사별하게 되면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속상하고, 나보다 먼저 간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죠. 그런데 춤을 추면서 그런 아픔들이 씻겨 내려가더라고요. 아픔이 씻기면서 가슴이 열리고 눈물이 나고, 그랬죠.
그리고 다양한 공연을 하게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또 공연을 보러 따라다니기도 했어요. 수료식 때는 즉흥무을 해요. 음악을 주면 본인이 알아서 2~3분 동안 춤을 추는 거예요. 음악을 받고 틀면 몸동작을 준비하고 인사하고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데 제가 그걸 하더라고요. 춤을 마치니 선생님이 안아주면서 너무 잘한다고, 열심히 해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해보라고 하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나도 열심히 하면 공연을 할 수 있겠구나 꿈이 생겼죠.
🍊 이제 정말 큰 무대에 설 기회를 잡으셨잖아요. 국립 현대무용단에서 일본인 안무가가 선보일 공연의 일반인 무용단원으로 오디션에 합격하셨다고 들었어요. 이건 어떻게 지원하게 되신 거세요?
일본인 안무가가 국립 현대무용단에서 공연을 하는데, 일반인 대상으로 퍼포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오디션을 한 번도 본적은 없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선 그 안무가 분이 어떤 분인지 공부를 했어요. 그분 작품도 보고 어떤 것 때문에 무용을 하기 시작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공부를 했죠. 그 안무가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무용으로 춤으로 표현하고 싶대요. 그러려면 희노애락이 모두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분의 안무에는 폭력이 있어요. 저는 춤의 아름다움만 생각했는데 그분의 작품을 공부하면서 또 새로운 걸 알았죠. 이렇게 훌륭한 분을 한 번 만나만 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오디션을 접수했어요. 오디션이 시작되서 안무가 선생님을 보는데 너무 반가운 거예요.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 오디션도 처음 보셨을 텐데 어떠셨어요?
체력 테스트를 먼저 보는데 2시간 정도 했어요. 왕복달리기를 100번 정도 하고, 팔굽혀 펴기 50번, 버피 50번을 했어요. 오디션 볼 때 중간에 힘들면 쉬었다 해도 된다고 하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귀가해도 된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가는 건 상상도 안 했죠.
그 다음에는 안무를 해요. 즉석에서 안무를 주면 그 안무를 외운 다음에 시험을 보는 거예요. 안무 외우기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할 때 계속 보면서 연습을 했어요. 3시간 정도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따라 했죠.
같이 시험 보는 선생님들은 다 너무 키도 크고 예쁘고 경험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하고 그 안무가 선생님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이분의 스타일을 보고 안무하는 것만이라도 잘 보자고 생각했죠.
🍊 보통 자기 순서 아니면 앉아서 쉬는데 체력 테스트부터 시작해서 거의 3시간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신 거네요.
맞아요. 저는 오디션은 처음이고 안무가 너무 안 외워져서 순서를 외우려면 계속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연습했어요. 오디션 동안 한 번도 자리에 안 앉고 계속 연습했어요.
🍊 합격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너무 좋으셨을 것 같아요.
1차 합격 때도 믿기지 않았던 게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거든요. 150명 중에서 49명을 뽑는 데 거기에 들었고, 2차 때 또 10명을 뽑는데 저는 안무가 선생님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욕심부리지 말고 그분을 한 번 더 보는 걸로 만족하자고 생각했죠. 합격 여부를 떠나서 제가 거기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배움의 자세로 배워오고 싶었어요.
최종 합격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실감도 안 나고, 그때 아들이랑 같이 있었는데 버스 터미널 안에 있다가 나가서 축하하자고 해서 바깥에 나가서 방방 뛰면서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 젊은 사람도 통과하기 어려운 체력 테스트를 통과하셨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집에 들어오면서 미순님 팔에 근육을 봤는데 60대에 그런 근육을 가진 분을 처음 봐서 놀랐어요. 매일 꾸준히 실천하는 리추얼이 있으실 것 같은데 궁금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들이 있어요.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를 두드리는 두피 마사지를 하고 고개 돌리고 박수치면서 몸을 풀어요. 그리고 108배를 해요. 108배는 지금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108배를 하면서 모든 일이 순탄하게, 큰 어려움 없이 잘 되기를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요. 마음 수련 같은거죠. 신기한게 108배를 하고 나면 얼굴이 화사해지고 눈에서 빛이 나요.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고 너 참 예쁘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안 할 수가 없죠.
그리고 요즘 매일 하는 건 영어 공부예요. 아이들이 둘 다 영어를 하니까 저도 같이 여행을 가거나 하면 영어를 하고 싶더라고요. 50년을 공부해도 잘할 수는 없겠지만, ‘너 이름이 뭐야?’ ‘이거 얼마야?’ 이런 걸 물어볼 수 있는 거, 하나만 더 알 수 있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하는 거예요. 한 번 해서 기억이 안 나면 이틀 하면 되고, 이틀 해도 안 되면 삼일 하면 되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걷는 걸 좋아해서 많이 걸어요. 집 앞에 천마산이 있는데 하루에 2~3시간 정도 천마산을 걷고, 산에 가지 못하는 날에도 하루에 만 보는 꼭 걸으려고 해요. 걸으면 장 운동이 좋고 그럼 화장실도 잘 가고, 그럼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그러니까 꾸준히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이제는 계속 춤을 춰야 하는데 춤을 추려면 일단 제 몸이 건강해야 하고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는 몸이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거예요. 그리고 하고 나면 너무 행복해요. 몸에 좋고 건강에 좋고 기분이 좋으니까 그리고 그걸 내가 아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 사연을 봤을 때는 미순님의 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았지만 삶에서 꾸준히 해온 것들이 모여서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사연을 신청해 주신 자녀분들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두 자녀분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내셨고, 또 뭘 하든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다고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불안하거나 비교하게 되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대안학교는 남편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남편이 먼저 제안했어요. 국영수가 다가 아니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좀 넓게 세상을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이 왕따당하거나 적응 못 하는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많이 생각을 해서 주변에서 왜 얘들 망치려고 하느냐고 걱정을 많이 했죠.
저는 아이들과 떨어져 있으니까 보고 싶고 혹시나 아프면 어쩌나 먹거리가 부족하면 어쩌나 그런 게 걱정되긴 했지만, 시험 점수로만 판단하는 곳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공부만 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아빠 뜻을 따르자고 생각해서 대안학교에 보냈죠.

🍊 다른 사람들 말에 별로 안 흔들리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내가 믿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자식이잖아요. 그럼 저를 닮았을 텐데 그럼 아무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생활력, 의지력, 다 저보다 더 나을 거잖아요.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확신이 선 사건이 있었는데, 첫째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 김제에 있는 지평선 중학교에 보냈는데, 당시만 해도 격주로 놀토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기 생일에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번 생일은 놀토가 아니라서 집에 못 가지만 다음 주 놀토에 집에 가서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본인 생일인데 저한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화를 하는 딸을 보면서 이게 참교육이구나.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책 보면서 공부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죠. 누나를 보고 배웠는지 둘째 재민이는 간디학교로 중학교를 갔는데 그때 자기 생일에 또 전화가 오더라고요. 한술 더 떠서 저, 남편,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화를 해서 우리 엄마 아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 전화를 받으면서 스스로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제 생일에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해요.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죠.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내 스승이 되겠다고 말이죠.
제가 아이들을 키울 때 우리 아이들이 제 말을 정말 잘 들었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으니까 이제 제가 아이들 말을 잘 들어야 할 때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아이들 말을 열린 귀로 귀담아듣고 그걸 행동으로 잘 옮기고, 그럼 저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할 것 같아요.
🍊 오늘 미순님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또 살아가는 모습 자녀를 키우신 모습들을 보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정의하는 성공의 정의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을 살아가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욕심 없는 삶에서 오는 것 같아요. 저는 큰 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게 엄청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걸로 만족을 느껴요. 집을 하나 사면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려고 하고 저희는 안 그랬어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하나 있으면 만족이고, 누구에게 돈 빌리러 다니지 않을 정도로 의식주가 해결되면 만족이고. 제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불편 없고, 어디 크게 아프지 않으면 저는 마이너스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프지 않으려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건강을 잘 지키고, 그럼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 윤택하게 보낼 수 있잖아요.
사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게 된 건 남편의 영향이 커요. 대안학교를 처음 보내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고, 그걸 통해 받은 교육이나 하게 되는 경험 같은 것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자본보다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모든 생명은 귀하고, 그런 것들. 108배도 생명과 평화를 위해 아침마다 등불을 밝히려는 의미로 시작한 거예요.
🍊 나에게 충분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미순님과 대화를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그럼 다시 춤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요즘은 어떤 춤을 배우세요?
요즘은 살풀이를 배우고 있어요. 대전에 살풀이춤을 전수하시는 김란 명인이 계세요. 지금 80살이 되셨는데, 이분께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강의를 듣고 있어요. 살풀이와 현대무용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살풀이는 곡선이고 현대무용은 좀 더 빠르고 직선적이에요. 살풀이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가거든요. 이 두 가지를 같이 해보고 있어요. 살풀이가 마음 속에 안 좋은거 쌓인 것들을 풀어내는 거잖아요. 제 마음속에도 그렇게 쌓인 것들이 있나 봐요. 뭐 그리 쌓인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번에 공연을 잘 마무리하고 지금 배우고 있는 살풀이를 잘 배워서 나만의 살풀이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누구도 표현하지 못하는 제 마음속에서 깊숙이 올라오는 걸 한 번 표현해 보고 싶어요. 아픔이 올라오면 눈물이 나잖아요. 이 눈물도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픔을 너무 큰 아픔을 겪어 봤으니까요.
🍊 오늘 대화를 하면서 춤이 단순히 기교나 동작에 관련된 게 아니라 우리 마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춤을 추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거울을 보면 예전에는 걱정 많고 근심 많은 제가 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환하게 웃고 있는 내가 보여요. 예전에는 거울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이제는 거울 속 나와 대화를 해요. 제가 혼자 저한테 아침마다 미순아 너 참 예쁘다. 너 참 잘하고 있다 이렇게 칭찬을 해줘요. 아픔을 겪고 아픔을 바탕으로 네가 무엇을 꿈꿨던 사람인지 너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픔을 이겨내고 아이들하고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난 내가 미순이가 너무 예쁘다고. 이야기해 주는 거요.
춤을 배우면서 나도 꿈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도 꿈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 안에 있는 꿈을 끌어내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고 그러면서 내 존재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어요. 이제서야 제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 전에는 제가 이런 거를 이렇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거든요. 지금 나이에도 꿈을 찾아갈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이 참 좋고, 내가 너무 예쁘고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이제는 자세도 달라졌어요. 좀더 꼿꼿 해지고, 바르게 걸으려 하고, 내 꿈을 찾아 무용을 접하고 만나러 다니면서 가슴이 좀 더 쫙 펴진 것 같아요.
춤을 만나면서 내 안에 자고 있던 꿈이 올라오면서 내가 나를 알아가고 있어요. 나의 주체는 나였구나. 이제서야 겨우 제가 스스로를 이만큼 보기 시작하고 있어요. 이제 내가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러니까 매일매일 감사하고, 매일이 선물이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고마운 것만 생각나고 그래요. 이제 오롯이 나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고, 내가 알고 있던 그 꿈을 위해 쫓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너무 황금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계룡에 있는 미순님의 집을 나서면서 가슴이 벅찬 느낌이 들었어요.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벅차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달까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에게도 이 설렘과 벅찬 느낌이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셉 켑벨의 말처럼 꿈을 찾아 모험하는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이 열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