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그 뉴스, 세상의 평균일까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정규분포의 형태를 띠고 일어나요. 어떤 것이든 극단적인 경우는 양쪽 끝에 소수로 존재하고, 평범한 다수는 가운데에 몰려 있는 거죠.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일까?
메이트, 하루에 몇 개의 이야기를 접하나요?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몰려오기 시작해요. 어젯밤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누군가 당한 황당한 사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사연, 이해할 수 없는 이웃에 대한 이야기까지 스마트폰만 켰을 뿐인데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행과 갈등을 목격할 수 있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인터넷만 보면 이 세상에는 온갖 이상한 사람만 있는 것 같고, 무서운 범죄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 같은데 정작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평온하게 흘러가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무사히 일어났고, 지하철은 정시에 도착했고, 카페 직원은 친절했고, 횡단보도 앞에서 차들은 얌전히 멈춰 섰어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하루는 인터넷 속 세상만큼 험악하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우리 마음속 세상은 점점 더 무섭고 위험한 곳이 되어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세상을 하나의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정규분포의 형태를 띠고 일어나요. 어떤 것이든 극단적인 경우는 양쪽 끝에 소수로 존재하고, 평범한 다수는 가운데에 몰려 있는 거죠. 사람들의 키를 재서 그래프로 그린다고 생각해 봐요. 키가 아주 작은 사람과 아주 큰 사람은 얼마 없고 대부분은 그 중간 어딘가에 몰려 있어서 가운데가 볼록 솟은 산봉우리 같은 모양이 돼요. 키뿐만 아니라 몸무게, 아이큐, 소득, 시험 성적까지 우리가 겪는 수많은 일들이 이 산봉우리 모양의 정규분포 형태를 띠고 일어나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프의 양쪽 맨 끝, 가장 얇은 자리에는 극단적인 일들이 있어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 왼쪽 끝에 있다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행운이 오른쪽 끝에 있는 식인 거죠. 그리고 두툼하게 솟은 그래프의 한가운데에는, 딱히 최악도 최고도 아닌 '그냥 무난했던' 수많은 일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사실 우리 삶을 채우는 대부분의 일들은 이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언제나 그래프의 양 끝만 보고 있어요
만약 세상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골고루 도달한다면 우리는 압도적으로 무난한 가운데의 이야기를 접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예요. 가운데의 평범한 이야기는 아무도 찍지 않고, 아무도 올리지 않고, 아무도 퍼 나르지 않아요. 무난한 건 도파민을 자극하지 않고 화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우리에게 도달하는 자극적인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래프의 양 끝, 그중에서도 특히 왼쪽 끝에 있는 최악의 사례들인 경우가 많아요. 오물을 투척한 청소업체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건 그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서가 아니라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에요. 일어날 확율이 거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이 놀라서 퍼뜨리고 결국 나에게까지 도달한 거죠.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가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은 그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만큼 드물고 희귀한 일이라는 뜻이 될 수 있는 거죠.
문제는 우리의 마음은 이걸 정반대로 계산한다는 거예요. 그래프의 극단에 있는 어떤 사건을 접하면서 그게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평균처럼 착각해 버리는 거죠. 그래서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무작위하게 접할수록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은 왜곡되고 일그러지기 쉬워요. 실제로는 극소수인 양쪽 극단의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는 볼록한 산처럼 우뚝 솟아있는 모양이 되어 버리는 거죠.
왜곡된 시선이 만드는 두려움과 의심
이렇게 세상을 왜곡해서 보다 보면 우리는 불필요한 두려움에 휩쓸리고 쉽게 타인을 의심하게 돼요. 그래프의 얇은 끝자락에서 벌어진 일을 세상의 한가운데라 착각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서는 극단적인 일들이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로 둔갑해 버리거든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리 최악을 상상하며 마음을 졸이게 되는 거죠.
이렇게 두려움과 의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일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조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쉬워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대를 향해 '이 사람도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며 의심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경계하는 마음은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표정과 말투에도 미묘하게 배어오고, 상대에게 전달되고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기도 쉬워요. 내가 세상을 향해 잔뜩 경계하며 마음의 문을 닫으면, 세상도 나에게 그만큼 굳게 닫힌 얼굴을 보여주기 쉬워지는 거죠. 왜곡된 시선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이 다시 우리가 두려워하던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셈이 되는 거죠.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기
불필요한 두려움과 의심에 빠지지 않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물밀듯이 들어오는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대신 이 사건은 그래프의 어디에 존재하길래 나에게까지 들어온 것일까? 라고 균형 있게 바라보는 힘이 필요해요.
균형 있게 세상을 본다는 건 부정적인 정보들을 무조건 배척하며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야.'라고 억지로 믿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래프의 또 다른 한쪽만 보겠다는 다른 방향의 왜곡일 뿐이니까요. 진짜 균형은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그래프의 한 부분에서 뽑혀 올라온 예외적인 한 조각일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세상은 우리가 보는 화면만큼 무섭지도 않고, 억지로 믿으려 애쓰는 만큼 아름답지도 않아요. 세상은 그냥 세상일 뿐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물을 던지지도 않고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지도 않아요.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을 뿐이죠. 그러니 나를 자극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강렬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잠시 멈춰서 이렇게 물어봐요. '이 이야기가 나에게 도달했다는 건, 오히려 이 일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말해주는 게 아닐까?' '이 한 장면 뒤에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수많은 평범한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왜곡해서 보려는 마음의 관성을 극복하고 조금 더 균형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