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우리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능력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믿어 왔어요.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고, 자격증을 따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성과를 내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외모를 가지고,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노력해 왔죠.
인간이 처음부터 나의 능력과 나의 가치를 동일시 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생각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서서히 내면화된 것에 가까워요. 공장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생산량과 효율성의 개념이 등장했고,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서 최대의 산출물을 끌어내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가기 시작했거든요. 자연스럽게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능력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능력은 곧 개개인을 평가하고 점수 매기는 잣대로 사용되게 되었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이런 논리는 우리 삶에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어요. 이제는 단순히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넘어서 각자가 자기 삶의 CEO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관리하고 브랜딩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믿게 된 거죠.
AI 시대에 점점 쓸모없어지는 나의 쓸모
AI를 잘 활용하는 개인은 한 회사를 능가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으로 AI는 우리가 그동안 믿고 있던 나의 쓸모가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어요. 인간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AI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거든요. AI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고, 심지어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제시해요. 만약 우리의 가치가 정말로 '쓸모'에만 있다면, 우리는 점점 쓸모없고 고로 가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버린 거죠.
AI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증폭시켜요.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AI에게 뒤쳐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서 평생 낙오자로 살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식이죠.
물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해요. 하지만 그전에 기억해야 하는 것은 AI가 나의 직업을 나보다 훨씬 더 잘해도, 내가 하던 일을 단 몇 초 만에 대체해버려도, 나의 쓸모없음을 한탄하며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거예요.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학습해 왔던 쓸모 있음에서 나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세뇌를 내려놓고 생산성과 쓸모 있음 이외의 곳에서 나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AI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것들
역설적으로, AI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들어요. AI는 어느 순간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으로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훨씬 더 탁월하게 해나갈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고 탁월한 AI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것처럼 경험하고 감각하고 느낄 수는 없어요. 사랑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사랑을 느낄 수는 없고, 슬픔을 표현할 수는 있어도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는 없어요. 음식의 맛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음악을 듣고 먹먹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죠.
명상을 해본 적 있나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호흡에 집중하며 고요히 앉아 있는 그 시간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아요. 그야말로 무용한 시간 인거죠. 하지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고요함과 평온함은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에요. 장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가 베어지지 않아 오래 살아남듯이, 쓸모를 추구하지 않는 삶이 오히려 진정으로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시간, 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이런 시간은 생산성이나 효율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어찌보면 무용한 시간들이에요.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종종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고,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줘요.
우리는 감각하고, 느끼고, 경험하고, 의미 부여하는 존재예요. 우리는 불완전하고, 느리고, 실수투성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죠.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쓸모'에 집착하며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진짜 인간성을 회복하고 쓸모없음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도와주는 시기가 될지도 몰라요.
쓸모없음에서 쓸모를 찾기
AI의 속도에 맞춰서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의 측면에서 결국 AI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AI를 통해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서 더 많은 영상을 만들고 보고서를 만들고 서비스를 만들면서 무조건 더더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소진되고, AI와 비교해서 더 열등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자기 자신을 정의해 버리게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건 때때로 잠시 멈춰서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오감을 깨우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관계를 통해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느리게 함께 밥을 먹고, 별다른 목적 없이 산책하고, 명상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옆에 그냥 있어 주는 그런 것들이요. 이런 것들은 아무런 생산성도 효율성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이런 순간들이 우리 삶을 진정으로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죠.
AI 시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너는 무엇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 자체를 거부할 수 있어요. 우리의 가치는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물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여전히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현실을 헤쳐 나갈 때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해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특별한 이유는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쓸모가 없음에도 경험하고, 존재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