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당한 후 삶의 의욕이 사라진 초록님의 고민

초록님의 고민
“사기당한 후 커진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3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대체로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왔어요.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큰 고난이나 어려움 없이 살았고,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서 삶에 대한 걱정이 크게 없었어요. 이런 저에게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역경이 찾아오고 있어요. 처음엔 과한 업무로 건강이 나빠졌고, 업무 성취도와 만족도가 떨어지니 자존감도 떨어지고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이겨내려 노력했고, 운동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자존감이 올라갔어요.
그러다 사기를 당했어요. 몇 년간 일하며 모은 돈과 대출받은 돈까지요. 어쨌든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이겨내자 마음먹고 지금은 좀 괜찮아졌지만, 트라우마와 자책이 드문드문 강하게 찾아옵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커졌어요. 나름의 목표와 계획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처음엔 악이 받혀 더 열심히 살아야지 싶었는데, 지금은 마음도 지치고 의욕도 없어졌어요. 연애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 하게 되고, 무엇보다 사람을 잘 못 믿겠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마음을 열면 모든 걸 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어도 괜찮은 사람을 찾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요.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의욕 상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꾸 생기는 초조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평소 ‘이미 지난 일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힘든 마음을 이겨내는데, 이번에는 잘 통하지 않네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이미 일어난 일들과 싸우지 마세요. 묻어두고 이겨내는 대신 충분히 회복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입니다. 초록의 위태로운 고민 글을 보니 안녕을 묻기가 어렵네요. 업무 과부하, 건강 악화, 이별, 사기까지. 줄줄이 이어 일어난 힘든 일들로 많이 지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의욕이 없어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게 당연해요. 그런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하는 힘을 내주어 고맙습니다. 잘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답해보겠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들과는 싸우지 말라고 하지요. 제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후에도 자꾸 자책하며 ‘왜 그랬지?’, ‘이래야 했는데’를 반복할수록 현재의 자신만 더 힘드니까요. 새로이 힘을 내는 데 방해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 침투하고,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치솟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단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고통스럽겠지만 이 생각들과 감정들까지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결과들이구나 받아들이세요. 긴 한숨을 푹푹 내쉬어도,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러도, 억울하고 힘들어 엉엉 소리내어 울어도 됩니다.
혹시 지금까지의 초록이 너무 이겨내려고만 하며 무기력과 분노와 슬픔을 외면하기만 했다면, 오히려 초록이 과거를 수용하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이기도 하고요. 최근 몇 년간 쌓이다 참고 참다 폭발한 결과는 적어도 반년 이상은 계속 폭발한 화산처럼 용암도 흐르고, 연기와 화산재로 땅도 하늘도 우울한 잿빛으로 덮이고, 종종 남은 폭발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럴만한 사건에 근거한 우울과 무기력, 분노는 존중받고 표현해야만 해소되지, 무시하거나 억압하면 무의식에 자리 잡아 긴 시간 초록에게 영향을 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번에는 기존에 초록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들이 잘 통하지 않을 만큼 묵은 것들이, 크게 터진 거지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회복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초록의 삶과 앞으로의 초록의 삶 사이에서 한 번 제대로 대청소를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요. 혹시 안 그래도 계획에 비해 너무 늦어버렸는데, 지금 보다 두세 배로 달려도 부족한데, 그럴 시간과 돈이 어딨냐는 생각이 불쑥 드나요? 그게 지금까지의 초록입니다. 계획도 목표도 지금까지의 초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요. 지금은 다른 초록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계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성장하거든요. 매일 새로워져요. 그런데 목표나 계획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세운 다음 갱신하지 않은 채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초록은 어떤가요? 지금이 딱 초록이라는 컴퓨터를 제대로 ‘디스크 정리’하고 ‘업데이트’할 기회가 아닐까요?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전문가와 함께하는 심리상담도 아주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초록을 깊이 이해하고 응원하는 가까운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나 자신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읽고, 일기나 편지, 에세이의 형태로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쓰는 것도 좋습니다. 이미 하는 운동들도 꾸준히 하면 더욱 좋겠죠. 다만 단시간 내의 기분 전환이나 단기간 내의 의욕 상승을 위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초록에게 필요한 건 다음 십 년을 위한 충분한 휴식과 회복, 정리니까요.
아마도 제대로 회복한, 최적화된, 새로운 초록은 지금까지의 어떤 초록보다 더 홀가분한, 힘차고 여유 있는, 환하게 빛나면서도 깊이 있게 지혜로운 존재이리라 상상해 봅니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힘든 오늘의 초록을 꼭 껴안아 주세요. 계속 오래오래 함께 가야 하니까요. 남은 인생이 깁니다. 초록의 평안을 빕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