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끝, 퇴사는 두렵고, 출근은 더 힘든 뿌뿌님의 고민

뿌뿌님의 고민
“번아웃의 끝, 퇴사는 두렵고 출근은 더 힘들어요.”
11년 차 직장생활에서 심신이 너무 지쳐 번아웃의 끝에 도달한 것 같아요. 멘탈도 약해져서 괜찮아 한마디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곤 합니다. 일보다는 인간관계가 너무 지칩니다. 잘 지내던 선배는 갑자기 저를 멀리하고, 입사 후부터 저를 예뻐해 주시던 팀장님은 진급 대상이던 저를 진급 누락시키고, 낮은 고과를 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어요. 지금 팀장님은 저를 기계 다루듯 부리시는데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에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작년 초부터 1년간 우울증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마다 회사를 벗어나고 싶은데 이직의 기회도 닿지 않고, 그만둘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무작정 그만두면 재취업에 대한 불안과 더 나은 곳으로 취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이렇게 불행한 상황에서도 퇴사 결심을 접게 됩니다. 이런 제가 너무 불쌍하면서도 자신감 없고 무능한 모습이 밉기도 합니다. 하는 일은 잘 맞는 편이고, 연봉도 낮지 않아서 커리어가 끊기는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같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데 나만 유난스러운지 되묻게 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슝슝님의 따뜻한 피드백 볼때마다 위안을 받고 제 마음을 들여다봐 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하는데, 꼭 슝슝님에게 제 고민에 대해 피드백을 꼭 받아보고 싶네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지금 이대로 이번 주를, 이번 달을, 일 년을 버틸 수 있나요?
그 답이 ‘아니오’라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뿌뿌. 반가워요. 지명받은(?)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입니다. 고민 상담소의 상근 인력은 저밖에 없어서 선택지가 없는데도, 꼭 제게 답장을 받고 싶어 하는 드물고 소중한 고민 글에 간질간질 기분이 좋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종종 비슷한데, 각자의 삶은 너무나 달라서 뚜렷한 해결책을 드리기는 어렵겠지만, 뿌뿌님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읽고 정중하게 답변해 보겠습니다.
뿌뿌는 11년 직장생활의 끝에서 너무 지쳐 있군요. 무엇보다 사내의 선배, 상사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고, 최근 1년은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요. 이직은 어렵고, 퇴사는 불안하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점점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막막할 수밖에 없지요. 상황은 더 나빠질 것만 같고요. 나 자신에 대해,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고민글에서 치료를 받은 일이 과거형으로 적혀 있어서 걱정이 앞섭니다. 임의로 중단하신 건 아닌지요. 효과가 별로인 것 같고, 약물 내성이나 장기 복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담과 치료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지만, 뿌뿌에게 대안적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꼭 다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현재의 뿌뿌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곳이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라면 일단 크게 숨쉬기부터 같이 해보고 싶어요. 푹신한 쇼파에 누워 쿠션을 안고 해도 좋고, 잠자리에 누워 두 손을 배에 올리고 해도 좋아요.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고, 스읍-,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후우~~~, 천천히 끝까지 내쉬세요. 조금 멍해지고 몸이 풀어지고 마음이 먹먹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세요. 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다면 느껴보세요. 눈 주위가 뻑뻑하거나, 명치 부분이 답답하거나, 손이나 발이 저릿하거나, 그 밖의 다른 불편한 점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저 호흡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배를 느낄 수도 있어요. 글을 읽느라 못했다면 잠시 멈추고 해보세요.
뿌뿌, 조금이라도 경직된 근육이 좀 이완되고, 긴장이 풀어지고, 불안이 가라앉은 게 느껴지나요? 그럼 됐습니다. 자, 이제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지금 이대로 이번 주를, 이번 달을, 일 년을 살(버틸) 수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수년 이상의 삶을 뿌뿌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보내길 원하나요? 두 질문 모두에 ‘예’라면 치료를 재개하고 장기적으로 일 외의 삶에서 에너지를 회복하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방법을 찾아가야겠지요.
하지만 ‘아니오’라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규모가 큰 회사라면 부적응자라는 낙인 효과를 감당하고서라도 사내에서 부서 이동, 마음 건강 휴직 등을 사용하길 권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버티며 관리해 온 커리어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내려놓는 선택지를 고려해 보세요. 사실 이직이 아닌 퇴사도 뿌뿌의 커리어 전부를 내려놓는 선택은 아닙니다. 대우가 좋은 회사에 들어갈 만큼 잘 맞는 일을 잘하는 뿌뿌의 능력은 수개월이나 일 년 정도 공백이 생긴다고 해서 완전히 제로가 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하는 이유는 커리어를 일하며 발전시킨 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내가 일하는 회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힘든 상황일수록 우리는 모든 것을 꽉 쥔 채로 버텨내거나 자칫 삐끗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선택지로 자신을 내몰기 쉽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닙니다.
그러니 뿌뿌, 꽉 쥔 주먹에 힘을 빼고 손바닥을 펴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뭐라 하든 뿌뿌의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아파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뿌뿌는 절벽이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게 아닙니다. 아주 오래 달려야 하는 인생이라는 여정의 한 부분에서 넘어진 거예요. 11년의 직장생활 끝의 최종적인 실패가 아니라, 긴 직장생활의 남긴 가치 있는 경험의 부산물인 상처들로 일시적인 쉼과 회복이 필요한 상태가 된 거예요. 뜬금없지만 뿌뿌가 제 친구라면, 제 가족이라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생각해 봤어요.
‘뿌뿌, 오랜 기간 너무 수고한 자신에게 긴 휴가를 선물해 줘. 차곡차곡 모은 돈이 있다면 훌쩍 타국으로 떠나도 좋고, 휴대폰도 노트북도 없는 홀가분한 자연인으로 살아봐도 좋겠다. 오래 미뤄왔던 우정들과 사랑이 있다면 그들과 진한 만남을 가져도 좋겠지. 아니다. 진짜 제일 소중한 나니까. 이것들과 다른 것들 모두 다 해줘야지. 리스트로 만들어 하나씩 지워가며 다 해야지. 아니면 원하는 만큼 아무것도 안 해도 될 자유를 줘야지. 내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더는 못하겠다고 지르는 비명을 더 이상 모른 척하지 말고. 앞으로 삼십 년, 사십 년 함께 살아야 할 나를 위한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아까워 말고. 미안한 만큼, 고마운 만큼 잘 해줘야지. 적어도 나만큼은 나 자신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줘야지.’
쓰고 나니 좀 꼰대질 같기도 하지만, 뿌뿌, 제 답변 글들을 여럿 읽었으니 알고 있죠? 제 답변 글은 늘 저를 제일 못살게 구는 저 자신에게 반복하는 다짐들이라는 것을요. 제게 자주 필요한 이 말들이 뿌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뿌뿌의 삶이라, 얼마나 받아들일지도 선택도 뿌뿌의 몫이겠지요. 부디 뿌뿌를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무엇이 자신을 위한 선택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을 때는 그저 사랑을, 평화를 선택하길 부탁합니다. 응원하는 마음 보냅니다. 꼭 안녕하시길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