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 것 없는 미래가 걱정되는 타랴 님의 고민

타랴님의 고민
“하고픈 것 없는 제 미래가 걱정됩니다.”
올해 32살의 직장인 입니다. CS(고객센터) 쪽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웹 디자이너로 직업을 변경했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직업을 바꾼 건 아니고, 서비스업이 맞지 않아 친구 추천으로 학원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꾸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커집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고, 디자인 센스가 좋은 편도 아니라, 학원이 알려준 스킬대로 꾸역꾸역 디자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객들의 전화를 받던 순간보다는 마음 편하지만, 계속해서 제 직업에 대한 의심이 듭니다.
사실 저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쩌다 보니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콜센터의 기억으로 고객상담 부서에서 일했고, 늦었지만 기술을 갖는 편이 좋겠다는 주변의 추천에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직업을 찾기엔 나이도 많고,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고요.
무기력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떤 일에도 성취 욕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날들이 많은데 제 미래가 너무 걱정됩니다. 주변 친구들은 벌써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자리 잡는 것 같은데 저는 여전히 신입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걱정이 머릿속을 맴도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밤에 잠도 잘 안 오네요. 이런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일을 중심에 두는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하는 시간 외에 타랴의 삶을 어떻게 가꿔가고 싶은지 알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타랴.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이에요.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일이 내 길이 맞는지,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래도 되는지, 어쩌면 내 인생은 이렇게 천천히 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되나 봐요. 맨 마지막 말은 저의 상상인데, 타랴가 읽기에는 어떤가요? 그 정도는 아닌가요? 아니면 딱 맞나요? 혹은 그사이 어디쯤?
알쏭달쏭한 물음표들로 답변 글을 시작해 봐요. 근데 꼭 우리 인생 같지 않나요? 불쑥불쑥 이게 맞나 싶은, 정말 알 수 없는 인생이에요. 먼저 고백하자면 타랴의 지금 고민, 저도 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심리상담 더하기 제가 즐거워하는 것들(글쓰기, 타로, 보드게임)로 오십, 육십에도 먹고 살 수 있을까? 모르겠거든요. 지금 먹고 살 수 있는 걸로 감사하다가도, 이대로 괜찮을까, 미래를 좀 더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득 불안해져요. 저도 한 길만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럴까요? 아닙니다. 수십 년 외길 인생 선배들에게도 미래는 똑같이 두려운 것이에요. 그러니 타랴의 걱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히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던 타랴가,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CS 부서에서 일하고, 서른쯤에 학원에서 디자인을 배워 취직을 한 것도 타랴가 가진 걱정의 힘이에요. 그러니 걱정해도 됩니다. 지금 유독 그 걱정이 많이 올라오는 것은 아마도 새로 시작한 디자인 일이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탓이에요. 한 번 자신의 일상을 살펴보세요. 고객의 전화 받기가 한결 편안해진 것 말고도 근무할 때의 긴장이라든지, 평일 저녁과 주말의 피로감이 덜해졌을 거예요. 그래서 다시 타랴님이 가진 미래를 준비하려는 불안이 힘을 얻은 거죠. 쓸 데가 없으니, 부정적 감정과 신체적 긴장으로만 쌓이면서 타랴님의 귀한 낮과 밤을 좀먹고 있네요.
타랴는 스스로를 ‘성취 욕구’가 없는 것 같다고 썼어요. 일에 집중하고, 커리어를 쌓는 친구들과 비교하니 더욱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타랴의 ‘욕구 없음’의 역사와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은 알 수 없으니 옆으로 치워두고, 일단은 타랴의 ‘무욕’을 인정해 줍시다. 그대로 존중해 줍시다. 없어도 괜찮다고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무기력증도 전혀 아니고요. 타랴의 고민 글만 봐도 타랴는 근심, 걱정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중심을 일에 두는 삶은 평균도 아니고 정답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삶의 형태지요. 지금 타랴에게 맞는, 원하는 모습이 아닐 뿐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여덟 시간 이상씩 5일이나 일해야 하는, 그렇게 벌고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어서 타랴가 스스로 부적응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미 타랴는 고객 서비스 경험과 디자인 스킬을 가진 멀티 플레이어입니다. 삼십 대 중후반이나 사십 대에도 디자인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품 기획과 온오프라인 판매일로 확장할 수도 있겠죠. 저의 부족한 상상력 밖의 다른 직무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요. 타랴는 집중력을 발휘한 폭발적인 성과를 내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어도 여기저기 활용도가 높은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으니까요.
두고 보세요. 결과적으로 타랴는 이 변동성이 큰 세상에서 어디서든 1인분을 무던하게 해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자꾸 자연스러운 불안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확대시키는, 일에 대한 욕구가 적음을 타랴의 부적응으로 매도하는 주위의 이야기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모두 조금씩은 다 흔들리니까 조금은 흔들려도 되지만, 너무 오해 붙들고 있지는 마세요.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할지 물었죠. 굳이 잡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 불안이 타랴가 무언가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거예요. 저는 오히려 타랴의 일 외의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돈 되는 것 말고요. 숙제 같이 느껴지는 것 말고요. 살아오며 어떤 순간이 소소하게 기뻤는지, 책과 영화, 여행, 계절, 음식 등 좋아하는 건 무언지, 친구들과 연인들과의 기억과 현재의 관계는 어떤지, 건강을 돌보고 신체를 단련하는 건 좋아하는지요.
타랴가 과거에도 무던히 잘 해왔고, 현재도 무던히 해내고 있고, 미래에도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베이스캠프로써의 밥벌이는 기본값으로 안심해도 된다면, 타랴는 일하는 시간 외의 타랴의 삶을 어떻게 가꿔가고 싶나요? 타랴의 ‘욕구’는, 타랴의 행복은 거기 있을지도 모릅니다. 찾아볼 마음을 먹고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건 타랴의 선택이지만요. 응원을 보냅니다.
추신: 7월 달에 리추얼 ‘머니로그 & 하루일기’를 들었는데, 퇴사 후 작가이자 자산운용가, 사업가인 리추얼 메이커 볼리님이 최근에 도배기능사를 땄다는 말에 빵 터지면서도 박수를 쳤습니다. 저도 책방과 커뮤니티 공간 운영을 하며 스콘과 쿠키 정도를 만들 줄 알면 좋겠다 싶었어요. 다들 참 다르게, 비슷하게 삽니다. 타랴도 그냥 지금의 타랴로 살아도 됩니다. 좀 편안하게 더 홀가분하게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