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법” 문요한 작가 인터뷰
치유의 본질은 내가 나한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거니까요. 그게 자기 돌봄이고 자기 치유이죠.

🍊 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는 걸까요?
💁🏻♂️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은 자기를 괴롭히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면 사람에게는 자아(에고)가 있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 에고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데, 이 에고가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판단 하게 돼요.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괜찮은지 아닌지, 이런 식으로 자기를 판단하고 그런 판단 속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자기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가죠.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기 쉬워요. 우리는 자아 개념 뿐 아니라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아 이상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높은 자아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더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고,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에요. 아동기 부정적인 경험의 결국 가해자라고 한다면 대부분 부모가 되겠죠. 성인이 되어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라고 남 탓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를 욕하거나 탓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부모에게서 사랑과 돌봄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남 탓을 하지 못하니 내 의식을 변형시켜서 내 탓을 하게 돼요. 그래서 때 이르게 내 탓 하기라는 방어기제가 발달되게 되고, 무슨 일만 있어도 내가 문제고 내가 잘못했고 내가 해결해야 하고, 잘 해결되지 않으면 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뿌리 깊은 내 탓의 정서가 형성돼요. 이렇게 되면 깊은 자기 불안이 생기고 살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찾게 되면서 자기 불안에 빠지게 되죠.
🍊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불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자기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좀 더 자기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해요. 치유의 본질은 내가 나한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거니까요. 그게 자기 돌봄이고 자기 치유이죠. 내가 나에게 좋은 곳이 되어준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바꿀 수 있어요. 어떻게 내가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자기 관찰이고, 또 하나는 자기 친절이에요.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으면 안 되고 둘 다 있어야 해요. 두 날개가 있어야 치유와 돌봄이 잘 이루어질 수 있죠. 자기 관찰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친절을 먼저 배워야 해요. 자기 친절이 안 되면 자기 안정화도 안 되고 자기 비난에 휩싸이다 보니까 자기 관찰도 할 수 없어요. 이번에 밑미에서 하는 리추얼도 자기 친절을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리추얼이죠.
🍊 이번에 같이 하는 리추얼이 셀프허그를 하면서 나를 토닥여주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는 리추얼이에요. 어찌보면 굉장히 짧은 리추얼인데, 이게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까요?
💁🏻♂️ 셀프허그를 하며 스스로를 토닥해주면 앞쪽 미주신경을 자극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앞쪽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 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거나 얼어 붙어버리는 식으로 자기 조절 능력이 낮은데, 자율신경이 불안정하기 때문이에요. 자율신경은 교감신경, 부교감 신경이 있는데 부교감 신경을 미주신경이라고 해요.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를 흥분시켜요. 부교감 신경인 미주신경은 둘로 나뉘는데 뒤쪽 미주신경이 있고, 앞쪽 미주신경이 있죠. 뒤쪽 미주 신경은 부동화 반응을 일으켜요. 우리가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어붙을 때가 있는데 이건 뒤쪽 미주 신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죠. 앞쪽 미주 신경은 우리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해요. 자기 조절력이 높고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은 앞쪽 미주신경이 잘 활성화 돼있어요. 앞쪽 미주 신경은 얼굴, 목, 흉부 상부 쪽에 분포되어 있는데 여기를 활성화 시키는 첫 번째 방법이 느리게 호흡하는 거예요. 호흡이 느려지면 앞쪽 미주신경이 활성화되고, 역으로 앞쪽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면 호흡이 느려지죠. 그래서 명상이나 복식호흡을 하면 도움이 돼요. 그다음 두 번째가 가슴을 토닥이는 거예요. 얼굴을 토닥이거나 목이나 귀 뒤를 마사지해주는 것도 좋아요. 아이가 칭얼거리면 가슴을 쓸어내려 주잖아요. 다 이유가 있는 거죠. 자기 돌봄을 잘하려면 자기 조절을 잘해야하고 자기 안정화를 해야하기 때문에 스스로 셀프 허그를 하고 가슴을 토닥이면서 나에게 친절한 말을 해주면 훨씬 더 큰 시너지가 나는 거죠.
🍊셀프허그에 과학적으로도 엄청난 비밀이 숨어져 있네요.
💁🏻♂️ 맞아요. 그래서 사실 셀프허그를 통해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는 것 하나만 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여력이 되면 자기 친절의 대화를 적어보고,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자기 돌봄 활동을 실제로 해보는 거죠. 자기를 위해 밥을 지어주거나 산책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요. 가능한 날은 세 가지를 다 해도 되지만, 바쁜 날은 그냥 스스로 토닥거려 주기만 해도 돼요. 아마 1분, 아니 30초도 안 걸릴 거예요.
<굿바이 게으름>이라는 책을 쓴 후 게으름 클리닉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거기에 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실행력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과도한 계획에 집착을 한다는 거예요. 실행력도 없고 에너지도 바닥이면 천천히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뒤처졌다는 불안감과 한 번에 따라잡아야겠다는 욕심,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굉장히 거창한 계획을 세우게 되죠. 결국 그 계획이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면 공통적으로 자기 비난과 자포자기를 하게 되죠.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바로 무질서함으로 들어가요. 그렇게 무질서 속에 있다가 또 위기감을 느끼고 현타가 오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또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는 것의 무한 반복이에요. 이분들이 오시면 게으름 클리닉에서 제가 했던 일이 굉장히 작은 계획을 세우고 작은 실천을 하게끔 하는 거에요. 그 작은 실천이라는 건 이 사람들이 듣기엔 정말 어처구니없게 작은 것들이에요. 나를 무시하냐고 짜증 내고 화내는 사람이 있을 정도요. 이를테면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 신발 가지런히 놓고 방에 들어가기, 밖에서 입은 옷을 가지런히 개서 넣기 같은 거죠. 중요한 건 이런 활동을 내 삶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작은 실천이라고 믿고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진심으로 하는 거에요. 신발을 정리할 때 아주 작은 실천이지만 내 삶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작은 걸음이라고 생각하며 정성껏 신발을 가지런히 넣는 거죠. 이렇게 작게 시작하면 그게 성취감이 되어서 실천을 이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돼요.
우리가 하게 되는 리추얼도 마찬가지에요. 아주 작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 리추얼이지만 마음을 담아서 하면 긍정적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어요.
🍊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친절과 자기 관찰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어느 정도 자기 친절이 훈련되었다면, 자기 관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자기 욕구를 알고 자기감정을 잘 이해해야 하고, 자기의 강점이나 재능도 잘 이해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자기감정을 잘 아는 것이라 생각해요. 감정을 알게 되는 것이 자기 욕구를 더 알게 되는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감정을 잘 알면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자기 욕구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이런 감정을 잘 찾아가면 결국은 자기표현도 잘할 수 있게 되고, 그런 감정을 통해 삶의 동력을 만들어 갈 수 있죠.
다음으로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관점에 갇혀 있다 보면 자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책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쓰기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하고 성찰하고 이해할 수 있죠.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해요. 자기 자신의 틀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고, 자기 발전이나 성장하는 데 있어서 혼자 힘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가 넘어설 수 있는 자기의 틀이나 한계 같은 것이 명확하게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지가 중요하죠. 기본적으로 우리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어요. 직장 동료나, 가족, 동문 이런 것들은 주어진 것에 가깝다면 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집단이나 네트워크를 스스로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밑미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중요한 성장 집단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자기 성장이라는 건 절대 혼자 이루어질 수 없어요. 나의 성장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집단들이 나에게 저절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배움이나 성장을 해나갈 수 있을지를 잘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많은 게 결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익숙한 환경 속에 머무르면서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데, 저는 이런 것들이 자기 이해에 굉장한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삼십 대 중반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한 단계 넘어설 수 있었죠.
🍊맞아요. 저도 그 때 쓰신 책 <굿바이 게으름>을 통해서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어찌 보면 그 시기가 작가님 인생의 퀸텀점프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 사람들마다 어떤 계기로 인해 도약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저는 아빠가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아이가 돌이 넘어가면서 매일 키를 쟀어요. 아이들은 정말 빨리 자라니까 매일 자라는 아이를 보는 게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하고 기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매일 계속 크는데 나는 계속 제자리인 것 같고, 더 극단적으로는 아이는 계속 자라는데 나는 죽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내 삶은 이렇게 다 결정되어 버린 것 같았죠. 그때가 고작 30대 중후반의 나이였는데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삶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만 남은 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아이한테 자꾸 희망을 걸게 되더라고요.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에게 나의 꿈과 희망을 투사하면서 투자를 하게 되는 식으로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아이에게 희망을 품기 보다는 내가 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떤가.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너무 지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통해 뭔가 배우고 성장하는 부모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한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너도 나처럼 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고, 그때부터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런 고민 속에서 구본형 변화 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연구원이 되었고, 그 속에서 제 삶의 목적의식을 찾게 되었어요.
🍊 그렇게 찾은 작가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 단지 어떤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꿈, 방향, 목적이에요. 그런 목적을 가지게 되면서 좀 더 지치지 않고 자기 속도로 성장하는 동력을 가질 수 있었죠. 목적의식은 나 혼자만 잘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 사회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헌할 수 있다는 지점과 만났을 때 발현되는 거라 생각해요.
🍊 목적의식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사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 질문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죠. 결국 욕구와 강점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에요. 여기에 사회적인 요구와 트랜드가 잘 교차하면 거기에서 목적의식과 삶의 방향이 태동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도 삶이 힘들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떠셨나요?
💁🏻♂️ 저도 2013년도에 번아웃이 크게 왔어요. 그래서 진료도 줄이고 여행도 다녀오고 했는데 잘 회복이 안 되어서 2014년에 병원을 정리했죠.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했는데 저한테 가장 좋은 휴식, 가장 잘 회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니까 트레킹과 캠핑이었어요. 병원을 정리하고 자연에서 트레킹을 하고 캠핑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최고조에 올라왔다고 느낄 만큼 활력이 차올랐어요. 그 느낌은 젊었을 때 열심히 살던 느낌과는 좀 달라요. 그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번아웃을 회복하며 인생이 최고조에 올랐다 느꼈을 때는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 치유에 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죠. 그래서 병원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고 여러 가지 것들을 시작했어요. 그때 시작했던 것들이 걷기 상담, 치유 걷기와 같은 몸 챙김 프로그램이에요.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죠.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할 때 마음가짐만 강조하기 쉬운데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좋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좋은 경험은 그 자체로 나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거든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오티움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티움은 놀이 같은 휴식이에요. 어떤 보상이나 결과도 상관없이, 책임이나 의무 때문이 아니라 그 활동 자체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나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는 거죠.
예전에는 머리로 세상을 살았다면 지금은 머리와 몸이 더 연결되고 통합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무리하지 않게 되죠. 예전에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자아 이상과 같은 자기 기준에 스스로 짓눌려 있었어요. 의식의 중심이 자아이고, 자아는 머리에 있다면, 자기의 중심은 가슴과 배, 즉 몸에 있어요. 자아와 자기가 멀수록 이런 불일치가 심할 수 있죠. 지금은 자아와 자기의 간극이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머리와 몸이 연결되고 통합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작가님도 번아웃을 겪으셨다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번아웃을 피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번아웃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번아웃은 너무 애를 써서 생기는 거거든요. 우리에게는 애쓰는 시간도 필요하고 애쓰지 않는 시간도 필요한데,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의 집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건 다 애를 써야 하는 것들이에요. 이런 것에 너무 주의를 많이 기울이기 때문에 번아웃에 빠지는 거죠. 그럼 애를 쓰지 않는 휴식의 시간,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을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뇌는 절대 멈추지 않아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 다른 생각을 하면서 공회전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 엔진을 절대 끌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때리기보다 좋은 것이 뭐냐면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거예요. 애쓰지 않는 주의, 애쓰지 않는 노력이라고 하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나 의무감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애쓰지 않는 것이 필요한데, 첫 번째는 자연이에요. 자연에서 자연과 연결되면 유유자적한 주의가 형성되죠. 애쓰지 않아도 그냥 감각이 열리거든요. 여행은 더 좋아요. 생경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감각이 열리게 되어가요. 번아웃을 예방하거나 회복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감각을 깨우는 게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여행을 매번 갈 수는 없으니 자연이나 공원,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내 감각을 느끼며 걷는 게 필요하죠. 만 보 이만 보 채우려고 걷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나뭇잎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보고 나무도 한 번 만져보고 하는 식으로 오감을 깨우면서 걷는 거예요.
두 번째는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예요. 그럼 자연스럽게 몰입이 돼요. 몰입은 자연스럽게 주의가 흘러가는 거지 내가 집중해야 한다고 다그쳐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번아웃이 되는 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가 애를 쓰기 때문인데,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능동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죠.
🍊 최근에는 관계에 대한 책도 쓰셨잖아요. 나를 잘 돌보고 나와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과 타인과 관계 맺는 것과는 어떤 접점이 있을까요?
💁🏻♂️ 건강한 자기 돌봄은 자기만 돌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요. 나를 돌보는 것에서 나아가서 나를 둘러싼 나와 연결된 또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자기 돌봄이죠. 문제는 자칫하면 자기희생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돌보지 않고 남만 돌보는 것도 문제고, 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만 돌보는 것도 문제죠. 그래서 건강한 자기 돌봄의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해요. 그 균형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다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내가 에너지가 너무 없으면 남과 나를 모두 돌보기 어렵죠. 일단 나를 돌본 후 나의 에너지가 채워져야 나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어요. 그래서 굳이 따지면 자기 돌봄이 좀 더 먼저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자기돌봄이 잘 된다는 것은 자기를 돌봄으로써 에너지나 활력이 만들어지면 그게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어야지 다른 사람 신경을 안 쓰고 나만 돌보는 쪽으로 가게 되면 그건 결국 이기적인 것과 다를 바가 없겠죠.
🍊건강한 자기 돌봄과 타인 돌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참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 인간관계란 게 참 어려운데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 할 수 있어요. 관계에서 오는 신호를 잘 파악하는 것이 균형을 잡는데 필요해요. 예를 들면 대표적인 신호가 피해의식이에요. 나는 너를 챙겨주는데 너는 나를 안 챙겨준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리고 보상심리도 있어요.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줬으니까 너도 나한테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죠. 그다음에는 분노라는 감정이 있어요. 나만 이렇게 애쓰고 있고, 상대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느낌인데, 이 정도까지 되면 너무 희생적인 관계로 가고 있고 기울기가 너무 기울어져 있다는 거니까 조금 더 자기 돌봄 쪽으로 갈 필요가 있어요. 모든 관계에는 균형점이 필요해요. 한 사람만 희생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나만 돌보겠다는 것도 이기적인 마음이죠.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이야기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좀 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죠. 상대만을 돌보는 것도 미숙함이고, 관계를 뒷전으로 하고 나만 돌보는 것도 미숙함이에요. 나와 타인 모두 챙길 수 있는 것이 건강한 건데 그 기준점과 균형을 잘 잡기 위해서는 관계의 기울기에서 오는 신호를 잘 파악하고 그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조절해주는 대화나 소통이 중요하죠.
🍊그 신호를 어떻게 잘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이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게 자꾸 머리로 판단을 하려는 거예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에너지는 사실 몸의 에너지와 무관하지 않은데, 자꾸 머리로 나는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남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면서 내 몸의 에너지를 무시하고 오버를 할 때가 많아요. 사실 균형을 잘 찾으려면 머리의 생각이 아니라 내 몸의 상태와 에너지를 잘 파악해야 해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려면 내 몸의 감각들이 깨어나야 해요.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거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으로 치우칠 때마다 내 몸의 감각이나 감정으로 돌아와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내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 내 감정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자기 대화가 필요한 거죠. 우리는 자꾸 머리랑 대화를 하면서 나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자기 기준에서 머무르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내 몸의 어떤 감각과 감정으로 돌아와서 그것들을 좀 더 느껴보는 거죠. 이렇게 하는 게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고 막연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거구나 라는 감각이 생겨요. 그리고 수치화를 해보는 것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 내 몸 상태를 1부터 10이라고 한다면 내 에너지가 지금 몇인지 물어보고 답하면 내 머리의 기준이 아니라 내 몸의 상태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몸을 느끼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 몸의 감각을 깨우는 걸 몸 챙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호흡을 느끼거나 내 걸음걸이를 알아차리는 건데, 일상에서 이렇게 몸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그널 중 하나가 피곤이에요. 우리가 일에 휘둘리다 보면 일이 많다고만 생각하고 피곤이라는 것을 억압하고 무시하기 쉽거든요.
🍊 마지막으로, 나답게 성장하고자 하는 메이트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 동기 심리학에서는 세 가지 욕구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라고 이야기해요. 첫 번째가 자율성이고, 두 번째가 향상성이고, 세 번째가 관계성이죠. 이런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거의 비슷해요. 우리가 안 먹고 안자고는 못 살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세 가지 심리 욕구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박탈당하거나 결핍되면 불행을 느끼고 정신적인 무기력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래서 내가 불행하거나 무기력을 느낀다면 이 세 가지 욕구 중에서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성장은 모든 욕구와 관련 있지만 특히 향상성과 관련이 커요. 이 향상성이란 것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달란트가 있다는 거예요. 능력이나 자질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열매 맺어 나가려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생명의 본성과 같은 것이 성장인 거죠. 이건 외부에서 나한테 강요되거나 사회적인 욕구와는 다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은 성장 욕구가 너무 일찍 좌절되어 버린 경우도 많아요. 20-30대인데 학습된 무기력으로 뭘 해도 잘 안되고, 아웃풋도 잘 안나오니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식으로 무기력하게 성장 욕구가 좌절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반대로 이게 변질되어서 성공 욕구로 치닫는 경우도 있죠. 자기 본연의 기질이나 강점, 재능에 기반하기보다는 사회적 욕구나 일반적인 성공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 거죠. 저는 우리 내면에는 모두 본연의 성장 욕구가 있고 이걸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중요해요. 사실 자기 계발이 요즘 시대 번아웃에 큰 기여를 했는데, 우리가 자기 자신을 착취하게 된 주 원인 중 하나가 자기 이해 없는 자기 계발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기 이해가 뒤따르지 않은 자기 계발은 자기 착취로 갈 밖에 없으니까요. 자기 이해가 있는 자기 계발을 해야 자기 성장으로 갈 수 있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세 가지를 잘 알고 이해해나가는 것이 자기 이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고, 이것을 잘 이해해서 삶의 방향으로 만들어 간다면 나답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