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즐거움, 고전문학에서 찾았어요.
실컷 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즐거움, 고전문학에서 찾았어요.
아주 오랜만에 밑미의 리추얼 메이커 인터뷰로 찾아왔어요! :) 오늘은 10월부터 <드라마보다 재밌는 고전문학 마을>을 시작하는 김미리 메이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고전문학이라니,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시작하자니 왠지 어려울 것 같고,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릴스나 쇼츠에서 재미를 찾고는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오늘 인터뷰를 잘 읽어보세요. 아무리 실컷 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즐거움을 고전문학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요.

🍊미리님, 안녕하세요. 미리님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 글 쓰고, 콘텐츠 만들고, 커머스 구축하는 김미리입니다. 작년 봄까지는 회사에 소속되어 12년 차 이커머스MD로 일했는데요. 지금은 퇴사하고 2년 차 프리워커로서 일하고 있어요.
🍊 프리워커로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어떤 리듬으로 리추얼을 하는지 궁금해요.
📚 모닝 페이지를 쓰며 하루를 시작하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해요. 저녁 독서를 좋아하는 편인데 빈도로는 틈새 독서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고 이용하는 시간이나 다음 일정까지 잠깐 시간이 비게 될 때 있잖아요. 가볍고 얇은 종류를 골라서 읽어요. 독서하는 시간을 내서 몇 시간, 몇 권 이상 독서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일상 속에서 편하게 자주 읽으려고 해요.
사실 리추얼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게 올여름이예요. 5년간 공들여 직접 고치고 가꾼 시골집이 수해를 입었거든요. 집의 곳곳이 망가진 모습을 보니 허탈하고 무기력했어요. 그때 리추얼이 큰 힘이 되었어요. 리추얼이 있어서 원래 제 마음에 가깝게 찬찬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모닝 페이지도 많이 쓰고, 고전 문학도 많이 읽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마음이 돌아오더라고요. 마음이 힘들어질 때를 대비해서 내 마음 체력을 평소에 쌓아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롭게 리추얼 마을을 시작하셨잖아요. 그냥 책 읽기도 아니고 고전 문학을 읽는 리추얼 마을을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 독서가 취미이신 분들은 많죠. 저도 예전부터 책 읽는 건 좋아했고요. 그런데 고전문학은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았어요. 예전에 읽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실제론 너무 재밌는데요! 그래서 리추얼로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고전 문학이 종류가 굉장히 많잖아요. 내가 읽는 책뿐만 아니라 서로가 읽는 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추얼을 하면 직접 독서와 간접 독서가 다 될 수 있는 거죠.

🍊미리님도 처음부터 고전 문학을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고전 문학에 빠지게 된 거예요?
📚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책을 몇 권 추천 받았어요. 그중 한 권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책이었어요. 고전 문학은 두껍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얇고 무엇보다 내용 전개가 엄청 빨랐어요. 일단 이 소설은 남편과 간이식당을 하며 사는 ‘코라’가 식당에 찾아온 남자와 내연관계를 맺다가, 남편을 죽이기로 하는 것에서 시작이 돼요. 보통 이렇게 죽는 건 이야기의 결말인데 이 소설은 이후의 이야기가 더 본격적이에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느낌이잖아요. 죽음 이후 코라와 내연남의 관계, 내밀한 심리묘사가 책장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읽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재밌다니 또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전 문학의 세계에 스며들었죠.
🍊고전문학을 학창 시절에 억지로 읽은 기억 때문에도 재미없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 맞아요. 그리고 책 고를 때 어려운 게 이미 읽어봤다고 생각한 책들이 많았어요. 제가 10대 때 <데미안>을 여러 번 읽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게 권장 도서에 늘 있었잖아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안 읽었다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노인과 바다>도 줄거리가 기억나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까 대충 아는 거랑 책을 읽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학창 시절에 데미안을 읽으며 하나도 이해가 안 됐었는데 서른 살이 넘어서 책을 읽으니까 책의 구절들이 너무 절절히 와 닿아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고전 문학은 읽는 시기에 따라서도 참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 저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책을 20대, 20대 중반, 30대 초반에 읽으려고 계속 시도했는데 책이 너무 안 읽히는 거예요. 너무 철학적인 내용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실패하다가 3~4년 전 즈음 다시 읽었는데 인생에 그 책이 꼭 필요한 순간에 읽게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때가 저한테는 그런 시기였나 봐요. 나를 찾고 싶고,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퇴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싯다르타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를 해서 정말 다양한 여정을 경험하거든요. 책을 읽으며 싯다르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깨달음이란 게 먼 길을 떠나서 길 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미리님 리추얼 소개에서 고전 문학을 읽으며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 현실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고 멀리 가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아예 다른 나라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고르면 좋은 것 같아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책도 좋고, 한국문학 단편선 같은 것들도 한국의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우리나라 말로 쓰였는데 시간을 거슬러 흘러서 완전 다른 시대로 떠나는 여행인 거죠. 소설 속의 복식도, 말투도, 시대 상황도 다른데 우리나라 말로 쓰인 거니까 시간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어요. 국내 여행을 원하는지 국외 여행을 원하는지, 어느 시대로 여행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여행을 떠나는 거죠.
🍊 사실 요즘은 정말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이고, 무엇보다 고전 문학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잖아요. 이렇게 바쁘고 자극이 많은 시대에 굳이 고전문학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 저도 릴스나 쇼츠를 볼 때가 있는데 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제가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가 도피인 것 같아요. 특히 걱정이나 근심이 많을 때 그런 것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그리고 릴스나 쇼츠는 정말 금방 흘러가는 트랜드를 보여주다 보니까 조금만 지나도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고전 문학은 아주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잖아요. 변치 않는 재미와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고전 문학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나 상황, 주인공의 의사결정과 지금 내가 하는 생각, 고민들을 비교해 봐요.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비교적 정해져 있잖아요. 동료나 친구, 가족 정도고 아예 새로운 사람이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잘 별로 없어요. 고전문학을 읽으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사는 사람의 삶을 볼 수 있잖아요. 다양한 고전 문학을 읽으며 그 속에서 기준을 계속 바꾸면서 내 삶을 같이 바라보고 이야기를 경험하다 보면 나를 좀 더 알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삶을 사는 속도는 정해져 있는데, 소설은 그걸 압축적으로 짧은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거니까 그런 삶을 여러 번 보고 지금 내 삶과 비교해 보면 내가 좀 더 확실해지는 것 같아요.
🍊 고전 문학이 아주 오래오래 살아남은 이야기라는 게 와닿네요. 그래서 시대는 달라도 지금 우리 삶에 와닿는 바가 많은 것 같아요. 미리님이 특별히 감동하거나 위안을 받은 고전문학 작품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 제가 모두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문장은 데미안의 첫 문장이에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게 첫 문장으로 나오는데, 이 책을 딱 펼치면 나오는 이 문장이 그냥 나로 사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용기를 주는 문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첫 문장만 읽어도 좋은 책들이 많아서, 많이 안 읽고 처음 몇 페이지 혹은 첫 문장만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우울하고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추천하고 싶어요. 누구나 한번은 죽는데 그걸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읽으면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건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책의 후반부에는 별빛, 밤 냄새, 들판의 소리를 하나하나 세세히 묘사해요. 죽음이라는 비극을 통해 오히려 삶의 의지를 얻는 부조리한 상황이죠. 죽음 앞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 되뇌어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결국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기력하거나 사는 게 의미 없을 때 반복해서 읽게 되게 돼요.
🍊 실제로 카뮈가 이 책을 쓴 시기가 세계대전 때문에 인간성에 대한 회의와 왜 사는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이 팽배했던 시기였잖아요.
📚 맞아요. 혼란한 시기 속에서 생각했던 글이 책으로 나온 거고, 사실 저희가 지금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고전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지만 반복되고 비슷한 것들도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페스트>라는 소설도 코로나를 예견한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말이죠. 그래서 그 속에 나오는 캐릭터를 볼 때 현실 세계의 주변 사람들을 투영해 보기도 해요. A는 내 친구 같고, B는 누구 같고, 나는 C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A처럼 살고 싶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뭐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고전 문학 작품이 정말 많아서 책을 고를 때 나에게 맞는 게 뭔지 고르는 게 어려울 때가 많은데 미리님은 어떻게 읽을 책을 고르세요?
📚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요. 앞서 말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은 제인스 M. 케인의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졌대요. 책 띠지에 설명이 있길래 저도 두 책을 나란히 이어서 읽었어요. 민음사 세계 고전문학 같은 경우, 뒷날개에 그 작가의 다른 책이나 비슷한 책을 추천해 주니까 그렇게 연결해서 읽어도 좋고요. 리추얼 마을에 오셔서 다른 메이트들이 읽고 공유한 책을 살펴보시는 방식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고르는 거긴 해요. 서점에서 책 냄새 맡고 왠지 맘에 드는 책을 골라서 첫 문장을 읽고 이 스타일이 나랑 맞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고른 책이 항상 가장 재밌더라고요.
🍊 사실 책 읽기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같이 하면 뭐가 더 좋을까요?
📚 연결감인 것 같아요. 책을 읽을 때는 오롯이 혼자가 되잖아요. 하지만 너무 좋은 걸 발견하면 어디엔가 외치고 싶고 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죠. 그래서 독서 모임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독서 모임에는 못 나가는 사람이에요. 이상하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리추얼 마을은 혼자 책을 읽다가도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강도와 빈도로 연결될 수 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따로 또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리추얼 마을 첫 모임에서도 서로 멋쩍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인사할 수 있게끔 읽었던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의 첫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저는 벌써부터 어떤 문장으로 첫인사를 건넬지 책장을 뒤지며 설레고 있어요!
🍊 고전 문학을 읽을 때 또 어떤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까요?
📚 가볍고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고전문학 좋아한다면서 이 작품도 안 읽었어? 혹은 이 작가 좋아한다더니 이것도 몰라? 같은 마음은 내려놓고요. 물론 더 많이 알 수록 작품을 더 깊이, 다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내 마음에 어떻게 맺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저도 보르헤스를 한 번 읽어보자 싶어서 읽다가 무슨 소리지? 하다가 덮은 적이 있어요. 과감히 덮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중도 포기하면 안 돼, 일단 첫 장을 열었으니 끝까지 읽어야 해’ 같은 마음은 내려 놓고 안 읽히면 그만 읽는 거죠. 아직 마음이 그 작품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일 테니 가볍게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고전문학의 세계는 무척 넓으니까요.
🍊 마지막으로 고전문학 리추얼에 관심은 있지만 시작이 어려운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할 때는 즐거운데 하고 나서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은 자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아니래요. 그래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말이 쉽지, 그런 일이 흔한가요! 놀랍게도 고전문학 읽기는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책 한 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단출한 취미고요. 으리가 고전문학 리추얼 마을에 모여 함께 읽기 시작하면 여러 개의 세계가 겹쳐지며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일단 오셔서 첫 문장을 읽어보시라! 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리님과 함께 고전문학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아면, 밑미 리추얼 마을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