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을 떠나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는 우리를 오토파일럿 모드로 움직이게 만드는 많은 신호들로부터 억지로 분리하게 만들어 줘요. 하지만 떠난다고 변화가 저절로 찾아오는 걸까요?
우리는 익숙한 신호에 반응하며 살고 있어요
오늘 아침 눈을 떠서 지금 이 레터를 읽기까지, 내가 '이렇게 하자'고 분명히 선택한 순간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알람을 끄고, 휴대폰을 확인하고, 씻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 별다른 생각 없이 움직여요. 우리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사실 의식의 바깥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이게 가능한 건 우리 삶의 대부분이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일을 하면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토파일럿 모드가 돌아갈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특히 익숙한 공간에는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신호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판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신호들을 그저 따르면서 늘 하던 패턴을 반복하며 살아가요. 내가 늘 하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죠.
익숙한 신호를 벗어날 때 무엇이 달라질까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는 우리를 오토파일럿 모드로 움직이게 만드는 많은 신호들로부터 억지로 분리하게 만들어 줘요. 여행지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야 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곁에 없으니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서도 잠시 자유로워지죠.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피곤하기도 해요. 그동안 무의식이 대신 해주던 일들을 이제 의식이 직접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어색함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질문 하나가 깨어나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지?' 익숙한 곳에서는 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어요. 하루가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으니까요. 하지만 신호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돌아가던 패턴이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 작은 틈이 생겨요. 그 틈에서 우리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 돼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고민도 해보고,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죠. 늘 같은 생각으로 끌어당기던 신호들이 보이지 않으니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펼쳐지는 거죠.

단순히 떠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아요
물론 떠난다고 해서 저절로 오토파일럿 모드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니에요. 인터넷과 SNS,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물리적으로 새로운 공간에 간다고 해도 익숙한 신호들이 손바닥 안에서 우리를 따라오거든요.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회사 단톡방 알림은 울리고, 낯선 숙소에서 눈을 떠도 집에서처럼 습관적으로 SNS 피드를 내리게 되죠.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익숙한 신호에 붙들려 있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의 여행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신호들로 가득해요. SNS에서 본 핫플레이스, 별점 높은 맛집, '여기서 찍어야 한다'는 포토존, 누군가 정리해 둔 2박 3일 추천 코스까지. 우리는 낯선 곳에 가서도 누군가 세워 둔 심호를 따라 움직이곤 해요. 줄을 서라는 신호에 줄을 서고, 사라는 신호에 지갑을 열고, 찍으라는 신호에 카메라를 드는 거죠. 익숙한 신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다른 신호로 갈아탔을 뿐 오토파일럿 모드는 그대로 켜져 있는 셈인 거죠.
진짜 변화는 떠남이 아니라 패턴을 벗어나는 순간 시작돼요
결국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건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틈이에요. 그리고 이 틈은 꼭 멀리 떠나야만 생기는 건 아니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어떻게 패턴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가 나와요.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 문제에 시달리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에요.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수많은 평행 우주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들과 연결되죠. 흥미로운 건 다른 우주로 넘어가는 방법이에요. 영화에서는 이를 '버스 점프'라고 부르는데,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엉뚱한 행동을 해야 해요. 신발을 좌우 바꿔 신는 것처럼요. 그리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행동일수록 더 먼 우주로 넘어갈 수 있죠.
영화 속 설정이지만, 우리 삶에도 꽤 그대로 들어맞는 이야기예요. 우리를 지금의 우주에 붙잡아 두는 건 늘 하던 패턴이거든요. 익숙한 신호에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동안,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그런데 패턴에서 벗어난 작은 행동 하나는 오토파일럿 모드를 멈추고 그 자리에 틈을 만들어요. 그 틈 사이로 우리가 미처 살아 보지 못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죠.
그러니 이번 주에는 나만의 작은 버스 점프를 시도해 보세요.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한 번도 시켜 보지 않은 메뉴를 주문하거나, 늘 앉던 자리 대신 다른 자리에 앉아 보거나,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보는 작은 것들로 시작해 볼 수 있어요. 그 작은 패턴에서 벗어난 작은 엉뚱함이 오토파일럿 모드로 흘러가던 하루에 틈을 만들고, 좀 더 의식적인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