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나요?
특별함을 찬양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
어렸을 적 읽었던 위인전을 기억하나요? 우리는 위인전을 읽으며 그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워요. 위인전에 나온 인물과 같은 시기를 살았지만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는 배우지 않죠. 위인전은 한 명의 천재 혹은 권력자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서술해요.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역할은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하죠. 우리가 자주 소비하는 수많은 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비범하고 특별한 주인공은 모든 서사의 중심에 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해하게 돼요. 자연스럽게 특별함은 동경하고 평범함은 하찮게 생각하는 시각이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죠.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를 쓴 마리나 반 주일렌은 우리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은 권력자들의 이야기, 액션 영화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뉴스 속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미친 듯한 상승과 급작스런 추락을 좋아하고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며 영웅의 여정을 찬양하고, 그 토대를 마련해준 수많은 평범한 삶들의 역할에는 주목하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별함은 좋고, 평범함은 별 볼 일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구분하게 되죠.

평범함과 특별함, 구분이 필요할까요?
그런데, 평범함과 특별함이란 것이 과연 진짜 존재하는 걸까요? 무엇이 평범하고 특별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 경험, 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어요. 한국에서 평범한 것이 타국에서는 특별한 것이 되고, 10년 전에 평범했던 것이 지금 특별한 것이 되는 것처럼 시기와 장소에 따라서도 평범과 특별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지죠.
사실이 둘을 구분하고 좋고 나쁨을 편 가르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되었어요.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 속에서도 비범하고 특별한 가치와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고, 특별하고 비범해 보이는 것 속에서도 결국 보편적인 속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평범과 특별을 구분하며 한 개인 혹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판단해 버려요. 철학자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을 섣불리 판단함으로써 복잡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한다고 이야기해요. 누군가를 좋고 나쁨으로 평면적으로 판단하면 타인은 통제되기 쉽고,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평면적인 인물로 전락하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 평범과 특별, 실패와 성공과 같은 이분법적인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의 삶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커요. 이들은 삶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삶, 즉 특별하고 성공한 삶 혹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삶만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비관하곤 해요.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며 실체 없는 특별함을 갈망하고, 평범함을 비관하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거죠.

이분법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아 살아가기
평범함과 특별함을 구분하지 말라는 것이 미지근하게 대충 편하게 살면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평범함과 특별함을 구분 짓고 평가하는 것을 멈추면 우리가 가진 고유한 가치와 다양성이 드러나요. 이때 우리는 삶에서 펼쳐지는 모든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어요. 가치평가에서 자유롭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열정을 쏟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죠.
메이트님은 어떤 기준으로 특별함과 평범함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었나요? 혹시 특별하고 성공한 삶을 쫓으며 매일 똑같은 것 같은 평범하고 지루한 내 삶을 나도 모르게 평가 절하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모든 것에 좋고 나쁨, 특별과 평범, 성공과 실패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판단하고 있었다면 이제 꼬리표를 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이분법의 세상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행복과 만족도 저절로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