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에서 벗어난 선택, 쉽게 할 수 있나요?
다수에서 벗어난 선택, 쉽게 할 수 있나요?
제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건축탐구 집’과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에요. 도시와 아파트라는 평균적인 삶의 모습을 벗어나서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데 이런 콘텐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댓글의 유형이 있어요. '나이 들어 아프면 병원이 멀어 큰일 난다.’ ‘주택은 살기 불편하다.’ ‘곧 후회할 거다.’와 같이 훈수와 예언이 담긴 댓글이죠. 물론 이런 댓글에는 실질적인 조언이나 걱정이 서려 있을 수도 있어요. 병원이나 마트가 먼 곳에서 사는 삶은 실제로 불편할 수 있고, 주택에서 사는 건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확실히 더 불편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다수가 하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선택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고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아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왜 아파트에 사냐는 질문을 받지 않지만, 산속에 집을 지은 사람은 평생 그 질문에 답해야 하죠.
생김새도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고, 좁은 수도권에 인구의 반 이상이 몰려 살고, 아파트나 공동 주택이라는 비슷한 주거 형태가 평균적인 삶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한국에서는 평균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으니 조금만 달라져도 눈에 띄고, 눈에 띄면 내 선택의 이유에 대해 증명을 요구받곤 하니까요. 만약 남과 다르게 한 내 선택이 잘못되거나 후회한다고 하면 ‘그럼 그렇지!'라는 비난이나 조롱을 받을 준비까지 해야 하니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 가죠.

다수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이유
사실 우리가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한 본능이에요. 우리 안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내가 선택한 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다는 아주 오래된 본능이 있거든요. 다수에게 이미 검증된 것을 선택했을 때에는 이런 인정과 증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요. 다수가 이미 검증하고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증명서 역할을 해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고, 이미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왠지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안심되는 경험, 해본 적 있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맛집에 가면 마음이 놓이고, 유명한 사람들이 추천한 추천템에는 왠지 신뢰가 가는 것처럼요. 반대로 아무도 없는 식당은 들어가고 싶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물건을 사려고 하면 왠지 내 선택이 맞는 걸까 의심하게 되죠.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은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으면 견딜 수 없는 고독과 불안을 느낀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불안을 피하려고 스스로 자유를 반납해 버려요. 모두가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고 믿으면, 더 이상 혼자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되거든요.
다수를 따를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
문제는 이 편안함에 값이 매겨져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해서 다수가 선택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외부의 시선에 맞춰 삶을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삶이라고는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타인들이 되어버리는 거죠. 이렇게 삶의 모든 영역을 다수의 기준에 맞춰서 살다 보면 점점 나를 잃어버려요.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사람들은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릴 때에는 큰 소란을 떨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진행된다고 말해요. 심지어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금씩 나를 잃어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다수를 따르면 삶이 편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점점 버거워진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남들만큼'이라고 말할 때의 그 '남들'은 사실 평균이 아니에요. SNS도, 주변의 이야기도 평균을 보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남들만큼 하려고 애쓰다 보면 사실은 상위 몇 퍼센트를 좇게 되고, 남들만큼의 집, 차, 교육, 문화생활, 노후 준비를 전부 따라가려는 순간 필연적으로 가랑이가 찢어져요.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영역에서 돈과 시간과 마음을 다 써버리느라, 정작 내가 진짜 아끼는 것에 쓸 에너지도 돈도 시간도 남아 있지 않은 거죠.
따를 것과 지킬 것을 선택하세요
그렇다고 "다수를 따르지 말고 모든 분야에서 내 기준을 갖고 나만의 선택을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건 대부분의 경우 아주 편리하고, 꽤 합리적인 방식이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이미 검증해 둔 꽤 괜찮은 선택의 결과들을 가져다 쓰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차가 나에게 그저 이동 수단일 뿐이라면, 내 취향에 완벽하게 맞는 차를 찾겠다고 몇 달을 쏟는 대신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무난한 차를 고르는 게 현명한 일일 수 있어요. 그렇게 아낀 에너지가 있어야,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부분에 대해 오래 고민할 여력을 만들 수 있거든요.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쓰는 모든 물건과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나만의 취향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기꺼이 따라가고, 어디부터 확실히 나로 남을지를 아는 일에 더 가까워요.
그러니 적당히 남들을 따라 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해도 괜찮은 삶의 영역은 무엇인지, 이것만큼은 내 쪼를 지키면서 나의 취향과 기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계속 이유를 대야 하고, 잘못됐을 때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해도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런 것이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그 하나만큼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내 주장대로 가보고 그 책임을 온전히 져보세요.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런 경험을 해본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