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문제만 해결되면 정말 마음이 편해질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본값
메이트, 요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문제가 있나요?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나게 돼요.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예상하지 못한 지출, 어긋난 관계, 예전 같지 않은 몸 컨디션까지, 문제는 우리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찾아오죠.
불쑥 찾아오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지금 내 앞에 닥친 이것만 해결되면 모든 게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얄궂게도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어김없이 다음 문제가 찾아와요. 우리는 아무 문제 없는 매끄러운 삶을 꿈꾸지만, 그런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깨달은 사람이 되어도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어요. 심지어 부처님도 등이 아파 통증으로 고생했고, 기근이 들어 탁발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말 먹이를 드시며 몇 달을 지내기도 하셨어요. 말 안 듣는 제자들을 끊임없이 질책하며 훈계해야 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이 게임의 기본 설정값은 끊임없이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는 건 모두에게 주어진 기본값이라 피할 수 없지만,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각자가 내리는 이 선택에 따라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가 정해지게 되죠.
문제 때문에 힘든 걸까 문제에 대한 생각 때문에 힘든 걸까?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어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긴 하지만 여기에도 이미 세팅된 기본값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거든요. 이 기본값은 삶의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문제 앞에서 수많은 생각을 만들어 내며 스스로 괴로움을 키워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나는 운이 나빠.’ ‘그때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등등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진짜 원인은 문제에 대한 생각이에요.
불교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한 남자가 독이 묻은 화살을 맞았어요. 사람들이 급히 화살을 뽑으려 하자 남자가 말해요. 잠깐, 화살을 뽑기 전에 먼저 알아야겠소.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은 누구요?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이오? 키가 큰 사람이오, 작은 사람이오? 이 화살대는 무슨 나무로 만들었고, 깃털은 어떤 새의 것이오? 지금 해야 할 일은 화살을 뽑고 상처를 치료하는 일 하나뿐인데, 남자는 화살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작 화살을 뽑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독은 계속 퍼지고 고통은 점점 심해지죠.
남자를 보면서 '왜 저렇게 멍청하지?'라고 생각할 테지만 사실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비슷하게 행동해요. 삶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냥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누구 탓일까,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이 일이 다른 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고통을 만들어 내는 거죠. 불교에서는 이걸 두 번째 화살이라고 불러요. 붓다는 살면서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걸 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우리의 선택이고, 우리를 훨씬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첫 번째 화살이 아니라 두 번째 화살이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자라나는 생각들
자, 그럼 문제에 딸려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 거라면 생각을 멈추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알았다고 해서 생각이 순순히 멈춰주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저도 지하실 누수를 발견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이번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보자고요. 그런데 잠깐 방심하면 어느새 최악의 장면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벽을 전부 뜯어야 하면 어쩌지, 곰팡이가 이미 퍼졌으면, 수리비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면, 수리를 해도 계속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 실제로 확인된 건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생각을 만들어 내는 거죠.
사실 이렇게 생각이 제멋대로 자라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값이에요. 뇌는 위험을 미리 대비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문제가 감지되면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부지런히 시뮬레이션하거든요. 생존에는 유용했던 기능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있지도 않은 고통을 미리 겪게 만드는 기능이 되기도 하죠. 그러니 생각이 자꾸 부풀어 오르는 건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마음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제 그만 생각하자'는 다짐은 잘 통하지 않아요. 그럼 도대체 우리의 선택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생각을 멈추는 자리가 아니라,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그 자리에 있어요. 조금 허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거면 충분해요. 알아차리는 순간 자동으로 굴러가던 기본값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기거든요. 그 틈이 바로 우리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생각에 끌려가던 사람에서 생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 쏘는 사람에서, 담담하게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생각을 알아차리는 연습하기
그럼 알아차린다는 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걸까요? 사실 대단한 게 아니에요. 생각이 저만치 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또 놓치면 또 돌아오는 것. 그게 전부거든요. 오늘 밑미레터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볼게요.
첫째, 나에게 일어난 문제에 대해 사실과 생각으로 나눠서 적어보세요. '지하실 벽에서 물이 샌다', '아직 수리 업체에 연락하지 않았다'가 사실이라면 ‘벽을 다 뜯어야 할지도 몰라', '왜 하필 나한테', '이사가 밀리면 어떡하지'는 생각이에요. 다 적고 둘을 비교해 보면 대개 사실은 몇 줄이고 생각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도 함께 알 수 있죠.
둘째, 생각이 시작됐다는 신호를 몸에서 찾아보세요. 우리는 대개 생각에 한참 빠진 뒤에야 뒤늦게 알아차려요. 그런데 몸은 생각보다 정직해서 꽤 일찍부터 신호를 보내요. 어깨가 뻣뻣해지거나, 턱에 힘이 들어가거나, 숨이 얕아지거나, 속이 조여드는 느낌처럼요. 나에게 자주 찾아오는 신호가 무엇인지 알아두면 그게 알람이 될 수 있어요. 알아차렸다면 생각을 지우려 애쓰지 말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이나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으로 잠깐 주의를 옮겨보세요. 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어서, 몸으로 돌아오면 나도 지금으로 돌아오게 되거든요.
셋째, 알아차렸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다음 한 가지로 옮겨가세요. 걱정으로 대응하는 건 기본값이지만, 행동으로 옮겨가는 건 선택이에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 손댈 수 없지만, 오늘 전화 한 통은 걸 수 있어요. 우리는 종종 충분히 걱정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믿지만, 걱정과 문제 해결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생각의 고리는 대개 생각이 아니라 아주 작은 행동으로 끊어질 수 있어요.
저도 요즘 이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한참 생각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괴로움에 빠지는 빈도가 훨씬 줄어든 것 같아요. 우리 삶에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찾아올 거예요. 그건 우리가 고른 게 아니라 삶이라는 게임의 설정값이니까요. 하지만 그 문제를 고통으로 만들지 말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선택 중 하나라는 것을 함께 기억해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