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삶에 놀이가 존재하나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했어요. 인간이 생각하고(호모 사피엔스) 도구를 만드는(호모 파베르) 존재를 넘어, 놀이를 통해 문화를 만들고 성장하는 존재라고 정의한 거죠. 그는 인간은 놀이가 단순한 오락이나 여가 활동을 너머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온 근본적인 활동이라고 이야기해요. 예술, 철학, 법, 전쟁, 지식 등 인류의 수많은 문화적 성취는 놀이에서 시작되어 발전해 왔다는 거죠.
실제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놀이할 때 뇌의 여러 부분 중 창의성과 문제 해결, 의사 결정, 감정 조절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두정엽이 활성화 된다고 해요. 그뿐만 아니라 놀이할 때는 세로토닌, 엔도르핀, 도파민 같은 호르몬이 활성화되어 학습 동기와 동기부여를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은 감소한다고 해요. 놀이는 우리의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우리가 보다 인간답게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놀이를 잃어버린 현대사회
놀이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현대 사회에서 놀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요. 놀이학자라고 불리는 심리학자 스튜어트 브라운은 우울증, 불안, 완벽주의와 같은 현대인들이 겪는 많은 심리적 문제의 원인을 ‘놀이의 결핍’ 때문이라 이야기해요. 그는 놀이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뇌의 발달과 정신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해요. 그가 생각하는 놀이는 외부의 목표나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즐거운 활동을 이야기해요. 그는 요즘 우리가 하는 놀이가 너무 구조화되었고 성과 지향적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해요.
실제로 현대 사회는 ‘생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당장의 생산성을 만들어 내지 않는 모든 활동들을 ‘시간 낭비’라 느끼게 만들어요. 이런 태도는 놀이의 본질인 과정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놀이할 때조차 결과에 집중하게 만들어요. 자연스레 원시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놀이는 점점 사라지고 놀이의 즐거움과 자발성은 점점 사라지게 된 거죠.
소비가 놀이가 되어버린 세상
더 큰 현상은 놀이가 ‘소비’로 치환되어 버렸다는 데 있어요. 현대 사회에서 놀이는 대부분 돈을 지불하고 경험해야 하는 활동이 되어버렸어요. 주5일제가 보편화되고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놀이는 이제 하나의 큰 산업이 되었어요. 이제 우리는 여가 시간이 생겼을 때 주체적으로 뭘 하고 놀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하는 대신, 무엇을 소비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해요.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대신 돈을 내고 재미를 구매하는 것에 익숙해진 거죠. 테마파크나, 방 탈출 카페에 가고 각종 체험 상품들을 소비하며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진짜 하고 있는 건 ‘수동적인 소비’이지 ‘자발적인 놀이’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돈으로 사는 압축되고 정제된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돈이 있어야만 재미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기도 해요. 하지만, 놀이의 본질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에요. 진정한 놀이는 값비싼 경험이나 최신 게임기, 스마트폰이 아닌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에서 시작된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다시, 놀이 본능을 되찾아 오기!
놀이는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시간이 많고 여유로운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놀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만 바꾼다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놀이를 시작할 수 있어요. 놀이 본능은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거든요. 그럼 우리 안에 억눌려 있었던 놀이본능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시작해 볼 수 있을까요?
우선, 반복되는 일상을 어린아이의 시각 혹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은 놀이를 발견해 보세요. 출근길에 매일 새로운 길로 가는 놀이를 하거나, 요리할 때 새로운 레시피를 실험해 보고, 떨어진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모아 나만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아요. 이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실수에서 기쁨을 찾고, 비효율에서 특별한 재미를 발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거죠.
호모 루덴스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건, 우리가 잊고 지내왔던 창의성과 생명력을 회복하는 길이에요. 그러니 당장 오늘부터,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서 특별한 재미를 발견하는 놀이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작은 활동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덧 내 안의 놀이 본능이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