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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심리 이야기2025.11.10 · 읽는 데 6

우리는 왜 계속 새로운 정답을 찾을까요?

욜로, 갓생, 저속노화, 파이어족 까지 정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중세 시대 사람이 현대로 타임슬립을 한다면?

메이트, 중세 시대를 살던 사람이 현대로 갑자기 타임슬립을 한다면 무엇에 가장 놀라게 될까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인터넷 같은 기술의 발전도 놀랍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도 깜짝 놀라게 될 거예요. 중세를 살던 사람들에게 신은 절대적인 존재였고, 자신이 태어난 신분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들에게 자유롭게 직업과 주거지를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으로 보일 거예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에서 중세 시대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고 주체성이 결여되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특별히 순종적인 사람들이라서 신의 뜻을 따라 살았던 것이 아니에요. 그저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이 속한 시대 속에서 '좋은 삶'을 찾으려 했던 거예요. 사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도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중세 시대 사람들이 신앙과 신분이라는 틀 안에 갇혀 살았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시대를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틀

철학자 미셸 푸코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어요. 에피스테메는 각 시대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지식 체계이자 사고방식을 말해요. 각 시대마다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정상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하는데, 이 합의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서 우리는 그것이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거죠.

이를테면, 중세 시대에는 '신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진리였고, 산업혁명 시대에는 '근면과 생산성'이 미덕이었어요. 푸코에 따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주의’, '자기계발', '효율성', '개인의 성공'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에피스테메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 푸코는 개개인은 시대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면서 따른다고 이야기해요.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을 자책해요. 더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직업을 가지지 못한 건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죠.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나답게 산다'고 생각하는 그 '나다움'조차도 사실은 시대가 만들어낸 틀 안에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시대의 권력이 우리의 생각과 욕망까지도 형성하고 있는 거죠.

주체적인 삶은 가능한 걸까?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럼 결국 우리는 시대가 시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거야? 내 생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시대가 주입한 거였어?"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푸코도 이것이 절망적인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했죠.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시대에 지배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시대와 동떨어진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게 아니라, 202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치관과 담론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건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시대에 '휘둘린다'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는 거예요. 우리는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시대와 나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체적으로 살 수는 있어요.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물의 흐름을 읽고 자기 방향으로 헤엄칠 수는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시대의 흐름 속에서 파도 타듯 살아가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불가능할지 몰라요.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도 시대가 주입하는 정답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소진되는 대신, 시대의 흐름을 파도 타듯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내 안의 목소리와 밖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렇게 살고 싶다'고 느낄 때, 그게 정말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목소리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주입된 '해야 한다'는 목소리인지 구분해 보세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싶은 건 정말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어서인가요, 아니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더 성공한 것처럼 보여서인가요? 시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고 그것을 따르도록 여론을 만들어요. 그 방식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대신 질문을 던져 보세요. "왜 지금 이런 담론이 유행하는 걸까?"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갓생이 유행한다면, 그게 우리 사회의 어떤 불안이나 욕망을 반영하는 건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불안이나 욕망이 나한테도 있나? 있다면 갓생이라는 방식 말고 내 방식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세요. 시대가 제시하는 정답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어요.

두 번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해 보세요.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고, 무시해서도 안 돼요.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 완전히 빠져들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태도를 가져보세요. 마치 영화를 볼 때 스크린에 너무 가까이 앉으면 전체가 안 보이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전체 그림이 보이는 것처럼요. '아,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구나', '이런 가치관이 주목받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되, '그래서 나도 무조건 따라야 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세 번째,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선택적으로 수용하세요.

시대의 트렌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알려주기도 하죠. 중요한 건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내게 맞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갓생 트렌드에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산다'라는 조언은 보편적으로 좋은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지 않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라는 강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택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20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질문들을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요. 유행하는 삶의 방식들을 지켜보며, "저건 어리석어"라고 판단하기보다 "저 사람들은 지금 시대의 어떤 질문에 답하려는 거지? 그 질문이 나한테도 의미 있나? 있다면 내 방식의 답은 뭘까?" 라고 물어보는 여유를 가져보세요. 시대를 거부하지도, 시대에 휩쓸리지도 않는, 시대와 함께 파도를 타며 서핑하듯, 삶을 살아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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