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때문에 위축되는 도형님의 고민

도형님의 고민
이제 막 40에 들어선 직장인 여성입니다. 또래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을 마치고 20대 후반에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1년 정도 일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연한 기회로 대학교 조교로 일을 시작하며 약 10년간 대학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네요.
저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할 때 불편함을 느낍니다. 아마도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라는 것에서 왠지 모를 소외감과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동시에 떠올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마음으로는 괜찮지 않고, 왠지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에 위축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문제는 이런 마음이 이성을 만날 때에도 불쑥불쑥 올라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때면 내가 당당한 직업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2년 전에는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원에도 진학했지만, 아직 이런 마음에서 변화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제 삶에 당당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반가워요, 도형.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이에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여러 기준 중에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직업 같아요. 스스로 직장이 된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한 구분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으로 불리는 ‘그 외’가 있습니다. 제가 좀 극단적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이렇게 잠깐만 구분해도 참 재수 없죠? 저는 이런 식의 구분이 정말 일의 세계를 납작하게 표현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도형도 느끼다시피 이런 단순한 구분에 근거한 차별은 아주 뿌리 깊고, 사소한 일상에까지 퍼져있습니다. 대학은 특히 교수와 정규직 교직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저도 대학에서 학사, 석사과정을 거치고, 공기관,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오히려 종종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사기업이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 갇혀 있는 공기관, 대학보다 합리적이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이 답변 글에서 다루기에는 훨씬 더 복합적인 문제겠지만, 어설프게나마 이렇게 맨 앞에 언급하는 이유는, 도형을 괴롭히는 많은 생각들이 사실도 아니고, 도형의 잘못도 아닌 사회적 편견과 부당한 대우 때문임을 꼭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으나 그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네. 그렇다면 도형이 던진 고민 끝의 질문처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특별한 행운이나, 큰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들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경우는 제외하고 저와 같은 범인의 입장에서 말해본다면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일하는 도형이 도형의 전부가 아니라 부분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직업은 우리를 설명하는 일부일 뿐인데, 우리는 종종 그것이 아주 중요하고도 큰, 어떨 때는 전부인 양 착각합니다. 그렇게 유지되는 자존심도 촌스럽지만,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는 직업이라면 얼마나 내 자신이 싫고 속상할까요.
직장인 도형 외의 수많은 도형을 떠올려 보고 적어보세요. 일상 속의 취미 생활, 가족/친구 관계, 여행, 운동 등 도형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중요한 삶의 일부분으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많은 사람에게 지지받으며 하는 삶은 분명 멋지지만, 수많은 멋짐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이 답변 글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해주세요.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는 게 유난한 자랑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직업은(수입은) 아주 과하게 대표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도형처럼 평범한 일을 성실히 하며 그 결과로 얻은 수입으로 소소하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욕구를 줄여 소박한 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도형의 고민글 속의 ‘내가 조금 더 스스로 당당한 직업을 가지지 못해서’라는 말에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도형이 하는 일을 좋아하긴 어렵더라도, 그 일을 하는 도형을 도형만은 인정해주세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냈는지 도형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차별적 시선이 아니라 지금의 도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분전환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도형을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세요. 이렇게 어중간한 직업으로 살아서야, 이렇게 앞날이 불안해서야,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지 여전히 걱정되시나요? 다들 그렇게 잘 삽니다. 돌아보면 도형도 지금까지 꽤나 잘 살아왔고요.
어쩌면 가족이나 친척, 학창 시절의 친구, 직장 동료 등 나이, 직업, 결혼, 차, 집 등이 공개된 관계들을 많이 해오셔서 더 신경 쓰이는 지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스트레스들에 힘들어하는 것도 사실이어서 요즘의 취향 기반이나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커뮤니티들은 철저하게 나이, 직업 등의 사회적 조건들을 비공개로 한 새로운 만남의 자리들을 열고 있잖아요. 그런 곳들을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권하고 싶어요. 저도 조용한 동네 생활자이자 상담자 커뮤니티 안에서만 지내다 밑미에서 만난 별별별별 사람들을 통해 새롭고 넓은 세계를 만났거든요.
아, 글이 또 길어지고 있네요. 죄송해요. 끝낼게요. 도형, 저는 도형이 꼭 되어야 할 어떤 직업도, 반드시 해야 할 어떤 경험(결혼, 출산, 육아, 세계 여행?)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도형이 알게 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요. 정말이에요.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도형이 그대로 온전해요. 존중받아야 할 존재고요.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저도 제가 그렇다는 것을 자주 잊어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하고 쓰면서 되새겨요.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