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관계에 놓인 보리님의 고민

보리님의 고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특히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는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대화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최근에 “너는 나를 오해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먼저 연락을 해서 그동안 일로 생긴 논쟁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는 상대의 이야기도 듣고, 제 이야기도 하면서 오해도 풀고 다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주일도 되지 않아 두어 번 더 부딪히게 되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감정 섞인 비난을 들어 결국 제 마음도 많이 상하게 되었어요.
일로 만난 사이라도 사적으로도 가깝다고 생각해서 더 서운했던 것 같아요. 계속 마주해야 했고 상대가 사과도 해서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네요. 계속해서 상대가 왜 그랬을까 곱씹어 보게 됩니다. 넘겨짚는 것보다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 하니 이제는 상대가 피하는 것 같아 찝찝한 채로 지내고 있어요.
그냥 제 마음을 다스렸어야 하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안녕하세요, 보리.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이에요. 인간관계 정말 어렵죠. 저도 종종 넘어져 코 깨지고 아득한 수렁에 빠집니다.
보리의 고민대로 스치는 인연들이야 기대가 적고, 단순하고 명확하게 의사소통하니 문제가 될 일이 없거나, 진짜 아니구나 싶으면 얼른 물러서면 되니 그나마 살면서 요령이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가까울수록, 알게 된 지 오래되고 속 이야기를 나누고, 믿고 의지하는 관계일수록 왜 이리 어려울까요? 모든 깊은 관계가 그런 건 아닌데, 유독 잘 지내면서도 뭔가 미묘한 감정이 들고 오해가 쌓이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모든 상황에 딱 맞는 정답이야 없겠지만, 중요한 관계의 갈등 상황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은 있는 것 같아서 저도 고민 중인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MBTI로 고민글 속 두 분의 성격 차이 이야기를 한참 적다가 다 지웠어요. 성격의 차이는, 서로가 얼마나 다른가는 관계가 좋을 때 함께 확인하고 배려하면 좋을 것 같지만, 관계가 나쁠 때는 서로를 비난하는 이유가 되기 쉽거든요. 그러니까 ‘차이’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의 속성에 집중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우리의 감정은 결코 논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성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머리로 이해됐다고 해서 감정이 나아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한쪽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쌓아왔다면 사건의 전후를 따져 오해를 푼다고 해서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거죠. 남은 감정은 어떻게든 현재의 관계에 다시 영향을 미치고요. ‘상대의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비난’이 이후에 사과로 이어졌다면 상대에게도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그 상황에서 터져 나온 거니까요. 혼자 쌓아둔, 오해가 생기고 대화를 하고 정리되었으나, 풀리지 않고 남은 감정이요. 보리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어요. 고민 글의 마지막에 ‘그냥 내가 내 마음을 다스렸어야 했나’하고 말할 만큼 내 감정은 내가 책임지는 게 맞지 않냐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속단했다면 미안해요. 근데 내 감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잖아요.
친한 관계가 어려운 건 맞는 방법이 늘 좋은 관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맞다’는 기준도 모호하고요. 대부분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거든요. 크고 작은 권력의 차이가 있죠. 권력이라는 말이 너무 센 것 같지만, 자기표현을 좀 더 잘하거나, 경력이 조금 더 있거나, 친한 사람이 더 많거나 하는 다양한 차이들이 권력이 돼요. 그리고 실제적인 차이가 있거나, 심리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느끼게 되면, 투명하게 소통하기가 어려워요. 친밀하지 않고,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지죠. 어떨 때는 서로 신중해져서 자신만 탓하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답니다. 혹시 보리도, 상대도 그러고 있지는 않을까요?
원인이나 상황에 대한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로 넘어갈게요. 다른 길은 없어요. 안전하고 조용한 곳에서 둘이 만나 긴 대화를 해야 해요. 벌써 어색하고 긴장되지요? 용기를 내어 주세요. 긴장감을 낮추기 위해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대화가 ‘당신과의 관계가 나에게 너무 귀하고 중요해서, 남은 감정 없이 진솔하고 편안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말해주세요. 이어서 보리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잔뜩잔뜩 말해주세요. 그리고 상황과 서로의 의도를 맞춰보며 오해를 푸는 ‘이해의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받아주는 ‘존중의 대화’를 해보세요.
한 사람이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나는 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해요. 듣는 사람은 아무리 그건 아닌데 싶어도 ‘사실은 그게 아니고,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금지예요. 다만 ‘아, 그렇게 느꼈구나’, ‘그래서 서운했구나’, ‘화났구나’, ‘억울하고 속상했구나’하고 그대로 받아주세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아무런 조건 없이 수용해주세요. 그 감정을 느낀 건 이미 일어난 일이니 존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쏟아져 나올 때까지 들어주세요. 충분히, 아주 충분히, 침묵이 흐를 때까지요. 그리고 다음은 역할을 바꿔서 반복하세요.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그 아래의 좌절된 욕구도 같이 말해보세요. ‘내 의견을 네가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나한테 너무 중요해서’, ‘너에게만큼은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던 고민과 힘듦을 이해받고 싶어서’와 같은 기대했던 것들과 이상적인 바람들요. 이때도 듣는 사람은 어떻게 한다? 이유 설명 금지. 그저 ‘그랬구나’하고 받아주세요. 이 과정에서 눈물이 날수록,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지요. 그럼 그것까지 존중하세요. 꼭 안아주는 건 좋지만, 말은 계속하게 하고,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은 말고요.
어때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죠? 아니, 연습할 만하죠? 친밀한 관계의 갈등 다루기가 이토록 어렵고, 복잡하고,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데, 우린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거야말로 이론 10학점, 실습 10학점 필수 이수 과목으로 해야 하는데, 아쉽네요. 물론 보리와 상대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가능성이 높겠죠.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다로 돌아보게 되는 일도 많잖아요.
어쩌면 더 안전한 관계에서의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존중의 대화’에 이어지는 ‘이해의 대화’는 얼마나 수월하고 시원하고 짜릿한지요. 보리가 그 경험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일상에서는 차곡차곡 이해가 쌓여 좋은 감정으로 이어지지만, 극적인 상황에서는 그 반대거든요. 풀어야 할 갈등이 있을 때나, 반대로 사랑에 빠지는 일도요! 이 긴 답변도 이제 끝이에요. 읽어주어 고마워요. 보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와의 관계가 보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지 보리도 그도 꼭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살맛 나는 인생에서, 서로의 살맛이 되어주셔요. 응원을 보냅니다.
혼자가 제일 편한 슝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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