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늘 부딪히는 가을님의 고민

가을 님의 고민
“저는 왜 늘 남들과 부딪히고 갈등을 만드는 걸까요?”
무난한 대인관계를 가지고 싶은데, 어느 집단에 있든 불편한 관계가 생겨서 고민입니다. 최근 회사에서도 팀원 간 불화로 마음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조직에 대한 애정이 높은 편인데 불화가 생기니 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후회가 듭니다. 우스갯소리로 회사에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하는데, 그 또라이가 저인것 같고요. ㅠㅠ
그 와중에 요즘 초중고 생기부 떼어서 보는 게 유행이라고 해서 떼어봤는데요. 사실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있던 기억이 있어서 열어보기가 무서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기부에 안 좋은 말들이 적혀있더라고요. 저는 소위 말하는 일진은 전혀 아니었고,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었는데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아니다 보니 선생님들이 더 아니꼬왔나봐요.. 현재 사회생활을 하며 고민하는 관계의 문제가 유년 시절부터 지속돼 왔다 는걸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니 더더욱 우울해집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원만한 관계를 지니지 못할까, 왜 나만 자꾸 부딪치는 걸까 싶어요. 생각해 보면 낮은 자존감이 모든 원흉 아닐까 싶어요. 자존감이 낮으니 자꾸만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고, 나를 뽐내려는 태도 때문에 모난 돌이 정 맞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근데 웃긴 건 그 와중에 낮은 자존감이 뿌리 깊은 죄책감과 내 탓도 동시에 만들어 내서 자꾸만 나 스스로를 갉아먹어요. 그래서 모순적으로 착하다는 말도 종종 들어요... 이럴 거면 아예 뻔뻔스럽던가, 왜 마음은 또 강하지 못해서 후회와 곱씹음만 반복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불편한 관계를 안 만들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때때로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평화를 선택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가을. 슝슝입니다. 고민글을 읽으며 가을의 불편함, 속상함도 느꼈지만, 가을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을은 아마도 인정받기 위해서,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아닌 걸 바로잡기 위해서,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정함을 바라서 등 여러 이유로 갈등을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돌아보면 잘 싸운 거다 싶은 경우도 있고, 후회가 되기도 하겠지만 가을은 자신의 주장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 거잖아요. 그 용감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저는 반대입니다. 우유부단한 평화주의자죠. 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부당 해고를 당하고도 맞서 싸우자는 분위기에 잠깐 편승했다 갈등 상황이 불편해서 슬며시 빠지거나, 회사에서든 사석에서든 누군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말을 꺼내면 싫은 시간이 길어질까 봐 피곤해질까 봐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폭발하기도 하죠. 오랫동안 표현하지 않았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한 번에 쏟아내니 상대는 당황하고, 사과하기보다는 같이 화를 내며 서로를 비난하고 관계가 틀어집니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표현과 침묵, 솔직함과 배려가 반대말일까요? 극단의 선택밖에 없는 게 아니라는 건 가을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쪽이 늘 옳은 것도 아니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오래된 기도문이 생각나네요. 검색해 보니 라인홀트 니부어의 ‘평안을 비는 기도문’이네요. 이 전능한 신을 향한 간절한 요청은 시간이 흘러 지금도, 저에게도, 가을에게도 유효한 걸 보니, 진짜 어려운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가을은 많은 문제들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반대로 보고 받아들이기를 선택한 거고요. 그리고 우리 모두 그 결과들을 책임지며 살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지혜는 살아가며 조금씩 배워가겠지요. 존경하는 비욘 나티코의 책 제목처럼,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손바닥을 펴고 살아간다면요. 하지만 지금 당장에도 조금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요령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바로 훅 들어갑니다.
갈등과 평화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그가 헛소리를 하거나,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갈등할 것인가, 평화할 것인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을의 선명한 기준이 있겠지요. 가을을 열불 나게 하는 레드버튼들이 있겠지요. 혹시 그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었나요?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결과의 원인을 내 통제 밖의 것에 둘 때 후회하고 억울해합니다. 말 그대로 원인이 내가 아니니까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곰곰이 현재의 상황과 이어질 결과를 따져보고, 내가 선택합시다. 갈등하기로 했다면, 불편한 관계를 받아들이고 선을 긋고 나를 주장하고 동시에 나를 지키세요. 평화하기로 했다면,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먼저 존중해 주세요. 저는 가끔 갈등하기를 선택한 후, 힘들게 속내를 털어놓다 울기도 하고, 화도 내며 진이 쏙 빠지는 시간들을 겪고 나서 더 투명하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는 경험을 합니다. 그 결과 MBTI가 정반대인 친한 친구가 여럿 생겼지요. 반대로 평화를 선택해서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도, 끝내 저 혼자 참고 참다 조용히 손절하기도 하고요.
가을도 갈등 상황이 다가오는 게 보일 때 가끔은 평화를 선택해보세요. 연습한다, 배워본다 생각하시고요. 가을과 다른 생각, 행동, 태도, 습관 등이 상대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들임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동의하지는 못해도, 내 안의 약점들이 있는 것처럼 그의 안에도 상처와 분노가 있어 그렇구나 이해할 수는 있을 거예요. 가을은 조직에 대한 애정이 높다고 하셨는데, 동일하게 애정이 높아도 다르게 애정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애정이 낮은 사람도 일하는 곳이 회사라는 것을 배우게 될 수도요.
가을, 정의나 이익이 아닌 원만한 대인관계를 원하신다면, 나의 판단(그 판단히 지극히 상식적이고 매우 맞다 하더라도)을 내려놓고, 평화를 선택해보세요. 낮은 자존감, 죄책감 탓은 마세요. 그것들이 어떤 과거의 결과든, 가을은 매순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기꺼이 책임지는 현재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인의 삶이니까요. 분명 모든 부정성 보다 더 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와 화해하게 되는 경지에 이를 지도요. 자존감은 그 상태를 표현한 말일 뿐이고, 적절한 죄책감은 내가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저는 지금도 갈등을 연습 중입니다. 이미 갈등을 시작할만큼 충분한 용기로, 열린 마음으로 평화를 연습할 가을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추신: 제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아니라, 제가 믿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사랑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고통스러운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그래도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가끔은 성공한답니다. 사랑하는 가을이 되기를.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