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관계 맺는 게 어려운 리리님의 고민

리리님의 고민
“옆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졸업, 퇴사를 하고나니 옆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네요. 커리어도 관계도 스스로 다 망쳐버린 것 같고, SNS를 보면 나만 관계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듭니다.
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갈등 상황이나 모임을 매번 회피해 왔던 저 자신을 이제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거절 못 하고 섣부르게 대답했다가 도망쳐서 타인을 힘들게 했던 일들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마음을 쓰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과거가 너무 부끄럽고 괴롭습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땅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을 안 하다 보니 타인과 관계 맺고 대화하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네요. 앞으로 어떻게 인간관계를 해나갈지 막막합니다. 조언이 아닌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관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미지의 세계지만, 용기를 내어 안전하고 다정한 모임에 찾아가 보세요.”
안녕하세요, 리리. 혼자 노는 게 제일 편한 슝슝입니다.
퇴사 후 주위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앞으로 어떻게 인간관계를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담긴 고민글, 잘 읽었습니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했으나, 할 질책은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처럼 리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잖아요. 그러니 저는 리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보고 싶어요.
고민글에 없는 내용들도 궁금합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관계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 고생도 하고 성취도 하며 먹고 사는 일도 있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쉬게 하고 살리는 것들로 이루어진 시간들도 있습니다. 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으니, 가족 등 몇몇 리리의 곁에 있는 사람들도 있겠네요. 리리에게 없는 것들을 헤아리기 전에, 리리에게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세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어찌 됐든 그게 지금의 리리가 가진 자원이고, 새로운 시작을 할 밑천입니다. 한 번 차근차근 정리해서 적어보세요.
더 읽기 전에 지금요.
어떤가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리리가 아닌, 그저 인간관계가 서툴고 적은 리리임을 발견하셨나요? 인간관계는 리리의 전부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적은 게 리리의 큰 잘못도 아닙니다. 우리의 출발 지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도 여러 기쁘고 힘든 순간을 경험하며 잘 살아낸, 괜찮은, 대견하고 아름다운 사람, 리리. 그런 리리가 지금 용기를 내어 두려운 관계 속으로 조금 더 나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는 게 좋을까요?
근본적으로도 관계는 내 욕구를 채우는 도구가 아닌 인생을 배우는 자리지만, 시작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공부로 여기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음, 초등학생의 과학 실험 정도로 생각해 봐도 좋고요. 뭐든 처음 배울 때 제일 중요한 건 안전과 성취를 맛볼 수 있는 쉬운 난이도잖아요. 가볍고 짧은, 내가 좋아하거나 내게 익숙한 주제의 모임부터요. 밑미의 리추얼 같은 온라인 모임도 좋고요.
저도 실은 인간관계가 고픈데 두려울 때가 많아서 좋아하는 독서, 글쓰기, 보드게임을 함께 하며 누군가를 만나는 걸 좋아해요. 취향이 비슷하니 대화의 주제도 분명하고 할 말도 좀 있고요. 내가 원하는 만큼만 나를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만큼만 관계를 유지해도 되니까 부담도 덜 하잖아요. 맞지 않거나 지치면 좀 물러나도 되고요. 그러다 마음이 맞는 모임, 사람을 만나면 조금씩 다가가 보기도 하고요.
제 경우를 조금 더 말해보자면, 저희 동네에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책방이 있는데요.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고, 사장님이 저와 성별도 MBTI도 같아서, 저의 독립출판물을 입고하러 갔다가 인사하고, 다음에 들러 조금씩 말도 섞고, 고양이 간식 사 가서 커피도 얻어먹고, 같이 맥주도 한잔 하다가 3년이 지나니 요즘은 별일 없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어요. 밑미에서도 조금씩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이 몇 분 있고요.
리리, 관계는 사는 내내 알다가도 모르겠는 미지의 세계지만, 용기를 내어 리리의 가까이에 있는,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다정한 모임들에 찾아가 보세요. 이 고민글에 적은 것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세요. 나를 위한 거절은 아주 작은 것부터 연습하세요. 도망가도 되고요. 후회되면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세요. 상대의 반응은 그의 몫으로 두고 공부하는 마음, 연습하는 마음으로 관계의 자리로 나아가세요. 참,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에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건 아시죠? 리리가 리리에게 가장 든든하고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세요.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끝까지 내 편인 사람으로 스스로의 곁에 있어 주세요.
제가 하는 쪽지 쓰기 리추얼이나, 읽고 쓰는 모임, ‘프루스트의 서재’의 수다 혹은 보드게임 모임에 놀러 오셔도 좋아요. 환하게 맞이해 줄게요. 누구에게나 인생은 꽤나 고되고 외로운 시간들을 포함하지만, 그 사이에서 리리가 좋은 사람들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즐겁고 편안한 순간들을 많이 누리며 살길 바랄게요. 그럼 안녕히.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