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예측해서 결론 내는 먼지를 재우는 비 님의 고민

먼지를 재우는 비님의 고민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해서 결론을 내버려요”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미혼 여성입니다. 제 고민은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한다는 거예요.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하고 너무 많이 생각해서 결국 제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곤 합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이게 고민이었던 적은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저만의 특기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살다 보니, 정작 상대방과 부딪히기도 전에 미리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해서 그냥 참아버리거나, 넘겨짚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원래도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경험도 많아서, 이 경험이 축적되어 오히려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머리로는 직접 부딪혀 보기 전엔 모른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이야기해 보자고 이 틀을 깨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하는데요. 간혹 그렇게 시도해 보고 나면 결국 제 생각이 맞았구나 하고 끝나버리니까 점점 더 말하기보다 혼자 짐작하고 결론을 내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의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런 성격 때문에 점점 관계도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때로는 너무 지쳐 혼자 쉬어갈 지라도, 다시 관계로 나아가길, 사랑을 선택하세요.”
먼지를 재우는 비, 반갑습니다. 뭐라고 줄여서 부를까 몇분을 고민했어요. 먼재비? 먼지비? 먼비? 재비? 그냥 먼지로 하겠습니다. 우주의 크기와 역사에 비해 우리의 존재와 생은 작은 먼지니까요? 음,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먼지의 고민글 잘 읽었습니다.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상대의 반응을 생각하느라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관계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고요.
먼지의 살아온 역사와 고민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알지 못하니 저도 고민글을 토대로 추측을 해보려고요. 먼지의 고민에 살을 붙여보면 이렇습니다. 먼지는 대인관계 상황에서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이 정해져있고, 먼지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나 상황, 둘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살아오며 관찰하고 이야기 나눈 수십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근거로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생각이 달라도 참는 경우가 많고요. 가끔 이러한 틀을 깨려고 노력하지만 역시 내 추측이 맞았구나로 결론이 납니다. 이 패턴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내 인간관계 방식과 성격까지 수동적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 답답하고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고민글까지 보내게 되었고요. 어느 정도는 비슷한가요?
먼지, 내용이 아니라 방식의 측면에서 한 번 살펴봅시다. 어떤가요. 먼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예측의 과정과 제 답변글에서의 추측의 과정이 꽤 유사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헛다리를 짚은 거고요. ‘그래, 나도 이렇게 현재의 상대에 대한 관찰과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조합해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지.’ 하는 마음이 든다면 제가 말을 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하게 예측이 되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계속 읽어주길 바라요.
우선 이 고민상담소의 세팅과 먼지와 제가 사는 세상에서의 대인관계 상황의 다름을 말하고 싶어요. 고민상담소는 매 주 한 번의 고민글과 한 번의 답변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 예외도 있지만, 딱 한 번이라는 핵심과 한계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먼지와 제가 매일 마주하는 관계들은 모두 열려 있습니다. 사실 ‘너무’ 열려 있지요. 한두 번 보고 볼 일이 없는, 볼수록 별로인, 거리를 두거나 피하고 싶은, 오래 보고 싶은, 너무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계속 봐야하는 등의 무한한 다양성이 있어요. 그 관계들은 사실 상대도, 상황도 심지어 먼지조차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새롭고도 변화무쌍한 그 무엇입니다. 누군가 십 대의 먼지와 지금의 먼지를 익명으로 각각 만난다면 같은 사람인 줄 모를 것 같지 않나요?
먼지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했던 경험들에 근거한 사전지식들은 내 안의 노하우로서는 소중한 가치가 있지만, 그때의 나와 그때의 타인과 그때의 상황의 조합이라 오늘의 나와 타인,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꽤나 낡은 것이에요. 나의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기억에 근거한 것이고요. 사전정보가 색안경이 되어 내가 예측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기도 하죠. 먼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 수 없는 타인으로부터, 위험하고 막막한 미래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려고 발달시킨 생존방식이기도 해요. 복잡하죠. 사실 저도 인간관계에서 ‘와아, 정말 모르겠다’할 때가 많아요. 내 마음도 복잡한데, 다른 사람 속은 더 모르겠고, 상황은 또 어찌나 예상밖인지! 에잇!
그러니 조금만 단순하게 생각해봐요. 현재 먼지의 관계방식은 먼지가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 경험의 자연스러운 총합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먼지에게 만족스럽지 않고 불편하니 점검과 수정이 필요한 거라고요.
혹시 먼지가 취하고 있는 지금의 안전지향적인 관계 방식이 반복되는 관계에서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놀라고 다친 마음부터 하나 하나 돌아보고 다독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지쳐있는 마음이어서는 어렵거든요. 먼저 휴식과 회복부터 해야죠. 관계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을만큼 힘과 여유가 있는 마음 상태로요.
그 다음에 변화를 시도하는 거죠. 제일 안전하고 편한 관계부터요. 어떤 사람은 오래 사귄 친구나 애인부터 시작하고요. 어떤 사람은 서로 공통의 화제가 있으면서도 거리와 예의를 지키는 취향모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나 이미 온갖 감정이 얼키고 설킨 가족은 오히려 후순위로 두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입을 닫는 열 번 중 한두 번만 입을 열어보세요.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서요.
대신 목표는 다른 사람을, 상황을 먼지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먼지의 몫이 아닌 걸요. 그러니 먼지의 감정과 생각을 말한 것으로 목표 달성이에요. 멀리 돌아왔지만, 저도 답변글을 쓰다가 깨달았지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이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야 만족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 실망할 수밖에 없고, 힘들고 지칠 게 뻔한 길이에요. 다른 사람의 것을, 세상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나는 내 마음을 잘 살피고, 내가 붙들거나 흘려보낼, 혼자 간직하거나 밖으로 표현할 감정과 생각을 선택하는 것에만 집중해요. 그리고 타인과 세상의 반응은 그대로 존중하고요.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니까요.
이번 답변글은 유독 길고 헤매는 것 같네요. 저도 여전히 관계에 대해서는 고민도 실수도 상처도 많아서 그래요. 하지만 앞으로도 웃으며 손을 내밀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함께 한숨 쉬고 울며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내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사랑을 배우려고, 사랑하려고요. 먼지도 때로는 너무 지쳐 혼자 쉬어갈 지라도, 다시 관계로 나아가길, 사랑을 선택하길 부탁합니다. 먼지를 재우는 비의 안녕을 바라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