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한 지하님의 고민

지하님의 고민
"실체 없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해하는 제가 부끄럽고 창피해요.”
안녕하세요, 직장인이었던 지하입니다. 최근에 부쩍 지하철 타기가 어려워졌어요. 퇴사한 회사는 강압적이고 숨 막히는 분위기였어요. 소리를 지르고 가스라이팅하는 상사도 있었고, 저는 타깃은 아니었지만, 늘 긴장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 회사를 다녔어요. 울면서 퇴근하고, 주말엔 시체처럼 누워있었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상사에게 화가 나서 순간 목덜미가 뻣뻣해졌던 경험도 있어요. 이렇게 화병이 나고 화내다 쓰러지는구나 생각했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어려워진 것은 그맘때예요.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어지럽고 숨 막히고 죽을 것 같았어요. 물에 빠진 것 같이 먹먹했고 꿈속을 떠다니는 것처럼 몸과 세상이 분리된 느낌이었어요. 와중에 두려운 마음이 들고 내가 미친 건가 생각이 들어 버스에서 도망치듯 내렸어요. 그 후에 조금만 긴장이 되거나, 날이 춥거나, 약간만 어지러워도 공황 같은 증상이 튀어나와요. 겨우 집에 오면 실체 없는 두려움에 겁먹고 불안해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퇴사 후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친구나 가족에게 회사나 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런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마음이 아파요. 가치 없는 환경에 있던 저도 가치 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똑 부러지고 무던한 사람이라 알고 있는데, 이런 겁쟁이 같은 면을 숨기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창피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회복될 수 있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똑 부러지고 무던한 지하만큼 불안하고 울고 도망치는 지하도 모두 지하입니다. 괜찮습니다.”
안녕한가요, 지하.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이에요.
회사 밖에서 사는 서른 살 지하의 평일 하루는 어떻게 흐르고 있나요? 봄의 햇살과 바람,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걷고 있는 시간이 있을까요? 취향에 맞는 고요하거나 떠들썩한 곳에서 장소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편안하고 즐겁게 머무는 시간은요.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기 전에 지하의 오늘이 얼마나 안녕한가 궁금합니다.
지금은 퇴사한 회사에서 고생이 심했네요. 심리적인 압박감뿐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고, 대중교통과 같은 사람이 밀집된 곳을 못 견딜 만큼 불안하고 위축된 날들을 경험하셨어요. 강도만큼 기간도 중요해서, 얼마나 버티고 견뎠는지 알 수 없지만, 용기를 내어 벗어난 것만으로 잘했어요. 다행입니다. 손상된 몸만큼이나 상처받은 마음을 내버려 두면 더욱 나빠지고 회복이 어려워지거든요. 잘 퇴사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회사 이야기를 못 한 다른 이유가 수치심 외에 있을까요? 안전하고 친밀한 사람에게 나의 힘들었던 기억과 감정,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지하가 한결 가벼워질 수 있거든요. 그랬구나 이해받고, 그 상황에서도 애썼구나 존중받고, 너라서 그만큼 해낸 거야, 잘 나왔어,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수용 받을 필요가 있어요. 제일 믿을 수 있고, 따듯하고, 지혜로운 한 사람에게 이 글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꺼내보세요. 내게 필요한 건 이해와 존중과 수용이니,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꼭 안아달라고 먼저 부탁한 후에요. 그럼 듣는 사람도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지하를 위해 그 역할을 맡아줄 거예요.
그렇게 몇몇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를 반복해 보세요. 무리는 말고,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요. 자꾸 이야기를 꺼내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에 휘말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면 그건 지금의 내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인데요. 사실이 아니에요. 오히려 안전한 장소, 사람과 함께 거듭 이야기하면 할수록 조금씩 문제 상황과 나, 증상과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문제 상황과 증상은 점점 줄고, 나는 힘을 되찾으며 더욱 단단해지면서 과거의 경험도 증상도 문제가 아니게 될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검증된 방법이니 믿으셔도 좋아요. 시작이 가장 힘든데 아무래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심리상담사를 찾는 것도 괜찮고요.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면 신경정신과를 방문해도 좋아요. 지하가 지금 어떤 상태든 괜찮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회복도 시작되는 거니까요.
끝으로 지하, 똑 부러지는 지하, 무던한 지하만큼 겁내고 불안하고 울고 도망치고 실수하고 주저앉는 지하도 모두 지하입니다. 괜찮습니다. 지하와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그런걸요. 인생에 남은 날들이 많아요. 지하는 자신이 큰 바위에 부딪히고 막혀 스스로가 깨어지고 정체되었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은 지하는 바위보다 훨씬 큰 폭을 가진 강입니다. 그 바위를 안고서도 유유히 흐르고 있고, 이후에는 더 큰 바위들도 담아내며 바다로 흘러갈 거예요. 같은 시대를 흘러가고 있는 동료의 마음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덧. 지하가 고민 글에서 언급한 ‘수치심’은 최근의 밑미 라디오의 주제였어요. 한 번 들어보셔요
밑미라디오 수치심 편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0499/clips/11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