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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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 상담소2024.07.25 · 읽는 데 6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한 젤리의 고민

격주로 밑미 고민상담소의 질문과 답변을 엮을 책 <급할 것도 없고요, 정답도 없습니다> 에 소개된 고민과 답변을 고민상담소 코너를 통해 소개합니다.

젤리의 고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해왔고 지금도 계속 시험공부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서 좌절감이 큽니다. 공부와 일을 제외한 여가 활동을 하면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이제 넘어져도 일어날 힘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을 놓아줘야 할 거 같기도 하고요. 그동안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은 거의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밑미와 슝슝의 답변

"막막한 마음은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잖아요. 내 노력을 인정하고, 더 멀리 가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선물해 보세요."

오래 준비한 시험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낙심한 젤리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요. 차라리 젤리와 가까운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온종일 젤리와 함께해 주라고요. 만나면 아무 말 말고 오래 꼭 안아주라고요. 젤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손 꼭 잡고 산책하고 카페에서 달달한 디저트와 맛있는 음료를 시켜놓고 젤리 이야기를 들어주라고요. 걱정 없이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 추억부터 어떤 삶을 살고 싶었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었는지, 학창 시절부터 공부, 공부, 공부하는 틈틈이 어떤 웃기고 어이없고 슬프고 힘든 별별 일이 다 있었는지까지 웃고 울고 한숨 쉬고 아련해하며 전부 쏟아내고 ‘다 지난 일이구나’, ‘이렇게 살아와서 결국 오늘에 이르렀구나’ 하는 헛헛하고 조금은 홀가분한 침묵만 남을 때까지요.

20대 초반, 서른이 넘은 선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선배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러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했죠. ‘아니, 서른 살이나 됐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당시 저는 서른 살 즈음에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도 않고 내 길을 불안해하지도 않으며 모든 게 확실해져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성공한 주인공처럼요. 그래서 막막함을 이야기하는 선배를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막상 서른이 훌쩍 넘어보니 이제는 그 선배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생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듯 간단히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던 거죠.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력하면 방황하지 않고 스스로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 것 같잖아요. 그래서 은연중에 내가 지금 흔들리고 힘든 이유는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나를 잘 보살피는 일이 왠지 사치처럼 여겨지고 더 열심히 노력해 확실한 상태를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우리가 자신에게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이유죠. 그런데 세기의 대문호 괴테는 방황이 노력의 증거라고 해요. 노력이 부족해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에 방황할 수 있다는 뜻이죠.

내가 세운 계획이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방황한다는 건 내가 지금까지 노력했고 뭔가를 지향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초조함과 불안감, 좌절감은 잠시 내려두고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한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세요.

24시간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사실 젤리만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건 아니에요. 잘 쉬는 것은 멈춤을 뜻하지 않아요. 이는 더 멀리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마음 놓고 쉴 때 불안해하며 생산적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곤 해요.

생산성과 효율성은 언제부턴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어요. 같은 시간에 일을 더 많이 하면 여가를 더 오래 누릴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 생산성이란 개념이 등장했죠. 하지만 일터에서 생겨난 이 개념은 우리에게 여가를 늘려주는 대신 삶의 모든 부문에서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만 옳다는 강박을 심어주기 시작했어요. 그 강박 탓에 우리는 지키지 못할 스케줄로 하루를 꽉꽉 채우고 행여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껴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빈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을 즐기는 대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며 제대로 쉬지도, 일하지도 못하는 찝찝한 시간을 보내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우리의 생산성 강박을 증폭시켰어요. 기술은 삶의 모든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측정하고 기록하고 전시할 수 있게 해줬고, 개인은 마치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하듯 자기 삶을 포장하고 보여주며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멋지게 편집된 타인의 삶의 조각은 완벽의 기준이 되고, 편집되지 않은 내 인생은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져요. 여행을 떠나도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즐기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내 몸에 주의를 기울이고 감각을 느끼기보다는 앱에 측정된 기록을 더 신경 써요. 마케터가 성과를 측정하듯 자신이 올린 글의 ‘좋아요’ 수나 댓글 수를 신경 쓰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과가 날까 고민하기도 하죠. 이렇게 삶의 모든 부분을 측정하고 기록하고 전시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를 위한 시간은 사라지고, 나를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만 남아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찾고 그걸 이루기 위해 견디는 시간은 쓸모없어 보이고, 남에게 좋아 보이는 걸 찾아 재빠르게 보여주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 착각하기도 해요.

이렇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면 늘 긴장 속에 살 수밖에 없어요. 이때 우리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교감신경을 활성화해요. 근육이 긴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죠. 예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 소화작용은 느려지고요.

과거에는 맹수에게서 도망칠 때나 사냥을 할 때처럼 짧고 강력한 긴장이 필요할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됐어요. 이를 통해 인간은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몸은 곧바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휴식하고 이완할 수 있게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더는 맹수에 습격당할 일도 사냥할 일도 없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신경 쓰며 교감신경을 활성화해요. 이렇게 일상의 대부분을 맹수에 쫓기는 모드로 생활하다 보면 우리 몸의 항상성은 깨지고 늘 피곤하다고 느끼며 스트레스로 인한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게 된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빠르고 바쁜 현대 사회는 개인을 끊임없는 긴장과 스트레스 상황으로 내몰기 쉬워요. 이럴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멈춰서 진정한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해요.

정말 잘 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잘 쉬어야겠다’는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보다는 내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해요. 그다음 나에게 충분한 이완의 시간을 주는 거예요. 아무리 탄성 좋은 고무줄도 계속 당기다 보면 끊어지듯,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고무줄을 느슨하게 하는 이완의 시간이 필요해요. 천천히 호흡하며 걷거나 명상이나 요가를 하거나 감사한 일을 떠올리며 감사일기를 쓰는 것 같은 활동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우리 몸과 마음이 충분히 이완하도록 도와줄 수 있어요. 새나 나무를 관찰하고 자연을 걷는 산책도 일상의 바쁜 속도에서 벗어나 충분히 이완하게 도와주는 좋은 활동이죠.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세요

다시 고민으로 돌아갈게요. 젤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 많이 지친 젤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새로운 방향을 결정하고 잘 시작하기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합격하고 취직하고 돈을 버는 일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은 맞지만 전부는 절대로 아니며, 그러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젤리의 존재가 유일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은 훼손되지 않아요.

이 말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만하고 그래도 괜찮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젤리도 저도 잘 모르지만 지금은 좀 쉬세요. 수년 달려왔으니 한두 달은 안식월을 가져도 마땅하지만, 어렵다면 딱 일주일이라도요. 어디로라도 떠나세요. 조용히 산책하며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죠.

그다음은 그 후에 생각해요. 고요한 마음, 편안한 몸으로 가장 지혜로운 젤리가 돼서요. 다시 목표를 세우고 기간을 정하고 시험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시험공부를 끝내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볼 수도 있고요. 사회적 인정이 아니라 내 안의 바람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아요.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면 시간제로 일하며 여행과 모임, 수업 등 새로운 자극을 탐색해도 되고요. 성공했든 좌절했든 과거는 경험으로 남습니다. 현재의 젤리는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고, 선택한 삶을 살아가며 성장하고 성숙할 거예요. 젤리, 정말 수고 많았어요.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각자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동료 여행자 젤리에게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소개된 고민과 답변은 책 <급할 것도 없고요, 정답도 없습니다> 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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