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남편과 함께 살며 지쳐가는 다람쥐의 고민

다람쥐의 고민
“고시생 남편과 함께 살면서 점점 지쳐가요.”
안녕하세요. 부부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렇게 밑미 고민상담소에 글을 남기게 되었어요. 저는 결혼한 지 8년 차가 되어가고 있고, 작은 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사업을 하기 전엔 직장인으로 8년 정도 근무했었어요. 결혼 당시에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다, 대학원에 들어갔고, 대학원을 마치고는 고시를 준비했고, 기간제교사를 병행하면서 시험을 계속 준비했었어요. 올해는 직장 생활을 접고, 고시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고시를 준비하면서 늘 고시생과 있다 보니, 마음속에 답답함이 켜켜이 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어도, 늘 아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있어서 소비도 잘 못했고, 저에게 보상을 준다던지 휴식을 준다던지.. 휴가도 따로 가지 못했어요. 남편과 저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제가 남편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현재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2번 정도 운동 모임에도 가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고, 지금 100일 정도 시험이 남은 시점에 제정신인가 싶은 마음도 듭니다. 너무 길어진 고시의 기간 동안 저도 지친 것 같고,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은 크게 들어요.
다른 친구 부부들은 대부분 2세 계획이나, 내 집 마련 등을 준비하는데 나는 언제? 라는 생각도 여러 번 들어요. 사업에 집중하고, 사업에 투자하면서 직원도 뽑고 싶지만 저까지 일을 벌이다가 리스크가 더 커질까 봐, 상황이 더 안 좋아질까 봐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남편에게 갖고 있는 이런 답답함(?)을 보면, 건강하지 않은 제 모습으로도 사실 많이 힘이 듭니다. 오늘은 고민을 작성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밑미 감사해요..!

밑미 메이트 시내의 답변
“서로 무엇까지 함께 감당할지 남편과 이야기해 볼 때가 되었어요.”
다람쥐님의 고민을 읽으며 ‘참 오래 함께 고시를 준비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오래전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제 커리어를 멈추고 외국에서 생활했던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다람쥐님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한 사람의 선택이 부부라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의 삶의 조건이 되어버리는 답답함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험을 준비한 사람은 남편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다람쥐님의 삶도 어느 정도는 함께 고시를 준비해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돈을 벌어도 아껴야 할 것 같고, 나를 위한 소비와 휴가를 미루고, 사업에 투자하거나 직원을 뽑는 일도 조심하게 되고, 집이나 아이 같은 미래의 계획도 선뜻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래서 시험을 100일 앞둔 남편이 일주일에 두 번 운동 모임에 가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난다는 대목도 저는 이해가 됐어요. 그 화에는 ‘시험이 코앞인데 왜 공부를 안 하지?’라는 마음뿐 아니라, ‘나는 당신의 시험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내 삶의 많은 것을 조심하고 미루며 살고 있는데, 당신은 왜 나만큼 절박하지 않은 것 같지?’ 하는 억울함이나 허탈함도 섞여 있지 않을까요.
다람쥐님은 남편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되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며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다람쥐님에게 필요한 건 더 잘 분리하는 방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요. 부부의 삶은 실제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니까요. 남편의 수입이 불안정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도 달라지고, 내가 사업에서 감수할 수 있는 위험도 달라집니다. 아이나 집처럼 애초에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도 있고요. 아무리 마음속에서 ‘남편의 인생은 남편의 것,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해도 현실의 조건까지 그렇게 나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람쥐님의 답답함을 모두 ‘건강하지 않은 내 모습’의 증거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중 일부는 어쩌면 바꾸어야 할 마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확실성을 함께 감당해 온 사람이 느끼는 너무나 현실적인 답답함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마음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이제는 남편과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해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이 고시를 계속 준비해도 되는가를 허락하거나 판단하는 대화가 아니라, 우리는 이 불확실한 시간을 앞으로 어떤 조건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요. 시험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경제적인 부담은 어디까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다람쥐님이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사업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까지는 감수할 것인지, 두 사람이 함께 원하는 미래는 여전히 같은 모습인지. 어쩌면 이런 것들이 정해지지 않은 채 시간이 길어진 것이 다람쥐님을 더 지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남편의 운동에 대한 화도 한번 그렇게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남편이 운동을 모두 그만두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한다면 다람쥐님의 답답함은 사라질까요? 만약 그렇지 않을 것 같다면, 지금 다람쥐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의 공부 태도보다 더 큰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두 사람 사이에 아직 답이 없다는 것 말이에요.
부부 상담을 고민하셨다고 했는데, 저는 받아보셔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한 문제 안에 함께 있다 보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어떤 조건으로 함께 선택할 것인지 이야기해 보기 위해서요.
다람쥐님께 지금 당장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드릴 수 있는 답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어떤 답답함은 마음을 다르게 먹는다고 없어지지 않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 답답함을 ‘왜 나는 남편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지’ 하며 자신에게 다시 돌려주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래 함께 감당해 온 사람이라서 지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가보다, 나는 무엇까지 함께 감당하기로 선택할 것인가를 두 분이 함께 이야기해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밑미 메이트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