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원망스러운 반달곰님의 고민

반달곰님의 고민
어릴 때부터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엄마는 아빠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고, 폭력을 당하시기도 했어요. 저와 오빠도 폭력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아빠는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저와 오빠에게 매를 드셨고, 하루는 구구단 암기가 되지 않는다고 제 뺨을 때리셨는데 멀리 날아갈 정도였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폭력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아빠를 증오하게 되었고, 이젠 죽을 때까지 용서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교회를 다니며 기도해도 도저히 아빠가 용서되지 않습니다. 아빠는 이제야 저에게 잘해주시며 친해지고 싶어 하시지만, 제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버렸어요. 아빠를 영원히 보고 싶지 않고 지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고, 20대가 된 지금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 들기도 해요.
이런 어릴 때의 기억으로 인해 연애를 해도 내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거나 내 마음에 공감을 못 해줄 때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조금만 짜증이나 화를 내면 너무 큰 상처로 받아들이게 돼요. 저도 이런 제가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걸 알지만,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도 그저 동정해줄 수밖에 없는 일 같아서 해소가 되지 않네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반달곰님, 안녕하세요.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입니다.
나를 때리고, 차별하고, 엄마를 괴롭히고, 오랜 기간 집 안의 폭군이었던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 지 고민하고 있는 글들을 읽으며 반달곰님이 얼마나 불안한 시절을 살았을까 떠올려봅니다.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반달곰이 벌벌 떨며 구구단을 외우고 있는 모습, 세차게 뺨을 맞고 충격과 아픔에 쓰러져 있는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져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다행스럽게도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과거 속의 부모와 내 안의 마음들을 돌아보고,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만큼 몸도 마음도 자란 반달곰님의 힘이 느껴져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말로든, 신체적으로든 아버지의 폭력이 다시는 허용되지 않게 마음을 굳게 먹으시는 것이 먼저 인 것 같아요. 어머니, 오빠, 반달곰님이 의견을 모아 경찰 신고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준비하길 권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종교가 있어서 받는 죄책감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억지로 관계 회복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반달곰님의 상처와 분노가 반달곰님의 소중한 믿음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절대 용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서두르거나 괴로운 마음을 억압한 채로 용서와 회복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무서운 힘에 어쩔 수 없이 참고 버텼던 것처럼, 앞으로도 상하고 화난 반달곰님의 마음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억눌리게 됩니다. 그러다 다른 관계나 비슷한 상황에서 폭발하듯 튀어나와 반달곰님과 가까운 이들을 놀라게 할 수 있어요. 이미 연애할 때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으니 이해하실 것 같아요.
먼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반달곰님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나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인데, 아버지는 나를 공격하고 어머니는 나를 지켜주지 못했잖아요. 어린 반달곰님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사랑받기를 원한 두 사람 모두가요. 아이는 부모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잘못에 맞서지도 피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합니다.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유년 시절과 십대를 보낸 어린 반달곰님들을 지금의 반달곰님이 정말 잘 돌봐줘야 합니다.
대학생이라면 학생상담센터를 가셔서 심리상담을 하길 권합니다. 학교 밖이라면 만 24세까지는 지역의 청소년상담센터를 찾아가세요. 잘 훈련된 전문가와 함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방법을 무료로, 혹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배우고 연습할 수 있을 거예요.
심리상담이 어렵다면, 반달곰님과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생 동료와 충분히 이야기 나누는 경험을 해보세요. 해결해 줄 수 없으니,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편이 되어 충분히 들어달라고요. 눈물이 나면 마음껏 울고, 서로 안아주고요.
어머니의 부족했던 부모 역할과 여성으로서의 괴로움을 함께 듣고, 반달곰님의 복잡한 마음을 터놓고 화해하는 순간은 이상적이지만, 부모 세대는 반달곰님보다 훨씬 더 참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어머니와의 대화도 천천히 하시고요.
하지만 모든 타인은 자신의 삶이 중심이라 반달곰님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온전히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 줄 유일한 사람은 반달곰님뿐이에요. 오랜 시간 쌓인 상처들이니 긴 시간 들여다 봐주고 달래주며 사랑해줘야 하는데, 반달곰님이 그걸 해줘야 해요.
저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힘들었던 나에게 편지를 쓰기도 해요. 그때의 내 마음을 알아주고, 듣고 싶었던 말도 꼭 원했던 것들도 해줘요. 이런 작업이 어려우면, 그때의 아이가 지금의 반달곰님이니 지금의 내 마음을 잘 살펴주고, 불안하고 걱정하면 괜찮다 위로해주고, 좋은 데 데려가 주고, 맛있는 것 먹여 주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몸과 마음에 건강한 것들에 돈과 시간도 쓰면 돼요.
어색하고 잘 모르면 하나씩 배워가면 되고요. 반달곰님이 반달곰님과 살 날은 아주 길고, 시간도 많으니까요. 자, 이제 막연할 수밖에 없는 이 답변글을 딛고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스스로에게 가장 든든하고 다정한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약속해주세요. 지금의 반달곰님은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거니까요.
그러다 보면 선물처럼, 어머니와도 오빠와도 아버지와도 같은 어른으로 편안하게 대화할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안 와도 괜찮을 수도요. 하지만 반달곰님이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구나 깨닫게 되는 날은 꼭 올 거예요. 진실은 반달곰님은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지만요. 멀리서 축복하는 마음 보냅니다. 샬롬~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