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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 상담소2024.01.12 · 읽는 데 4

가족 생각만 해도 힘든 말차님의 고민

말차님의 고민

“가족 생각만 해도 힘이 듭니다”

스무 살에 대학교 진학과 함께 본가에서 독립했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혼자서 살고 있는데, 가족 생각만 해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고 심연에 빠져요. 하나뿐인 오빠는 자폐성 장애가 있고, 엄마는 심각한 우울증이, 아빠는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성향을 갖고 계세요. 부모님 사이는 항상 좋지 않으셔서 매일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고요. 엄마는 항상 너는 왜 이기적으로 너 생각만 하냐고 하시고, 아빠는 가족 문제를 대할 때 화를 항상 내고 극단적인 언행 혹은 제게 상처를 주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세요. 저는 항상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누르고, 삭막한 분위기 속에 오빠를 돌보며 집안이 잠잠해질 때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이제 명절이든, 단순 가족 행사든 부모님을 뵙기 싫어졌어요. 요즘은 부모님 사후 부재로 인한 오빠의 부양 걱정까지 합쳐져, 가족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고 지쳐요. 주위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물어보거나, 가족끼리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모습을 보고 듣기만 해도 결핍으로 인한 우울감이 깊게 자리 잡아요. 독립하고 20살 이후 제가 맺고 유지해 온 좋은 인간관계, 뿌듯한 성취를 통해 충분히 행복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저의 근본적인 가족 문제가 생각나면서 다시 심연으로 가라앉게 되면서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가족 간의 불화 속에서 저의 삶을 살고 싶어 독립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가족에 매여 있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완전한 행복 대신 즐겁고, 편안하고, 회복하고, 힘 나는 시간을 늘려가세요.”

말차의 고민을 받은 날, 마침 일본 아시히 신문기자 나가타 도요타카의 에세이 ‘아내는 서바이버’를 읽고 있었어요. 결혼 후에 알게 된 아내의 섭식장애를 10년 넘게 함께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남편의 이야기예요. 점점 아내의 증세는 심해져서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지고 정신과 입퇴원을 반복하고 결국 뇌 손상에 의한 인지 저하까지 와요. 남편도 핵심부서의 기자에서 늘어나는 대출과 끝이 보이지 않는 병간호 끝에 휴직도 하고 정신과 치료도 받게 되고요. 그렇게 살아내는 이야기가 책 끝까지 이어져요. 책을 다 읽고 다시 말차의 고민글을 읽으며 눈앞이 까마득해졌어요. 오래된 힘든 날들의 끝을 살고 있는 말차에게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막막해서요.

짧은 고민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리 아득하고 먹먹한데, 어린아이 때부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집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살아야 했던 말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대로 감당할 수도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모부의 우울과 분노 아래에서 자라는 동안 말차는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혼잣말을 하며, 일기를 쓰며 자랐을까요. 나보다 덩치는 크지만 영원히 어린 아이일 오빠 곁에서요.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더라도 내내 장애인인 오빠의 돌봄을 중심으로 돌아갔을 집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말차는 아동기, 청소년기의 기쁘고 슬픈 일들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은 건 말차가 지금 이 순간만은 어리고 약했던 말차에게 꼭 필요했고, 혹시나 하고 바랐지만 결국 채워지지 못했고, 잃어버렸고, 외롭게 남겨졌고, 흘러가 버린 시간들을 애도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 모부도 힘들어서 그랬고,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는 이유를 찾지 말고요. 모부와의 비교도, 오빠와의 비교도 말고요.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나이였던 말차를 떠올리면서요.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그 아이에게 속으로 부드럽게 말을 걸어 보거나, 다정하게 편지를 써 봐도 좋고요. 어색하다면 가까운 이에게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아요.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응어리진 속엣말을 들어주고, 그랬구나 공감해 주고, 꼭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세요. 이제는 어른인 말차가 아이인 말차들을 잘 돌봐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포기하지 말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웅크린 아이들을 찾아 손을 잡아주세요. 혼자가 힘들면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도 좋아요. 말차의 지금 그대로를 존중해 주면서 시작을 도와줄 거예요.

말차의 가족이 처한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알 수 없지요. 모부도 오빠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고 살아가겠지만 말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리고 가족과 아무리 거리를 두고 살아도 걱정이 되겠죠. 말차가 말했듯 행복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가족 생각에 가라앉게 될 거예요. 그것까지가 말차의 삶이겠지요. 참 잔인하고 외로운 말이죠. 누구도 말차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으니까요. 저마다 딱 자기가 겪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사느라 말차가 원할 때마다 챙겨줄 수도 없고요.

쉽지 않겠지만, 말차의 가족과의 관계까지 포함한 말차의 삶 전체가 살아갈 만하도록 나아가야 해요. 다행인 건 말차에게 스무 살 이후 독립해서 이루어 낸 성취와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은 다행이란 말로는 부족해요. 너무 대단한 일이고, 아주 희망적인 일이에요. 말차가 해야 할 일은 말차가 이미 해낸 것들을 더 견고하고 풍요롭게 가꿔가는 거예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요. 점점 더 능숙하게요. 더 크게 성공해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말차가 즐겁고, 편안하고, 회복하고, 힘 나는 시간들을 늘려가기를 부탁하는 거예요. 말차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순간들보다 더 많이요. 지금 가족 때문에 힘든 부분들이 너무 크고 부담스럽다면, 말차가 긍정의 힘을 더 키울 때까지 가족과의 연락과 만남을 줄여도 괜찮아요. 접촉의 빈도도 시간도 말차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으로요.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완전한 행복’이라는 덫에 빠지지 말아요. 문득 가족 일로 가라앉을 수 있지만, 다시 지금의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돌아오면 돼요. 그걸 더 수월하게 하는 것이 편안한 삶이지, 우울하거나 힘든 순간이 없어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종종 우울하고 불안해도 얼마든지 괜찮은 오늘을 누릴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길요.

말차의 불행보다, 말차의 힘듬보다 말차는 더 크고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존재예요.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말차의 굳세고 편안한 삶이 다른 가족에게도 빛과 온기가 될 만큼 힘을 갖게 될 거라 믿어요. 그리고 말차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가족과의 시간들 속에도 환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함께 웃었던 시간들이,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사랑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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