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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 상담소2024.03.15 · 읽는 데 4

마음껏 미워하고 싶은 명화의 고민

명화의 고민

“미워해도 괜찮은 사람을 마음껏 미워하고 싶어요.”

할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저에게 폭언하던 아빠, 엄마를 우울증에 걸리게 했던 할머니를 수년 만에 만났어요. 다들 못 본 사이에 백발이 성성해지고 검버섯이 올라왔더라고요.

만나서는 건강히 지내셨냐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나눴지만, 제가 자리를 뜰 때 ”당당하네.”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그 말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발인을 지키지 않고 인사만 드리고 나왔거든요. 그런 모습이 안 좋게 비쳐 보였던 거겠죠. 더 이상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개의치 않고 자리를 떴어요. 장례식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을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후련하지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리라 생각하지만,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용서하지도 못하는 양가감정에 마음이 착잡한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건지, 혹은 미워하는 마음조차 쓰고 싶지 않아 외면하기를 택한 건지 저 스스로도 모호합니다.

내 감정에 잘못이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도, 감정이라는 것도, 칼로 자른 듯이 끊어낼 수는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미워해도 좋을 사람들을 마음껏 미워하고 싶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마음껏 미워하세요. 대신 그 감정을 내 안에 가두지는 마세요.”

반가워요, 명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관계를 끊고 연락 없이 지내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수년 만에 만나고 돌아왔네요. 예의를 다한다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참석한 장례식이었을 텐데, 자리를 뜨는 순간에 비난하는 투라니, 나이가 들어도 똑같구나 싶었을 것 같아요. 내 감정 낭비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돌아왔을 명화에게 끝까지 도리를 다하느라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참, 못난 사람들이네요. 가부장제의 권력 구도 속에서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어머니와 딸들에게 오래도록 행한 옳지 못한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왜 저렇게나 당당할까요. “당신들이야말로 끝까지 잘못을 모르고, 반성도 사과도 없는, 뻔뻔한 인간들이에요. 정말 다시는 보지 말아요.” 쏘아붙이고 말았으면 속이 좀 후련했을까요? 알 수 없지만, 드라마들에서 종종 주인공이 사이다 발언을 하고, 벙찐 상대들을 뒤로하고 뒤돌아 성큼성큼 걸으며 미소 짓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그러기 힘드니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명화가 차마 자세히 말하지 않은 사연들이 예상이 되고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갈 거고, 명화는 명화의 삶을 살아갈 테니 분노를 추스르고 명화의 질문에 답을 해볼게요. 명화의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어떤 계기로든 이미 치밀어 오른 미움과 분노는 참거나 품고 있기보다 내보내길 바라요. 분노는 큰 에너지라 참는 데 애를 쓰다보면 다른 좋은 감정, 감각들까지 억압되기 쉽거든요. 품고 있으면 내 자신이나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쏟아내게 되고요. 심지어 미움이나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제대로 반격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다툼이 될 뿐이고요. 그러니 미움이 명화를 사로잡거나, 명화의 일상을 뒤흔들 때는 참거나, 품거나, 반격하지 말아요. 그 대신 강도 높은 운동으로 땀을 내거나, 마사지나 사우나로 굳은 몸을 풀어주거나, 편안하고 친밀한 사람에게 사연도 감정도 털어놓고 위로받으세요. 그 상황에서 명화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충분히 미움과 분노를 배출하세요.

쓰다 보니 미움을 내보내려고 노력하는 건, ‘마음껏 미워하고 싶다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고, 미운 사람을 미워하지도 말라는 소리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네요. 다시 말하자면 ‘미워하면 안 돼!’가 아니에요. 감정을 내보내기 전에 나를 찾아온 미움, 분노를 그대로 느끼고, 함께 찾아오는 억울함과 상처에 대한 기억들까지 고스란히 안아주는 게 먼저예요. 하지만 ‘마음껏 미워한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미움과 분노를 품고 있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위험해요. 그것들이 명화와 명화의 오늘, 명화의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할퀴거든요.

과거의 약한 명화는 가족 내에서 생존하느라, 눈치 보느라 미움도 분노도 숨겨야 했잖아요. 이제는 성장한 명화가 든든하고 안전하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니, 과거의 나에게 폭언하며 위협을 가하는 아버지를 분노해도 된다고 어머니를 괴롭히는 할머니를 미워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거예요. 어린 명화가 미움과 분노만 느꼈을까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 감정들까지 모두 네가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고, 너무 고생했다고 안아주는 거예요. 지금도 명화 안에 여전히 눌려 있는, 당시에는 제대로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던 수많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만나주는 거예요. 그게 마음껏 미워할 수 있게, 화낼 수 있게, 슬퍼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오래 억눌린 감정들일수록 잘 찾기도 어렵고, 느끼기도 어렵고, 표현하며 풀어내기도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상담실을 찾아요. 그 상처들이, 그 상처들을 견디기 위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굳은살들과 가시들이 지금의 나와 내 사랑과 삶을 힘들게 한다고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는 어른이 된 내 자신이 풀어가야 할 일이지요. 전문가와 함께하는 심리상담이 아니더라도 안전하고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하나둘 과거의 상처들을 나누며, 함께 슬퍼하고 도닥여주며 치유를 경험해 봐도 좋고요. 솔직한 글쓰기로 상처들을 기록하다 보면 반복할수록 점점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글에서 감정들을 추스르며 나를 안아주는 글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해 보아도 좋습니다.

미움과 분노와 원망, 억울함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상처 없이 자란 아이도 없고요. 지금 부정적인 감정, 생각이 들어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유난히 예민하거나 어려운 주제가 있어도 괜찮고요. 그 속에서 오늘까지 살아낸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겨주세요. 조금은 짠하게 바라봐도 좋고요. 명화의 오늘이 있게 해준 수많은 과거의 명화들에게도 고맙다 말해주세요. 가장 근사한 명화만큼, 때때로 못난 명화도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해 명화를 위한 삶을 선택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저도 계속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다짐하며 살고 있습니다. 명화의 평화를 빕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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