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자문님의 고민

자문님의 고민
“뭘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서른을 앞둔 취준생입니다. 알바로 시작해 정규직이 되어 스케줄 근무를 했던 전 직장 퇴사 후 거의 1년을 쉬고 있습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세계여행도 하고 싶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하며 시야를 더 넓히고 싶거든요. 나만의 브랜드도 가지고 싶은데 무엇을 할지 떠오르지 않은 막연한 바람만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은 전문성을 쌓고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데 나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냐는 조급한 마음도 생깁니다. 하고 싶은 직무를 한다면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자신의 소신과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온 게 느껴지는데, 창피하지만 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서른이 되도록 제 인생을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며 살아오지 않은 것 같고, 이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이 없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1년을 놀면서 온전히 저를 위해 생각해 보려 해도 회사에 들어가려는 것이 주변의 생각인지, 제 생각인지 헷갈립니다.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뚜렷한 확신이 없기에 답은 나에게 있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네요. 저는 철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나를 찾는 여행길에 선 자문’의 편에 서고 싶어요”
하아, 자문의 고민 글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 지금 자문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자문보다 십 년을 더 철없이 산 셈이군요.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약간의 자기변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자문이 하는 고민을 저도 주기적으로 해요. 평균적인 공부 머리에 무난한 사회성으로 고만고만하게 살아와서 뭔가 뚜렷한 방향성과 들끓는 열정으로 직진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면서요. 이십 대 초반 심할 때는 이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먹을 자격도 없다며 스스로를 굶기거나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기도 했어요. 그 시간 탓에 지금도 위장이 좋지 않고, 여전히 때때로 날뛰는 불안 등을 이유로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대거나 과도한 온라인 쇼핑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과거를 돌아보면 그중에 지금이 제일 편안하고 좋습니다. 생산성이 가장 높아야 한다는 마흔 전후로 오히려 제가 좋아하는 여러 활동을 시도해 보는데 돈을 많이 썼습니다. 십여 년을 계속해 오던 심리상담 일을 줄이고, 전공이나 경력을 전혀 못 살리는 일들을 호기심으로 벌인 탓에 노동 시간 대비 수입도 떨어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용돈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큰아이가 ‘아빠는 너무 워라밸을 추구해서 문제’라고 하더군요. 너무 맞는 말이라 웃고 말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야 내가 나를 좀 알게 되었구나,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 싶어서 기쁩니다. 아이에게도 보인 거지요. 왜 우리 아빠는 돈 없다고 용돈도 이렇게밖에 안 주면서 저렇게 자기 좋을 대로 살지? 한창 공부 스트레스가 많을 때였으니 좀 얄밉기도 했겠지요. 하긴 국문과로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심리상담으로 바꿔 이십 대를 통째로 공부하는 데 쓰다가, 삼십 대가 되어서야 전공 살린 밥벌이를 하는 듯하더니, 삼십 대 후반부터는 다시 책 읽고 글 쓰는데 정신이 팔렸다가 사십 대에 이르러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짬뽕처럼 섞어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는 책방 겸 동아리방’을 만들겠다며 점점 돈 안 되는 일에만 마음을 쏟고 있으니, 제가 돌아봐도 점점 제 마음대로 살았던 시간이었어요. 그것도 참 설렁설렁 소소하게, 나답게요.
자문, 목적지를 확실하게 정하고 그곳까지 곧게 뻗은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같은 삶이 있다면 정해진 방향 없이 이리저리 호기심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산책하는 삶도 있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정을 불태우는 삶이 있다면 내가 무얼 원하는지, 나는 어떨 때 만족스러운지 탐구하는 여정이 긴 삶도 있고요. 만약에 자문이 저와 같이 후자에 가깝다면, 내비게이션 믿고 달리는 사람 많은 고속도로는 자문의 길이 아닐지도요. 아마 1년으로는 너무 부족했을 것 같아요. 태어나 1년쯤은 지나야 부모와 나의 몸이 분리되어 있음을 깨닫는 아이처럼, 자문도 학교 공부, 아르바이트, 스케줄 근무를 벗어난 지 1년쯤 지나니 이제 내 생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 흐름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알게 된 거지요. 문득 궁금해요. 그 1년 정말 걱정 없이 신나게 놀았나요? 자신에게 온전한 자유를 선물한 시간이었나요? 어쩌면 분리불안을 느끼는 아이처럼, 고민하느라 걱정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날들이었을 지도요. 혹시 지금이야말로 힘껏 용기를 내어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인연들을 만날 적절한 시기는 아닐까요?
자문의 삶이기에 자문이 선택하고 책임질 일이지만, 저는 이제 한 살이 된 ‘나를 찾는 여행길에 선 자문’의 편에 서고 싶어요. 서른, 백 년 인생의 삼분의 일, 성인이 되고 난 후 고작 십 년, 앞으로 최소 삼사십 년은 더 일할 나이, 그리고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시작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실은 스물도 마흔도 그렇지만요. 자문은 이미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에는 능숙하잖아요.
지금까지 자문이 충실하게 쌓아 온 생존력으로,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자문의 나를 찾는 여정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는 건 어떨까요? 1년 후원으로 멈추기에 자문의 고민과 마음, 존재는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답변 글을 적고 있는 저도 이 글을 함께 읽을 누군가도 똑같이 소중한 존재고요. 그 귀한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 참 고된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이 뭉클한 마음 담아 응원을 보냅니다. 평화를 빕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