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연애하고픈 민트님의 고민
민트님의 고민
어릴 때 어머니에게 가해진 아버지의 가정폭력, 6살 때 사촌오빠의 성폭행 등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과도 가봤지만, 당시의 상황만 말하게 되고 막상 깊은 얘기는 털어놓지 못하겠더라고요. 잠을 깊이 못 자서 불안장애 약도 먹어봤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최근엔 어머니가 아프셔서 아버지가 헌신하고 계시긴 하지만 예전에 있었던 아버지의 외도 등으로 인해 남자를 믿지 못하고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연애 안 해도 편하게 살아왔는데, 최근에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스스로 너무 겁이 많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소개도 받아보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지 자신이 없고 무력감과 회의감이 듭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내려놓고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현순님의 답변
안녕하세요? 민트님. 밑미 심리카운슬러 박현순입니다. 해가 바뀐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완연한 봄이 왔어요. 곧 벚꽃잎들로 거리도 하얗게 덮이겠죠. 매년 돌아오는 계절인데도 매번 설렌다는 것이 새삼 신기합니다. 민트님께 전할 이야기로 고민했던 시간 동안 어렵기도 했지만, 민트님 마음에도 꽃피는 봄이 오길 기대하며 머물렀어요.
민트님,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행해진 아버지의 가정폭력, 사촌오빠의 성폭행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오셨네요. 제가 상황은 자세히 모르는 상태라서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 일들이 민트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거예요. 정신과에도 가보시고, 약도 먹어 보셨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니 너무도 안타까웠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오랜 시간 민트님 마음을 힘들게 했던 주제인 만큼 믿을 수 있는 전문가와 상담을 받으면서 민트님 내면의 깊은 상처들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합니다.
민트님께서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내려놓고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지 물어봐 주셔서 어찌나 반갑던지요. 좌절하거나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서 달라지고자 하는 생기가 느껴져서요. 저도 연애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 함께 지혜를 발휘해 볼까요?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단순히 사건으로만 생각하기 쉬워요. 학교폭력, 성폭력 등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때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과의 피드백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를 넓은 시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뇌는 20대 초 중반까지 자랍니다. 이때까지는 종합적인 사고력이 미숙하고, 성장 과정에서 받았던 타인의 말이나 시선, 평가들로 자신을 판단 내리기 쉬어요. 성인이 된 후에도 20여 년 동안 만들어진 내면의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올라오고, 자존감, 대인관계에서 성장 과정과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될 수 있어요. 그래서, 20대, 30대에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민트님, 저의 이야기를 잠시 해 볼게요.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같은 반 남학생이 교실에 들어오면서 당황한 선생님은 저를 밀쳐내 버리셨고, 그 뒤의 상황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선생님과 그 남학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늘 움츠려 들어야 했습니다. 제 잘못이 아닌 데도요. ‘쟤가 이상한 소문을 내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야’라는 생각들이 저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어요.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이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고, 신체적인 이상 반응까지 생겼지만 바뀌지 않았어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는 남들의 기분을 살피고, 친절해야만 했어요. 누군가 잘못을 하고, 선을 넘어도 저의 탓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지고, 화를 내도 되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어요. 저의 감정과 욕구는 눌러버린 채,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패턴대로 길들여서 살아오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서 바로 보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 아이가 얼마나 놀라고, 무섭고, 외로웠을지 마음을 이해해 주었어요. 무엇보다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선생님의 잘못이고, 제가 사과를 받았어야 하는 일이며 타인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미워했던 나를 이제는 따듯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민트님은 어떠셨나요. 어린 시절의 경험들 이후에 아버지와 사촌 오빠를 보면서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란 존재를 어떻게 평가하게 되었나요? 잠시 시간을 내어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표현해 보셔도 좋아요. 민트님이 적어주신 대로 아버지의 외도로 남자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를 소중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을 수 있어요. 그때의 민트님에게는 가정에서 버텨야 하고,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면의 프로그램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이제는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헌신하실 정도로 달라지신 것처럼 민트님의 내면 프로그램도 수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분명히 잘못된 오류가 발견되었잖아요. 늘 반복해 왔던 대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관계를 포기하는 대신에 먼저 ‘나’를 이해해 주는 거예요. 민트님은 성인이 되었고 나를 지키는 힘을 갖고 있어요.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생각이 떠오를 땐 알아차리고, 민트님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민트님에게 이렇게 힌트 드리고 싶어요.
‘예전에는 나를 존중해 주지 못하고, 남자를 믿을 수 없었지만 원래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만큼 바뀌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고, 익숙했던 사고 패턴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이럴 때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민트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에게 먼저 해 주는 거예요. 연애하고 싶다는 욕구 알아주신 것처럼 나의 감정과 욕구도 인정해 주고, 먹고 싶은 것도 잘 챙겨주고, 상냥하게 미소 지어 주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실수했을 때도 괜찮다고 지지해 주면서요. 나를 사랑해 주는 순간들이 모여서 나 자신과 베프가 되고, 좋은 인연을 만났을 때도 사랑을 선택하게 되실 거예요.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주인공이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줘요. “때론 미친 척하고 20초 동안 용기를 낼 필요가 있어. 딱 20초만. 엄청난 일이 벌어질 테니까”라고요. 주인공도 사고로 죽은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창피했지만 놓치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어요. 그리고, 당신처럼 멋진 여자가 왜 나 같은 사람을 상대해 주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Why not?"이라고 대답합니다. 주인공은 20초의 용기로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지혜를 선물 받았습니다. 민트님이 예전의 생각들로 다시 돌아갈 때마다 알아차리고, 이 순간에 20초만 용기 내어 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의 만남도 고민 상담소의 문을 두드려 주신 민트님의 용기 덕분이었어요. 언젠가 민트님께 용기가 필요할 때, 제가 옆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