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느린님의 고민

느린님의 고민
평균을 쫓으며 큰 불행도 행복도 없이 10년 차를 맞이한 직장인입니다. 평균의 삶을 쫓아 살았고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삶이 되었지만 마음은 어둡고 행복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나다운 선택을 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정답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 미지근한 시늉 (책, 강연 모임 등)을 합니다. 그런 시늉으로는 제가 결국 변할 수 없을 텐데, 점점 더 제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자신이 없고 이렇게 무채색의 삶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에 굴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저는 사실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을 욕망하는 사람인데,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이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까요?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안녕하세요. 느린님.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입니다. 최근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님의 전작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화가 떠오릅니다. 정확히는 마음으로 나눈 대화죠. 예기치 않게 마주친 아저씨 이선균이 환하게 웃고 있는 지안(아이유)에게 묻습니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지안이 대답하죠. '네.' 상처 많았던 두 주인공을 다정하게 감싸안는 최고의 엔딩이었죠. 하지만 온갖 멸시와 폭력에 노출되어 독기를 품고 살았던 주인공의 삶과는 비교도 안되게 고만고만한 인생을 산 제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답은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입니다. 느린님의 답도 많은 사람들의 답도 저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서두가 좀 길었나요? 느린님의 고민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고, 깊은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자신을 굴레에 갇혔다, 욕심만 많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마음이 어둡다, 평균의 삶을 쫓았다, 미지근한 시늉을 한다, 울면서 걷는 게 인생의 본질이다, 자기연민 혹은 이상적인 삶에 빠져 있다 등 인간 존재에 대한 여러 주제들이 짧은 고민글에 켜켜이 쌓여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든 드라마의 엔딩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추상적이지만 간결한 표현으로 편안하고 싶은 환상을 충족시켜줘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지안의 앞날이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느린님,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굴레를 벗어난 이상적으로 주체적인 삶은 없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겠다 싶은 순간, 용기를 내어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순간, 내 자신과 편안한 순간만이 있습니다. 지금의 느린님에게도 울고, 자책하고, 휩쓸리는 시간들 사이에 만나는 기쁘고, 환하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습니다. 단지 지금의 느린님의 시선과 마음이 느린님이 잃어버린 것들에 오래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현실에서의 반복되는 고달픔에 많이 지쳐서 일수도 있겠지요. 보통의 사람이 평범하고 평균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바람에 너무나 많은 조건을 다는 것이 현대사회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느린님이 벗어나야 하는 굴레는 삶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라서가 아니라, 평생 함께 해야할 본질적인 고민들이라 지혜롭게 공존하는 연습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미 느린님은 고된 밥벌이를 해내고, 그 속에서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시늉'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시늉 중에 진짜 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시늉이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어 진짜 내가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사실 해야만 하는 일, 싫은 일, 고생스러운 일이 많은 세상에서 느린님은 10년 째 꽤 잘 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느린님과 약간 동질감을 느꼈는데요. 저도 생각과 고민이 많고, 변화를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지적 배움이나 만남'을 택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흔을 넘기며 새삼 깨달은 것은, 돌파구는 의외로 그동안 소홀히 해 온 '신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최대한 정적인 순으로 명상, 요가, 필라테스, 걷기 등을 탐색하다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수영'이었습니다. 물에 떠서 나아가기 위해, 숨 쉬기 위한 고강도의 신체활동이 자꾸만 복잡해지고 깊어지다 못해 자책과 우울로 빠져드는 저를 활력으로, 단순함으로 당겨주어 밸런스를 유지해 주었습니다. 저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느린님께도 정반대의 무언가를 통한 생각을 멈추는 시간 늘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반대로 라이프 코칭이나 심리상담 등으로 느린님의 생각과 감정, 역사를 관통하는 이해를 경험하시는 것도 정공법일 수 있고요.
결국 삶의 본질을 붙들고 하는 지난한 씨름 보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행동을 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먹고 살아야 하는 길고 벅찬 인생의 굴레에서, 느린님에게 신선한 활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수영 중에 고개를 돌리고 숨을 쉬는 짧은 찰나처럼 쉽고 단순하고 작은 행동들, 습관들, 기쁨들이 아닐까요? 중요하고 어려운 고민도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잘 붙들고, 질문에 삼켜지거나 지치지 않게 적절한 움직임들로 활력도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느린님도, 저도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