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윤슬의 고민

윤슬의 고민
“취준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혀요..”
취업 준비생인 27살 여자입니다. 요즘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취업을 해서 일하고 있고, 저랑 나이대가 비슷한 지인들은 이미 들어가서 몇 년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그 말이 와닿지 않고 ‘왜 나만 안 될까?‘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렇다고 그 지인들이 압도적으로 저보다 스펙이나 인성(일머리, 센스, 성향 등)이 더 나은 것 같지도 않고 저희는 다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해외 생활했던 제가 더 나으면 나았겠지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무튼 거기에다 ‘여자가 신입사원으로 페널티 받지 않는 나이가 27살이다’ 이런 얘기를 여러 취업 관련 콘텐츠에서 보고, 실제로 제 지인들이 27살이 되기 전에 취업했던 걸 보면서 난 이제 늦었나보다, 나랑 같은 스펙/이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보다 나이 적은 사람 뽑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년에 취준을 또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취준을 하면서 이 취준생활을 또 겪어야 한다는 게 너무 막막하기도 하고요...내년에 또 취준한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고, 때로는 누가 뒤에서 흉기를 들고 쫓아오는 것 같은 공포(?)마저 느껴집니다. 올해도 몇 주 전에 유일한 희망이었던 회사에서 면접 떨어지고 거의 일주일 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서 첫 며칠 간은 울고, 평소 즐겁게 덕질하는 분야도 보고 있으면 웬지 모르게 죄책감과 ‘면접 준비하면서 또는 인턴 전형 하면서 노래 듣고 예능 보고 콘서트도 가고 싶었는데’ 이 생각이 들면서 슬퍼져서 덕질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좋아하는 걸 온전히 즐기질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또 한 번 더 슬퍼지기도 하고요. 연말이라 그런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밑미 메이트 강원의 답변
“우리의 호흡과 리듬은 우리가 결정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슬. 이 편지가 제가 보내는 올해 마지막 답장이 되겠네요. 올 한 해도 정말 수고했어요. 얼마나 집중하고 긴장한 상태로 취업 준비를 했을지, 윤슬이 고른 단어들을 통해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편지를 썼을 시점과 제 답장이 닿기까지 시차가 있으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오늘도 숨이 막히고 답답했나요? 여전히 좋아하는 걸 해도 즐기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이 답장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윤슬의 말이 맞아요. 취업은 스펙과 이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회사마다, 시기마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채용 기준은 계속 바뀌고, 실제로 입사해 보면, 취업을 준비하던 위치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내부 사정과 우연들이 작용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왜 나만 안 될까?”라는 물음은, 사실 윤슬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취업이라는 목표에 대한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에서 오는 탄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자꾸 마음이 침전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윤슬은 전력을 다했고, 지쳤고, 3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왔기 때문이에요. 주위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이 유독 크게 들리고, 비교하게 되는 것도 이런 상태에서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같은 상황을 두고 반응과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는 좀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숨이 턱턱 막힌다”라는 표현이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정말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는 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걸 저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거든요. 윤슬은 내년에 또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공포에 가까운 감각을 느낍니다. 면접에서 떨어진 뒤 며칠 동안 일상이 무너지고, 좋아하던 일조차 죄책감으로 변해버린 상태라면—이건 의지나 각오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윤슬의 몸과 마음이 할 만큼 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윤슬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최선을 다해온 상태’에 있습니다.
취업 준비생. 언제부턴가 학생이라는 단어만큼 자주 보이고 들립니다. 잊을만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실업률과 취업률. 그 확률을 이루는 숫자들에 현재의 나를 비교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세상입니다. 마치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퉁쳐지던 학창 시절, 성적을 이루는 숫자들에 우리 존재 가치가 저울질 되는 듯했던 그때처럼요. 이런 타이틀과 숫자들에 둘러싸이면 우리가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감각이 점점 마비되어 갑니다. 오직 목표 달성, 아니면 실패가 주는 기쁨과 좌절로 삶이 납작해져 버리죠.
윤슬은 현재의 자신을 “취업 준비생인 27살 여자”로 소개했어요. 궁금합니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주체가 아닌 윤슬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어떤 노래에 마음을 뺏기는 사람인가요. 신입사원으로 불리하지 않을 나이 27살이 아닌, 윤슬은 어떤 27살을 보내고 싶었나요. 해외에서 살던 시절의 윤슬은 무엇이 가장 즐거웠나요.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던 자기 모습을 발견한 적은 없었나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 삶의 모든 요소가 목표 하나에 의해 정의될 필요가 없다는 걸, 윤슬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지난 3년간 너무나 열심히 노력하고 몰입한 나머지, 다른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감각을 잊고 살았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이 감각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일은 중요하지만, 일 속에 삶이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일이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전략이나 각오라기보다, 지금 이대로 나 자신을 내버려두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침전하는 마음은 뒤처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래 버텨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입니다. 숨이 막힐 때는 일단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어 봅시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같이 해볼까요. 크게 들이쉬고—천천히 내뱉고.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호흡을, 우리만의 리듬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해봅시다. 깊이 들이쉬었다가—천천히 내뱉고.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몸의 신호에 조금 달리 귀 기울여 봐요. 그 안에는 분명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 여기까지 잘 왔다.”라는 몸의 언어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올해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괜스레 분주했는데, 윤슬의 편지 덕분에 저도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호흡을, 우리만의 리듬을 어떤 상황에서도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해요. 삶을 나누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