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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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 상담소2023.04.05 · 읽는 데 4

전쟁터 같았던 전 직장 기억에 아직도 불안한 리지님의 고민

리지님의 고민

"전쟁터같은 전 직장의 기억이, 아직도 불안하게 만들어요.”

육아휴직 후 5월 복직을 앞둔 9년 차 직장인입니다. 첫 직장은 전쟁터 같은 곳이었어요. 하루 16시간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쉬는 날도 수십 통의 연락이 쏟아지고, 큰소리가 오가는 곳이었죠. 1년을 다니고 부모님께 너무 힘들다고 얘기했더니 돈 버는 건 다 원래 힘든 거라고 그만두면 도망치는 거라는 말이 돌아와, 좌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기로 1년을 더 버티고 그만두었는데, 그 2년간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가기도 하고, 심한 불면증과 우울감에 시달렸어요.

이직을 했더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얼마나 비상식적인 곳에 있었는지 깨달아서 행복했지만, 지옥 같던 2년간 저의 모든 체력을 다 쏟아부은 느낌이라, 여전히 사람들을 대하는 게 힘들고, 전화만 오면 심장이 쿵쿵 뛰고 일에 이슈가 생기면 급속히 큰 불안감에 빠져요. 이겨내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하기도 했지만, 일로 돌아가면 다시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여버리네요.

어떻게 하면 예전의 밝은 나, 불안해지지 않는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복직이 코앞이라 걱정이 많은 요즘, 조언을 얻고 싶어 사연을 보냅니다.

심리 카운슬러 슝슝님의 답변

안녕하세요, 리지. 밑미 심리카운슬러 슝슝입니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사회인 9년 차라니 이십 대 초부터 열심히 밥벌이를 했군요. 심리상담 공부를 한다고 이십 대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도 힘들었던 때가 많았는데,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만난 전쟁터 같은 첫 직장이라니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전쟁터라는 말이 정말 비유가 아닐 것 같아요.

고민 글을 읽으며 전쟁터라는 말을 비유가 아니라 실제 현실로 받아들인 건 리지의 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에요. 리지가 수년이 지난 그때와 비슷한 상황만으로도 불안과 초조가 마치 그때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건 감정의 뇌라고 하는 편도체에 강렬하게 당시의 스트레가 새겨진 탓이거든요. 참전 군인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요.

이런 설명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건 리지의 불안이 자신만의 전쟁(비상식적인 환경에서의 2년간의 근무)을 경험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알려드리기 위함이에요. 리지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문제 상황을 겪은 후 회복과 극복 과정에 있는 생존자예요. 걱정하고 있는 리지가 더 불안해할까봐 얼른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아요, 리지. 지금 리지는 ‘복직이 코 앞’이라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 탓에 몸과 마음이 더욱 긴장하여 평소보다 높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리지는 이미 요가와 명상을 하며 좋아진 경험도 했고, 이직 후에는 점차 일상 수준의 생활에 적응하기도 했고, 육아휴직을 하며(몸은 못 쉬었겠지만) 사회적 상황에 거리를 두고 아이와 사랑을 주고받았잖아요. 또 미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리지는 이십 대 초반의 리지가 아니고요. 직장생활의 산전수전뿐 아니라 결혼과 출산과 육아라는 공중전까지 치른 중견 선수예요. 심지어 리지를 바닥 치게 한 그 경험들도 리지를 더욱 단단하게 현명하게 했어요. 이제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때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잖아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님을 리지가 깨닫기를 바라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편도체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압도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가정하고 불안이라는 신호를 보내요. 덩달아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라고 과거의 감정, 생각들이 재생하죠. 마치 화재발생 대피훈련처럼요. 하지만 리지는 알죠.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니고, 내가 돌아갈 곳도 전쟁터가 아니라는 것을요.

리지, 또 불안의 사이렌이 울리면 이십 대의 내가 참 많이 힘들었구나, 부모님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저 책임감에 버텨내려고 홀로 그 고생을 했구나 진심으로 알아주세요. 어쩌면 아직도 그때의 힘든 기억을 안고 리지의 마음 한구석에서 울고 있을 어린 리지를 안아주세요. 조금 막연하게 들리시나요? 제 경험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저는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매일 술을 마시다 잠들고, 다른 차가 나를 치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자주 하던 2009년의 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그 힘듦이 어떤 건지 유일하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잖아요. 그래서 이해와 위로를 전하는,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내 주어 오늘의 내가 있다는 고마움을 전하는 말을 해줬어요. 지금도 종종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 때의 나와 2009년의 나 등 힘든 시기의 나들이 떠오르기도 해요. 그때의 감정과 함께요. 그러면 혼잣말로, 글로, 누군가와의 대화 등으로 충분히 달래주고 보내줘요. 그리고 오늘을 살죠(살려고 노력해요).

리지의 방법은 다를 수도 있을 거예요. 요가와 명상이 리지에게 잘 맞다면 아주 좋은 일이에요. 과학적으로도 여러 번 검증된 확실한 방법이거든요.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나 자신의 과거가 현재를 사는 리지에게 찾아오는 걸 모른 척하거나, 참으라고 입을 막거나, 지겨워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만큼 그들은 더 미래의 리지가 자신을 받아들여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계속 찾아와 문을 두드릴 거예요.

리지의 질문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더 근본적이고 큰 질문으로 리지를 끌어들이고 있네요. 저는 믿어요. 지금의 리지가 십 대, 이십 대의 리지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다고요. 혼자 시작이 버거우면 심리상담의 도움도 받아도 좋고요. 이건 어느 나이대에도 유효한 이야기예요. 심리상담은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분명한 방법 중에 하나거든요. 음, 이제 그만 글을 정리해야겠네요.

리지, 복직하면 지금의 불안은 현실만큼의 불안으로 낮아질 거예요. 과거보다 나은 상황, 과거보다 강한 리지니까요. 그러니 남은 휴직 기간은 혼자 생각이나 감정에 잠기기 보다는 규칙적인 운동 등으로 사회 복귀 워밍업을 하거나, 가족 여행 등으로 육아 휴직의 마무리를 기념하기를 추천해요.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면서, 떠오르는 과거의 감정들은 알아주고, 안아주고, 흘려보내 주면서요. 하지만 솔직히 삼십 대 리지 앞의 현실도 만만치는 않잖아요. 이제 겨우 성인 초기를 살고 있는 리지에게 육아와 직장의 병행이라는 최고 난이도의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리지, 눈치챘나요? 지금의 리지도 시간이 흐르면 미래의 리지가 안아줄 거예요. 수고했다, 잘 해냈다, 고맙다 안아줄 더욱 성숙하고 멋진 리지가 기다려요.

그러니 리지, 우리 다짐해요. 과거의 나들의 손을 꼭 잡고, 불안한 가운데서도 용기를 내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크고 작은 선택을 하기로요. 더 이상 나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나를 지키고 돌보겠다고요. 리지가 남은 인생에 여전히 많이 남았을 우여곡절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선물들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행운을 빌어요!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

6

기존 밑미 사이트에서 옮겨온 이야기예요. 회원 정보를 옮기기 전이라 쓰신 분의 이름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 2023.04.062

    슝슝님의 고민상담소 항상 읽고있는데 따뜻한 위로와 도움이 되는 조언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도 단단해져요.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 2023.04.071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소리 없는 나와의 전쟁을 한 하루를 보낸 저에게도 위안이 되네요. 슝슝님의 목소리라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ㅎㅎㅎ

  • 2023.04.072

    눈물이 핑 돌았어요. 리지님도 슝슝님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 2023.04.071

    고민과 답변에서 묻어나는 깊은 슬픔과 회복 그리고 응원이 느껴집니다. 저또한 감동 받고 갑니다. 우리 함께 행복의 길을 선택하길 응원합니다!

  • 2023.04.10

    오늘도 너무 탁월하신 상담이에요 마음 밑바닥에서 옳은 조언을 하고 있지만 종종 외면받는 자신을 북돋아 주는 메세지네요

  • 2023.05.09

    비슷한 상황이어서 완독했는데 눈물나네요 ㅜ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비워둘 30분, 오늘부터 만들어볼까요?

이 글과 맞닿은 리추얼을 준비하고 있어요. 14일 코스, 누른 날이 1일차예요.

준비 중
나 리추얼 — COMING SOON
14일 · 오늘 시작 가능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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