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신영님의 고민

신영님의 고민
“가족들을 제가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집은 함께 하는 시간이 없어요. 밥도 다 따로, 잠도 다 따로, 얘기도 거의 안 해요. 언니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는데 7년 전 6개월 정도 다닌 첫 직장을 다니다 스스로 정신과에 갔고 그 뒤로 퇴사. 다시 취업은 못하고 부모님 카드로 생활하며 집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아빠는 언니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쟤는 인간 안 된다고 말씀하세요. 엄마는 그냥 하루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래요. 뭔가를 바꾸려 하지도 변화할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해져 있어요. 아빠는 사는 게 재미가 없대요. 맞는 말이에요 평생 돈만 번 아빠에겐 낙이 없는 것 같아요.
아빠는 저라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부모님 기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길 바라시는데 저는 얼마 전 오래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게 힘들어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이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뒤로 아빠는 더 무기력해지셨습니다. 제가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거부했다고 생각하나 봐요. 결혼하지 않고 독립하지 못한 두 딸을 부끄러워하고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막내지만 k-장녀 증후군인 것 같아요. 아빠가 없으면 경제적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고, 엄마가 없으면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할 사람은 내가 되겠지, 식욕과 인터넷밖에 없는 우울증에 빠진 언니를 내가 부양해야 한다는 먼 미래의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은데, 결혼해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이 몰려옵니다. 당장 우리 가족부터 화목하고 싶은데 아무도 협조적이지 않아요. 다들 변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각자를 고립시키고 우울함을 키워나가요. 가족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서 힘들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가끔은 너무 버거워 타지역으로 이직과 독립을 준비하려 합니다. 근데 그러면 지금도 각자 방에서 따로 지내는 우리 가족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까 두려워요.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나의 몫만큼 책임지고 감당하세요. 그거면 됩니다”
반가워요, 신영. 신영의 고민글을 읽으며 각자의 방에 섬처럼 고립되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요. 신영도 온몸에 힘이 빠졌다가 가슴이 답답했다가 막막해서 눈물이 나다가 한숨을 쉬고 또 쉬며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신영은 가족과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가족의 상황을 볼수록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아 더 힘든 것 같아요. 아마도 지속적인 위로와 힘이 되었을 오래 만나던 사람과의 이별도 신영을 더욱 가라앉게 하겠지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별을 감당하고, 이직과 독립을 준비하는 신영의 힘과 용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 아버지에게도, 묵묵히 가족들을 먹이고 돌보는 어머니에게도, 긴 시간 마음의 병과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언니에게도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이유로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안녕하지 못한 시간의 연속에도, 가족 모두가 자기 몫의 삶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K-장녀 증후군’ 같다고,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지요. 아버지의 희망과 기쁨이 되어야 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이어받아 언니를 돌봐야 하고요. 거기다 가족의 화목을 위한 구심점까지 맡아야 한다니 신영이 아니라 누구라도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에요. 다른 가족들과 똑같이 신영의 마음도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요. 한편으로는 두렵겠지요. 내가 떠나면 다른 가족들은 더 힘들어질 텐데, 그래도 되는 걸까 하고요. 어쩌면 답이 없는 가족을 나 살자고 버리는 건가, 죄책감이 들지도요.
신영, 혹시나 언니나 다른 가족이 어깨 위의 짐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건 오해예요. 신영이 그들보다 더 강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불행에서 구해내야 하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신영도 가족들과 똑같이 지금처럼 사는 게 힘든 한 사람이고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도 신영과 똑같이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내고 있는 힘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우리는 모든 순간에서 각자의 최선으로 선택하고, 살아내는 중이에요.
그러니 신영도 자신이 원하고, 할 수 있는 선택을 하세요. 신영이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미래들은 신영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신영과 가족들이 한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겠지요. 독립이라는 신영의 새로운 선택으로 가족 관계의 변화가 생길 거에요. 그 방향이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각자의 몫임을 신영이 받아들이기를 바라요.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신에게 있어서, 대신 책임을 질 수도 다른 이에게 책임을 넘길 수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관계는 지옥이 된다는 것을 신영도 경험으로 알고 있잖아요.
신영의 이별도, 신영의 책임감도, 신영의 힘듦도, 신영의 두려움도 가족의 탓이 아닙니다. 온전히 신영의 몫이에요. 하지만 딱 그것까지만 감당하면 됩니다. 가족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도울 수는 있지만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할 수는 없음을 받아들이고, 신영의 삶을 사세요. 가족들 사이에서 내내 외롭고 힘들었을 자신을 구하고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신영의 고민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여기까지입니다. 안녕을 빕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