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무서워진 쏘보쏭쏭의 고민

쏘보쏭쏭의 고민
“남편이 무서워졌어요.”
결혼한 지 8년째예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아이도 있고요. 결혼과 육아가 적성에 맞진 않지만, 나름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제 고민은, 남편이 무서워졌어요.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이 상황과 분위기를 피해 갈 수 있을까, 극복 후 다시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큽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요. 가끔 부부싸움을 해도 서로 자연스럽게 화해를 시도하고 사과해서 다시 좋은 관계로 돌아가곤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층간소음 문제로 크게 싸우면서 남편이 제게 험한 말을 스스럼없이 하더라고요. 남편의 불만은 본인을 무시하는 제 태도 때문이었는데, 오히려 남편은 저에게 큰소리로 나쁜 말들을 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평소 저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같아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제대로 화해가 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어제 또 일방적으로 나쁜 말을 들었어요. 회식 후 평소보다 늦게 귀가를 했더니, 혼자 육아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갑자기 저한테 풀더라고요. 일부러 온 집안을 쿵쾅거리며 걷고 문을 쾅쾅 닫으며, 화가 난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저한테 짜증과 화를 분출했어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어요.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눈앞을 스치며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섭고 눈물이 났어요. 주위에서는 대화로 풀어보라고 하던데요. 문제는 제가 너무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치겠고 말도 못 걸겠다는 겁니다. 마치 범죄자와 같은 집에 있는 느낌이에요. 요즘 회사 일도 힘들고 지치는데, 집안까지 어수선해서 마음을 못 잡겠어요. 그래서, 저를 아무도 모르는 밑미에 하소연해 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단단히 잡고 용기 내서 대화로 풀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저 자신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큰 충격에 깊은 상처를 받은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세요.”
쏘보쏭쏭, 잘 왔습니다. 이렇게 온라인 공간으로라도 고민을 말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정말 잘한 겁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여전히 가족 테두리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오래되고 커진 다음에야 드러나는데, 지금 도움을 요청한 건 큰 용기이자 좋은 타이밍입니다. 닉네임이 기니, 가운데 두 자만 똑 따서 ‘보쏭’이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환영합니다. 마음이 급하겠지만 이어지는 글을 읽기 전에 따듯한 차라도 한 잔 들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읽으면 좋겠습니다.
부부싸움 중에 결혼 팔 년차 내내 들은 적이 없던 험한 말, 나쁜 말을 쏟아내는 남편 앞에서 보쏭이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면 저도 아찔합니다. 그 순간 동등한 성인끼리의 의견 다툼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에 벌벌 떨던 어린 아이로 돌아가 성인 남성의 폭언과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보쏭이 많이 걱정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폭력은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외상 경험인데, 보쏭님은 남편의 말과 행동에 더해 그 트라우마까지 경험한 걸로 보입니다. 남편이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친다는 게 얼핏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보쏭님의 몸과 마음이 충격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지금의 반응은 인간이기 이전에 한 명의 생물로서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 제일 먼저는 큰 충격에 깊은 상처를 받은 자신부터 수용해 주세요.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세요. 보쏭부터 어린 자신에게, 현재의 나에게 ‘많이 놀랐지, 너무 무서웠지, 답답하고 막막했지, 서운하고 서러웠지….’ 공감해 주세요. 업무와 육아 사이에 시간을 내어 가능한 방법으로 긴장한 몸과 마음을 풀어주세요.
제가 고민글로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연애, 결혼, 육아 등 8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남편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 처음이라는 거예요. 어쩌면 남편도 많이 놀랐을 겁니다. 어쩔 줄 몰라서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얼마 후 한 번 더 분노를 터뜨렸지요. 쿵쾅,쾅쾅 대며 마치 자신의 화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아이처럼요. 폭언과 행동적인 위협이 배우자로서 큰 과실이고, 요즘 세상에는 이혼 사유가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마음인지 상식적인 성인의 모습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명백한 잘못을 하고 있어요. 세 번, 네 번 이상 반복되기 전에 멈추지 않으면 보쏭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위험한 상황입니다. 고민글 중에 언급한 남편의 말이 ‘본인을 무시하는’ 보쏭님의 태도라는 이야기에서 남편의 성격이 자기 표현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참거나 넘어가거나 맞춰주는 게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보쏭과의 말다툼에도 기억력이나 논리, 언변에서 진 적이 많았겠고요. 그러다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인 보쏭에게 폭발한 거죠. 폭언과 위협 행동을 한 시점에서 잘못은 분명히 남편에게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할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이는 법리적인 부분이고, 보쏭은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니 보쏭이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 지 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집에서 대화를 시도해 본다는 건 너무 무리한 시도입니다. 적어도 무서워 떠는 아이가 된 보쏭과 자기 분노를 자기도 조절할 수 없는 아이가 된 남편에게는요. 두 사람과 아이밖에 없는 집에서는 그 피해가 아이에게 갈 수도 있으니 더욱 위험하고요. 그래서 안전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보쏭이 할 수 있는 시도 중에 하나는 편지를 쓰는 겁니다. 남편의 잘못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보쏭에게 남편이 한 말과 행동에서 보쏭이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떤 기억까지 떠올랐고, 그 후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남편과 있을 때 보쏭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자세히 적으세요. 그리고 보쏭이 원하는 건 이 관계의 회복이고, 여전히 남편과 함께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의논하고 풀어가고 싶다는 것까지요.
그리고 잠시라도 아이 없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조용하지만 오픈된 공간인 카페 같은 곳에서 남편에게 편지를 읽게 하세요. 그리고 남편도 남편이 원하는 형태로 남편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길 부탁하세요. 말로 한다면 도중에 끊지 말고 끝까지 다 듣고요. 글로 적겠다면 충분히 기다려 주세요. 누가 기억하는 상황이 맞고 틀린 건 따지지 마세요. 보쏭의 목표는 관계의 회복이니까요.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며, 가능하다면 자기도 스스로를 어쩔 줄 모르는 아이로 남편을 바라봐 주세요. 보쏭이 자신에게 공감해 줬듯, 남편에게도 ‘당신도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억울하고 분했구나, 어쩔 줄 몰랐구나, 막다른 절벽에 떠밀린 기분이었겠구나….’ 공감해 주세요. 할 수 있다면요. 그리고 다시 보쏭이 ‘얼마나 놀랐는지, 무서웠는지, 당신이 무서운 존재라는 게 얼마나 힘든 경험인지’ 말해 주세요. 남편이 위로에 서툴다면 부드럽게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하세요.
지금 저의 조언은 꽤나 이상적인 전개예요. 보쏭이 계속 기억하고 남편에게도 전해야 하는 건 보쏭이 원하는 게 말다툼, 시비 가리기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라는 것이고요. 보쏭에게 어려운 시작이라면 상담실로 찾아가 보는 것도 좋아요. 보쏭이 먼저, 나중에는 부부가 함께 찾아갈 수도 있을 거고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의 재발 방지책까지 같이 의논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지요. 보쏭의 편지와 함께 이 글도 같이 전달해도 좋아요. 저도 두 분이 이번 일로 더욱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딸아이를 돌보듯 서로를(서로 안의 아이를) 돌보는 부부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거든요. 그리고 저도 남자로 태어나 자라며, 누린 이득도 많지만, 얼마나 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몰라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감당하며, 외롭고 숨 막히는지 알아서, 남편분이 어떤 심정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거든요. 저의 힘 없는 답변이 보쏭에게, 남편에게, 두 분의 딸에게 작고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혼자 살아내기도 힘든 세상에 한 집에서 귀한 생명을 함께 돌보며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애쓰고 있는 두 사람에게 서로를(서로 안의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돕고 싶은, 기대고 안고 품어주는 마음이 들기를,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밑미 메이트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