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는 초파리의 고민

초파리의 고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남 탓을 하게 돼요.”
저도 모르게 어느새 남 탓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바나나에 초파리가 생겼을 때 ‘엄마는 왜 바나나를 사와서 초파리가 생기게 만들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부정적으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찾아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근데 이런 모습은 제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이거든요. 언젠가 아빠가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를 찾아오다가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택배를 찾아오라고 한 엄마 탓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새 제가 그러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남 탓을 끊을 수 있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내 감정의 책임자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해요.”
반가워요, 초파리. 고민글을 봐도 초파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름으로 초파리라니, 으, 누군가가 붙인 싫은 별명 대신 내가 스스로 불리고 싶은 별칭을 사용하길 권하는 편인데, 지금은 다시 지어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음, 살짝만 바꿔서 제가 아는 가장 귀여운 캐릭터 중 하나로 부를게요. 자, 이제부터 초파리는 원피스의 눈물 많고 마음씨 착한 사슴, ‘초파’예요.
그나저나 남 탓이라니, 그거 끊을 수 있는 건가요? 남 탓이 얼마나 편한데요. 우리는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원인을 찾잖아요. 그때 가장 쉬운 것이 남 탓, 상황 탓인 것 같아요. 내 탓이 아니니 나는 잘못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잖아요. 특히 짜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확 올라올 때는 즉각적으로 남 탓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파뿐 아니라, 저도,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정반대로 내 탓, 자기 비하, 자기 비난의 굴레에 빠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또 다른 경우니 제외하고요. 그러니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것은 아주 즉각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반응이에요. 그러니 남 탓해도 됩니다. 적어도 마음속으로는요. 적어도 반만큼은요.
초파가 원하는 답변은 아니겠죠. 하지만 남 탓하는 마음이 드는 나도 보통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하는 거지 특별히 더 나쁜 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폭력 등의 피해 상황은 예외로 두고, 일어난 일의 반은 남 탓 맞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원인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원인도 나이고요. 우리는 종종 타인을 비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고 효과가 있다고 믿지만, 사실 타인의 변화는 온전히 타인의 몫입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과 단절 등 관계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요. 그러니 문제의 원인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 모두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문제가 다시 발생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내부적인 원인에 변화를 주면 됩니다. 이게 기본틀입니다.
엄마가 사 온 바나나가 더운 날씨에 식탁에 오래 있어서 초파리가 생겼습니다. 초파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옮겨 다니며 균을 옮기니 비위생적이다 싶어서 초파는 보자마자 짜증이 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느냐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네요. 초파리 몇 마리가 바나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어쨌든 초파에게는 문제 상황입니다. ‘아이씨, 엄마는! 바나나를 누가 많이 먹는다고 송이째 사 와서는 남겨서 이렇게 초파리를 들끓게 해?’라는 생각은 자동적입니다. 괜찮아요. 하지만 그다음에 그 짜증과 화를 엄마에게 터뜨리는 건 부당합니다. 엄마의 행동이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자신의 최선이었을 테니까요. 초파에게 권하고픈 다음 행동은 자신에게 날아든 생각과 그로 인해 올라온 짜증이라는 감정을 책임지는 겁니다. 초파리가 싫고, 엄마가 짜증스럽고, 이걸 치우는 게 귀찮고, ‘집에서는 그냥 편하게 쉬고 싶은’ 나의 생각과 감정과 그 속의 욕구까지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세요. 그리고 가장 빠르게 좌절된 내 욕구, 여기서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충족시켜 주세요. 바나나를 비닐로 싸거나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넣고 쉬든지, 얼른 뒤돌아 주방을 벗어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세요.
어떤 일들은 좀 더 복잡해서, 나 혼자 금방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내 몫의 최선만 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것들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상대에게 정중하게 변화를 부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부탁까지. 그 부탁을 들어주는 건 상대의 몫으로 맡기고, 얼른 평화의 자리로 돌아오세요. 근본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의 갈등이 아니라면, 문제를 확인하고, 내 몫의 선택을 하고,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가능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세요. 가깝고 자주 보는 사이일수록 ‘좋은 관계’가 저절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는 더 좋은 관계로 성장하게 합니다. 초파도 저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실수도, 잘못도 하고 또 하면서 살 겁니다. 원치 않게 서로 피해도 주고받고, 귀찮고 짜증 나고 지겨울 때도 많겠지요. 여러 번 반복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니 받아들입시다. 대신 할 수 있을 때 더 이해해 주고, 덮어 주고, 배려해 주고, 챙겨 줍시다. 나부터,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더 많이 사랑합시다. 엄마 탓이야. 한 번 했으면, 엄마 덕분이에요. 열 번 하면 됩니다. 참 쉽죠?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