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에게 죄책감이 드는 레몬의 고민

레몬님의 고민
“애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죄책감이 들어요.”
사귄 지 2년 가까이 된 애인이 있습니다. 제가 심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에 만났는데 싫은 티 한번 없이 제 투정을 다 받아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덕분에 자존감도 많이 오르고 주변에서도 제 얼굴이 좋아졌다면서 정말 잘 만났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너무 의지한 탓일까요? 반대로 애인이 저한테 힘든 일을 말하거나, 사소한 투정만 부려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요. 진지하게 들어주기에 버거워서 대충 듣고 다른 이야기로 돌려버리거나 상투적인 위로만 건넵니다. 애인은 항상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데, 저는 늘 귀찮은 듯이 구니 제 이기적인 모습에 죄책감이 많이 듭니다. 분명 애인을 많이 좋아하는데, 막상 저한테 의지하는 건 싫은 걸까요? 제가 애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쓴 걸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애인의 힘듦도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레몬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반가워요, 레몬. 애인에게 많이 의지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데, 애인이 내게 기대 올 때는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봐요. 이런 내 모습이 싫고 개선하고 싶은데, 여러 번 반복하게 되나 봐요. 레몬의 고민을 정리하다가 문득 앞 문장의 ‘개선하고 싶은데’가 마음에 걸리네요. 레몬이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레몬은 애인이 내게 해주는 것처럼 애인의 투정과 힘듦을 넉넉하게 받아 주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정말 원하나요? 생각해 보세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 같아요. 이어지는 답변들은 제 추측일 뿐이니 참고만 하길 바라요.
저는 두 아이의 부모이기도 한데요. 분명 아이들의 존재가 제게 큰 힘이 되지만,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저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이 기본적인 안정감과 편안함을 쌓아가길 원해서요. 제가 생각하고, 겪고 있는 불안을 그대로 노출한다면, 아이들은 마음껏 자신의 세상을 탐색하지 못하고 저를 신경 쓰고 돌보는데 일부라도 자신의 에너지를 쓰게 될 거라서요. 갑자기 부모-자녀 관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우리는 연인 관계에서 종종 부모-자녀 관계를 반복하기 때문이에요. 레몬이 애인에게 바라는 게 자신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서 있으면서 나를 그대로 수용해 주고 아껴 주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애인에게 레몬의 실제 부모도 못 해준 이상적인 부모 역할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애인도 섬세하고 다정하게 돌보는 역할을 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익숙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레몬이나 애인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연인 관계들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예요. 마침 연애도 한 사람은 많이 힘들고, 한 사람이 그 아픔을 돌보며 시작했잖아요.
연애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되기 쉬워요. 힘든 레몬에게는 애인의 돌봄이 필요했고요. 애인도 레몬으로부터 받는 것들이 많을 거예요. 일방적인 관계는 없어요. 레몬이 애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쓴 걸까요?’라고 했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힘들 때 고민을 말하고, 의지하는 것에서는 다소 한 방향일지 몰라도, 관계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것들은 훨씬 더 많거든요. 다만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질수록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기가 어려워져요. 애인도 마찬가지로 점점 레몬이 좋아하는 든든하고 다정한 모습이 아닌, 약하고 불안한 모습이 드러나는 거고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니까 레몬에게 발견되는 거죠.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에요. 애인에게는 필요가 생긴 거예요. 연애 시작 즈음에 레몬에게 컸던 ‘수용 받고 돌봄 받고 싶은 마음’이요. 아마 이 필요는 가끔 등장할 수도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누구나 인생이 혼자서는 외롭고 힘드니 함께 사는 거니까요. 레몬은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애쓸 마음이 있나요? 레몬이 다른 관계에서는 잘 들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혹은 다른 관계에서도 주로 말하는 쪽일 수도 있고요. 전자면 애인을 대상에 포함하기를 선택하는 거고, 후자면 애인을 위해 경청과 돌봄을 연습하기를 선택해야 하는 셈이에요. 레몬의 선택은 레몬에게 달렸고요. 애인도 자신의 필요가 이 관계에서 채워질 수 있구나, 채워질 수 없구나를 경험할 거고 자신의 선택을 할 거예요.
제가 권하고 싶은 건 레몬에게는 어렵고, 애인은 잘하는 분야니 애인에게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하고,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묻고, 어색하고 불편해도 연습하며 애인의 힘듦도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레몬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거예요. 좋을 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에 더해서, 힘들 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래가는 관계일수록 긴 인생의 고난을 함께 하게 되니까요. 레몬의 성장에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사람은 애인이 아니라 레몬일 테니까요. 그러니 이 기회에 귀찮음, 불편함을 이겨내고 ‘경청과 돌봄’에 대해서 공부하기를 시작하세요. 좋은 관계는 서로를 자라게 해요. 서로가 자신의 상처를 딛고 성장하게 해요. 마침 좋은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네요. 두 사람의 사랑이 레몬을 도울 거예요. 응원을 보냅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