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 어려운 귀여움님의 고민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님의 고민
“내 고민을 말하고, 부탁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33살 워킹맘으로 2살 아들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여자 사람입니다 :) 저는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부탁하지 못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출산 후 1년간 육아 휴직을 했고, 육아의 고됨과 끝없는 매일의 반복 속에 산후우울증이 와 3개월 정도 상담을 받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극복된 상태입니다. 처음 상담 갔을 때도 사실 어떤 얘기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 지가 막막했어요.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봐도 고민 상담이라고 할 만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저는 늘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이지 제 고민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왜 그럴지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얘기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결국 이 고민의 끝에 선택하는 건 저의 몫이기에 굳이 타인에게까지 제 고민의 무게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러다 보니 부탁하는 것도 제게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해보고 만약 안 되면 그때 부탁해야지, 해보지도 않고 부탁하는 건 마치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랄까요. 복직을 앞두고도 친정엄마께 아이 하원을 부탁해볼까 생각은 했지만 결국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매일 제가 퇴근 후 아이를 데려오고 있어요. 사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잘 있어서 하원을 꼭 일찍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부탁하는 행위 자체를 너무 어려워한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민폐 끼치는 것이 싫은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육아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이 올 텐데, 부탁하지 못하는 제 이런 성격이 오히려 아이의 보다 나은 성장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저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시작해 보세요.”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이하 ‘세구’로 부를게요. 무근본 닉네임 줄이기 죄송해요), 반가워요. 세구는 타인에게 고민을 나누고, 부탁하는 게 어렵다고요. 늘 친구들의 고민은 들어주면서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워 말도 못 꺼냈고요. 세구가 겪었다는 산후우울증도 어찌보면 병이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육아를 감당한 결과일수도 있겠네요. 고민글을 쓰는 것도 도움을 요청하는 건데, 그래도 용기를 냈군요. 잘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에게 고민을 말하고, 부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맞는 것 같아요. 내향적인 성격,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분위기의 성장 환경,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과 거절의 경험 등이 있다면 더욱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러니 고민을 가능하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신을 어떤 능력이 결핍된 사람으로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네요. 세구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에요. 한편으로 세구의 어려움이 평균적이지 않다면, 혹시 거절도 어렵다면, 아마도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장기적으로는 심리상담, 자기공부 등의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길 권합니다.
고민을 혼자 간직하고, 부탁하기 보다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세구의 방식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다소 불편할 수는 있으나 문제는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이 좀 답답해할 수는 있지만 그건 그들의 문제지 세구의 문제는 아니고요. 오히려 스스로 해낸 만큼 세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 성장에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삶에는 혼자 힘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세구는 ‘독박 육아’로 그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이어서 ‘직장과 육아’의 병행이라는 큰 산을 오르고 있고요. 물론 그걸 다 혼자 해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대단한 과정의 속사정은 심히 힘들었을 거예요. 즐겁기도 편안하기도 어려웠을 거고요.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충분히 배우고 연습할만한 일이에요. 더욱이 그 상황 속의 인물들이 나 자신과 내 아이, 가족이니까요. 얼마든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나 상황에서는 지금의 세구가 잘하는 방식으로 해도 되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함께 짐을 나누어야 해요. 세구가 힘이 다할 때까지 혼자서만 감당하며 여유와 생기, 유머를 잃어간다면 세구와 함께 하는 가족들은 즐겁고 편안할 수 있을까요? 특히 어린 아이를 돌보는 몇 년은 서넛이 몫을 나누어도 벅찬 시간이니 꼭 가능한 보호자들의 힘을 모으길 권합니다.
또 고민을 나누고 부탁하는 일은 단순한 의존이 아닙니다. 현재 나의 문제와 생각,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 대상에 상대도 포함됨을 인정하는 일이고, 상대가 기꺼이 내 삶에 의견을 더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밀하고도 능력있는 존재임을 선언하는 일이에요. 친구들이 세구에게 고민 상담을 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해보세요.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할만큼 나를 믿는구나’하는 기쁘고 고마운 느낌과, ‘나는 친구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 해줄만큼 괜찮은 사람이구나’하는 뿌듯함이 들었을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자신의 존재와 힘을 믿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세구와 함께 사는 세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기 신뢰’를 쌓아갈 기회를 주는 연습이기도 해요.
답변글을 쓰다보니 세구에게 제안하는 연습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네요. 문제를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건 그 일부분이고요. 사랑과 돌봄을 충분히 받은 아이는 내면이 평온하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랍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싶은 어른이 세구뿐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 회의를 소집하세요.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 아이와 사랑을 주고 받길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함께 하도록 요청하세요. 세구의 고민은 세구의 성격에서 출발했지만, 제 답변의 도착은 현재 상황의 해결이네요. 나의 선택이 상황을 만들지만, 어떤 경험은 나를 만들만큼 강력하니까요. 세구를 위해서, 세구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세구가 자주 웃는, 편안하고 다정한 엄마일 수 있길 바랍니다.
추신. 이 고민에서 아빠는 제외되어 있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그가 지금 곁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가장 힘든 시절 최고의 동료애를 쌓을 기회와 사랑하는 아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을 기회를 동시에 놓치는 거예요. 우리의 많은 아버지들이 생애의 마지막 수십 년을 외로움이라는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니, 이 육아 작전에 참전하길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