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인생이 시들어버리는 것 같은 무명의 고민

무명의 고민
“인생이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리는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첫 직장에 다닌지 8개월 정도 되는 29살 무명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전공 관련 스펙을 만들 목적으로 2년 휴학을 했으나 허송세월만 보내고 취업이 늦어졌습니다. 전공도 부모님 권유로 선택했고 빨리 취업하라는 성화에 일단 그냥 취업을 해서 어찌저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하루의 1/3을 일에 쓰는 만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꺼이 영혼을 쏟을 만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시름이 깊어져만 갑니다. 적성검사도 해보고 상담도 받았지만 큰 도움이 안 됐습니다. 내 인생도 빛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점점 회사에 길들여지고 피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는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다채롭게 보였으면 하는데, 빛이 바래 모든 것이 퇴색되어지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목적도 없고 인생의 의미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뭘 그리 열심히 살고 생기가 넘치는지.. 그저 선망하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전무해 밑미 고민 상담소에 터놓아봅니다. 저도 답을 찾아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날도 완벽한 삶도 없겠지만, 나를 위한 시행착오와 시도를 통해 크고 작은 깨달음을 만들어 갈 수는 있어요.”
무명, 반가워요. 이십 대의 끝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무명을 보니 딱 그 나이 때의 제가 생각납니다. 대학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심리상담으로 바꿔 졸업 후 딱 스물아홉쯤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나름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는데도 비본질적인 업무가 많고, 주어진 일은 벅차고 지치고, 직장 상사와 동료는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 뒤로 1~2년마다 이직, 퇴직 후 공부, 프리랜서 전향, 재취업 등 삼십 대 내내 제가 원하는 일, 원하는 삶을 탐색하는데 세월을 보냈지요. 짧은 고민글로 무명의 삶을 가늠하기 어렵듯 몇 줄로 요약하기에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SNS 속 대단한 사람들도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습 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고 살고 있을지 정말 알 수가 없지요. 다만 우리가 모두 과거를 아쉬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만 분명할 거예요. 그러니 무명, 너무 시름에 잠기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무명은 시작 지점에 서 있으니까요.
부모님의 권유로 선택한 전공과 무난한 직장은 무명의 나를 찾는 활동에 필요한 베이스 캠프고, 나를 생기 넘치게 하는 즐겁고 의미 있는 일과 사람이 없는 하루들은 이제부터 무명이 채워야 하는 빈 캠퍼스예요. 좀 과장하자면 십 대, 이십 대 동안 무명은 이 시작의 순간을 위해 준비한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상은 이런 곳이구나를 경험적으로 약간 배우고 적응한 거죠.
심리검사와 상담, 밑미 고민상담소 방문은 무명이 이미 시작한 자기 탐색의 과정입니다. 처음이 제일 시행착오도 많고 어렵습니다만 점점 나아질 겁니다. 나의 관심과 흥미, 혹은 내 앞에 나타나는 일들과 사람, 기회에 따라 새로운 시도들을 거듭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맞는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구체적이고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제 경우에는 능력이 없어 포기한 영역이었던 글쓰기를 취미로 삼아 시작하고, 말주변이 없어 별 대화없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고, 이들을 현업인 심리상담과 섞으니 저만의 고유한 활동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소소하게 먹고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구나를 깨달아가고 확장해 가고 있어요. 무명은 무명만의 길이 있습니다. 누구와도 같지 않아서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지요. 다만 탐색의 시작은 내 성격에 대한 이해 위에서 과거에 좋아했거나 관심있었던 것이나 지금의 내 관심사와 취향 중 더 알고 경험하고 싶은 것과 관련된 행동을 해보는 거예요. 잘 모르겠다면 아예 낯선 사람, 경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에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새로운 자극들이 어떤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니까요.
저는 종종 내 생활권에 있는 ‘책방 모임’을 권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환영하는 따듯한 분위기에다 양질의 정보가 있는 책을 중심으로 한 대화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모임이 부담된다면 밑미의 온라인 리추얼들을 통해 솔직하고도 다채로운 다른 삶들과의 만남부터 시작해도 좋고요.
무명, 무명의 고민글을 읽기 전에 마침 감동적이었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작은 책을 봤습니다(<날들의 완벽함>, 김진태, 오타루 문고(2025)). 제목과는 달리 살수록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날도 완벽한 삶도 없구나 하는 게 그 영화와 책과 저의 결론이에요. 하지만 고단한 인생 중에도 만족스러운 성취, 의미 있는 관계, 즐겁고 슬픈 생생한 감정과 크고 작은 깨달음을 만나는 순간들은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명만의 작은 셀프 구원의 여행을 시작하세요. 응원을 보냅니다. 그럼 출발!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