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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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고민 상담소2023.05.06 · 읽는 데 5

권위적인 아버지와 다툰 둘째아들님의 고민

둘째 아들 님의 고민

“아빠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가정의 둘째 아들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버지와 크게 부딪힌 후 한집에 살면서 모른 척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크리스마스 때 같이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날도 집에서 저녁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어머니께 화를 내셔서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았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어요.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신 정성을 알기에 저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버지가 오시더니 '나는 5끼를 굶고 있는데 식사가 넘어가니?'라는 말씀하셨고,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크게 대들면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적부터 욱하는 성격이 있으셨는데 최근에는 갱년기 때문에 매주 그러셔서 저도 집에 오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고, 어머니는 불안장애 약을 드시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순간 제가 참던 모든 것이 터진 것 같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냉각되었고, 어머님은 그사이에 힘들어하시며 저에게 사과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제 심장에 아버지가 칼을 꽂았는데 제가 직접 칼을 빼고 칼을 꽂은 당사자인 아버지에게 사과하라는 소리처럼 들렸어요.

물론 저도 지금 이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방어기제가 너무 강해서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적으로 나오게 되고 어머니나 여자친구가 놀랄 정도로 욱하게 됩니다. 형이 곧 결혼하고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셔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제가 먼저 사과는 못 할 것 같아요. 제 상처도 큰 것 같아서요. 그리고 아버지는 워낙 보수적인 분이라서 먼저 사과하실 것 같지도 않고요. 더 나아가 아버지랑 현재 이야기할 자신도 없어요. 이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 카운슬러 슝슝 님의 답변

“아버지가 배우지 못했고, 살아내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세요”

안녕하세요, 둘째 아들(이하 ‘둘째’라고 부를게요). 밑미 심리카운슬러이자 평범한 가정의 첫째 아들 슝슝입니다. 둘째의 고민글을 읽으며, 결혼 하고도 부모님 근처에 살면서 일도 같이 하고 있는 저의 남동생이 많이 생각났어요. 결혼 후 가끔 통화, 식사하며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저와 달리 갈등이 잦거든요. 가족은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오랜 시간 너무 밀접하게, 반복적으로 주고 받은 관계라 변화가 참 어려워요. 모든 가족은 가족 외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밀한 역사가 있기도 하고요.

둘째, 요즘 마음이 많이 복잡할 것 같아요. 욱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어머니가 걱정되면서도 집에 들어가기가 참 싫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워하더니, 자식들이 성인이 될 정도로 나이가 들고도 참 변하지 않네요. 같은 성별을 가진 약한 남성으로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얼마나 무서워 떨었을까, 부당해도 참느라 주먹을 꽉 쥐었을까, 참다 참다 폭발하고서도 아버지와 닮은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에 여러 번 죄책감 느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네.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정도야 다르겠지만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들은 참 지겹도록 똑같네요. 일년에 한 번인 크리스마스 가족 식사를 자신이 망쳐놓고는 도리를 다하려는 둘째에게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우며 비난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둘째도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네요. 그 뒤로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로 한참을 소리를 지르며 싸웠을까요? 누군가 부글대다가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가거나 집을 나갔을까요?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있었을까요? 고민글로는 알 수 없네요. 하지만 어머니가 애써 준비한 요리들이 다 식어버렸을 것 같아요. 둘째의 마음도 착잡해져 수개월을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네요. 이 답변을 모든 가족사의 내밀함으로 시작한 이유는 이제부터 할 제 조언이 얼마나 둘째의 상황에 적절한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이번 답변글은 특히 제 개인적인 의견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선 아버지는 변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충격은 좀 받았을 것 같네요. 이제 둘째를 큰 소리를 쳐서 힘으로 누를 수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거예요. 둘째의 고함에 움찔했을 수도,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질 수도, 허탈할 수도 있겠지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버지의 몫입니다. 어머니는 어떠실까요? 삼십 년을 아버지의 분노를 감당하고 달래며 사느라고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는데, 한 쪽이라도 화를 삭이고 상황을 넘기는 게 아니라 들이 받아 상황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수개월 동안을 화해하지 않고 대립하며 집안의 분위기를 위태롭게 하는 두 남자 사이에서 불안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겠죠. 그래서 말이 통하는 둘째에게, 제발 사과하고 폭군을 진정시켜 위장된 평화라도 되찾자고 부탁하는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긴 세월 아버지의 분노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터라, 무력함과 불안함을 감당하는 것이 어머니의 몫이겠지요.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만나 결혼을 선택한, 오래도록 반복되는 관계에 익숙해진 부부니까요.

그런데 자식들은 다릅니다. 선택권이 없었지요. 형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결혼으로 이 상황을 빠져나갔으니 생략할게요. 둘째도 이제는 참기만 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체적인 힘도 목소리도 아버지보다 더 세고 크겠지요.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들이받은 거고요. 어찌 보면 어머니처럼 참다가 아버지처럼 폭발한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사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문제가 재발할 수 있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가족 관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화해의 요청이 아니라면 그 사과, 하지 마세요. 사과하지 않으면 그토록 싫은 아버지와 똑같아 지는 거라는 압박감이 있나요? 사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폭발과 가족의 눈치보기라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 둘째의 선택입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건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둘째의 몫이 아니고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능하다면 분가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물리적으로 지금의 가족 관계 패턴에서 빠져 나오는 거예요.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 상황이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여러 지출이 생기더라도 집에서 나와 둘째만의 생활 공간을 확보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놀랄 만큼 욱하는’ 스스로의 행동을 충분히 살펴보고 돌보고 개선하길 바랍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큰 이유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결과를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감당하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하는 거지요. 분노 행동은 충분히 변화가 가능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대화로 풀고, 운동이나 명상, 산책 등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됩니다.

여러 사정으로 분가가 어렵다 하더라도, 둘째는 지금부터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심리상담으로 시작을 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청년을 대상으로 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있으니 찾아보세요.

둘째, 어머니가 걱정되겠지만, 둘째가 어머니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는 함께 무력했지만, 지금은 힘이 생겼으니 어머니를 대신해 싸울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를 보호할 수는 없어요. 이혼하지 않는 이상 어머니는 아버지와 살 테니까요. 지금 상황에서도 그렇듯 힘으로 만든 대결 구도는 어머니에게 더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감정을 떠안고, 아버지와 적대하지 마세요. 허탈하게도 자식들이 모두 떠나면, 부부 관계가 변화되기도 한답니다. 자식 양육의 공동역할이 사라지게 되어 오래 잊고 살았던 개인으로서 서로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부모를 떠나세요. 그것이 둘째 자신과 둘째가 이룰 새로운 관계를 위해 필요한 선택입니다.

제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둘째의 지금 마음은 어떤가요? 사랑하는 이와 이 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내가 받은 상처를 돌보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책임지는 것이 둘째의 몫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 어머니의 삶의 역경과 슬픔이 이해되고 부모로서 그들이 살아낸 시간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으로 저물어가는 부모의 인생을 품을 수 있을 때, 동등한 성인으로 화해의 손을 내미세요. 그 후로도 크고 작은 다툼이야 있겠지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리라 확신합니다. 나 자신과 다른 이에게 진심 어린 존중과 사랑을 표현하는 아들, 남자친구, 남편, 아버지가 되세요. 아버지가 배우지 못했고, 살아내지 못했던 삶이 둘째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부디 용기를 내시길 바라며 응원을 전합니다. 안녕히.

지금 고민이 있으시면 익명으로 밑미 고민상담소에 고민을 보내주세요. 카운슬러의 답변을 보내드립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

2

기존 밑미 사이트에서 옮겨온 이야기예요. 회원 정보를 옮기기 전이라 쓰신 분의 이름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 2023.05.087

    저도 몇년째 아버지랑 인사 조차 안하고 있는 사람이라 사연자분께 많은 공감이 되네요. 아버지와 저와의 관계를 버거워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 마다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약해졌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큰 위로가 됩니다. 사연자분도 어서 기운 차리시고 다시 평온한 나날 보내실 수 있길 바래요.

  • 2023.05.087

    저는 어머니는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어머니에 관한 기억이 하나도 없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중학생 무렵부터 아버지와 엄청나게 많은 갈등을 겪었고, 해결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말을 잘 들으려 노력도 해봤고, 그 상황을 피하기도 하고, 설득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화도 내봤고, 빌어도 봤지만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가 깨달은 건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몇 십 년간 자라오면서 굳어진 사고방식과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더라고요. 갈등 끝에 결국 근원적으로 생각의 '다름'을 항상 깨달았고,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지만 저랑은 안 맞는 분이라는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둘째아들님도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저의 돌파구는 독립이었어요. 직장인이 된 순간 부터 바로 독립을 하였고, 좁은 방이지만 억눌리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숨통 트이는 삶을 살게 되면서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무한한 행복을 느꼈어요. 내가 싫어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하시고 나와 맞지 않을 뿐이지 아버지 나름의 방식대로 저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간간히 연락도 드리고 찾아뵈기도 해요. 아버지도 연세가 드셔서인지, 아니면 저와 맞부딪히며 갈등을 겪는 시간이 줄어서인지 예전보다 많이 유해지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니 오히려 서로에게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편해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의 '싫은' 사고방식을 종종 마주하지만, 몸이 떨어져서인지 예전보다 덜 욱하고 덜 슬프고 덜 화나더라고요. 고민 내용을 보고 힘겨웠던 제 시간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공감도 가서 길게 주절거렸네요. 둘째 아들님의 고민이 원만히 해결되고 좀 더 마음이 편해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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