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과 주관성을 투여해서 일기를 써요. 내 거니까 그래도 되잖아요. " 밤박하의 리추얼 이야기

interview by 소하
"왜곡과 주관성을 투여해서 일기를 써요. 내 거니까 그래도 되잖아요. "
닉네임 : 밤박하.
태어났을 때 이름이 ‘박하향’이 될 뻔했다가 할아버지 반대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되어 밤에 글을 쓰는 박하라는 뜻으로 밤박하로 활동하고 있어요.
리추얼 경험 : 육아일기 쓰기
나의 첫 리추얼 : 육아일기 쓰기
현재 참여하고 있는 리추얼 : 육아일기 쓰기, 예비 엄마의 꿋꿋한 돌봄 일기
Q. 밤박하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39개월 딸 보니를 키우고 있고 지금은 육아휴직 중인 워킹맘 밤박하입니다.
Q. 밑미 리추얼을 어떻게 알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전 육아일기 메이커이신 현님을 통해 밑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았고 자신을 돌보는 리추얼이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말에 궁금증이 있었어요. 딸이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육아일기를 짧게나마 쓰고 있었어요. 아이가 배앓이하는데 원래 이렇게 많이 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챗GPT도 없던 때라 검색하면 너무 많은 정보가 나와서 신뢰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육아 정보에 대한 궁금증이나 아이가 커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육아와 일이 구분이 안 되어 커리어적으로도 고민이 많았었어요. 자연스럽게 밑미의 육아일기 리추얼을 신청하게 되었어요.
(리추얼 전부터 일기나 글쓰기를 계속 해오셨었나요?)
리추얼 전에 글을 꾸준히 쓰지는 못했어요. 육아일기 리추얼을 하면서 긴 글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리추얼 방에 고민이나 생각들을 쓰면서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거든요. 같이 리추얼하는 사람들이 답을 해줄 이유도 없고요. 저도 사람들에게 답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거든요. 그런데 안전하다는 느낌 때문에 털어놓기만 해도 후련해지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Q. 리추얼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박하님 스스로가 발견한 리추얼하면서 변화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책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의미의 최종 편집권은 나에게 있다’라는 문장이에요. 내 감정도, 내 생각도,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지도 온전히 나에게 편집권이 있는 것인데 육아하다 보면 아이에게 너무 휘둘리니까 주도권을 잃어버린다고 착각할 때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당장 무언가 하고 싶은데 아이가 울고 떼를 쓰면 할 수 없잖아요. 하루이틀은 괜찮지만 계속 쌓이면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도 있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일기를 쓰면서 몇 번의 변곡점처럼 다가온 적이 있었어요.
첫 번째로 보니가 15개월쯤에 유럽 여행을 갔어요. 아직 보니가 스스로 잘 걷지 못할 때여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반면 저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갔는데 육아일기 리추얼 메이트들이 계속 일기를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여행 중에는 리추얼할 엄두도 못 냈는데 사진만 올렸는데도 다들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매일 리추얼방에 일기를 썼어요. 메이트들 덕분에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일기를 쓰게 되었고 지금은 그때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냥 사진만 찍고 동선만 체크하고 아름다웠다, 좋았다고만 썼다면 휘발될 이야기인데 여행지에서 밤에 아이를 재우고 쓴 일기가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되는 기록이 되었어요.
솔직히 저는 힘들었고 후회되는 일에 대해서 너무 자세하게 쓰지는 않아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 일기의 편집권은 저에게 있으니까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가 있었던 하루를 편집해서 쓰는 거죠. 저의 하루를 최대한 재미있게 저장하고 싶거든요.

또 다른 경험은 보니가 장염에 걸렸을 때예요. 저는 지금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어서 아이가 전염병에 걸리면 격리해야 해요. 방에서만 생활하거나 시댁이나 친정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근데 보니가 설사를 계속해서 어디 갈 수가 없었어요. 좁은 방에서 설사 기저귀를 계속 치우는데 너무 진짜 지옥 같은 거예요. 설사 지옥이다, 너무 힘들다, 그러면서 그날 일기를 막 썼어요. 지나고 나니 장염으로 고생했던 기록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너무 웃기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엄청 큰 고민의 순간이 오면 일기를 어떻게 쓸지 고민해요. 너무 힘들었다고만 쓸까, 아니면 나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찾아볼까, 여기서 분명 귀여운 부분이 있었어 하면서요. 육아를 오래 잘하는 비법은 아주 사소한 하나의 순간을 잘 붙잡고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쓸 게 없는 날도, 아가가 이런 말을 했네 하면서 한 줄 쓰는 거죠. 어젯밤에도 보니랑 변기 얘기를 하다가 보니에게 변기야, 라고 부른 게 너무 웃겨서 일기에 썼어요. 안 쓰면 그 순간도 날아가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하님은 하루를 돌아보면서 보니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니까 더 좋은 것을 찾아보자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려운 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 같아요)
네, 저는 엄청난 왜곡과 주관성을 투여해서 일기를 써요. 내 거니까 그래도 되잖아요.
한 번은 여행에 아기 옷이 들어있는 가방을 통째로 놓고 온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자괴감이 들고 나는 엄마가 맞나, 어떻게 아기 옷을 안 가져올 수가 있지 했는데 제 나시를 입히기도 하고 수영복도 입히면서 여행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이거 나중에 일기에 써야지.’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꼼꼼한 사람이 아니라 구멍도 많고 허점도 많거든요. 일기를 쓰고 나면 결국 다 지나가는 것이라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잘못한 순간에 너무 집중하지 않게 되고 지나가고 내일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죠. 일기를 쓰고 덮으면 ‘오늘은 끝났다’고 정리되는 느낌이라 좋아요.

Q. 리추얼로 기록을 시작한 밤박하님이 기록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멋대로 쓰고 싶을 때 쓰고 방법도 이랬다저랬다 해요. 핸드폰으로 쓰고 싶을 때 쓰기도 하고 각 잡고 길게 쓰고 싶은 날은 키보드를 사용해서 쓰고 요즘에는 네 컷 만화를 그리면서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보니가 자기를 그렸다는 걸 알더라고요. 저에게 보니는 뮤즈 같은 존재라서 보니의 말이나 행동이 저에게 다 영감이 되고 재밌어요.
저는 상황에 따라 글이 편하고 어떨 때는 그림이 편한 하이브리드 형이라 어떨 때는 손글씨로 하고 어떨 때는 디지털로 기록해요. 꼭 하나의 방법으로만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날그날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유산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요.
Q. 육아일기 리추얼 기록으로 작년 오프더레코드 전시에도 참여하시고 올해 독립출판물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작년 밤박하님의 오프더레코드 기록은 아이와 함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밤박하님은 도전을 즐기시는 분 같다고 느껴졌어요.
도전을 즐긴다기보단 주도성이 큰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무기력하게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휩쓸려 가는 상황을 제일 어려워해요. 주체적으로 가고 싶은 길도 선택해서 가고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예쁜 길로 가고 싶은데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어렵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바이크를 타기도 했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서 제일 걱정한 건 주도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었어요.
아기랑 같이 북토크도 가고 여행도 가고 서점도 가고 싶은데 하기 전에 찾아오는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근데 막상 해보면 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제 인생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예상보다 덜 힘든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늘 최악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못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최악을 상상하는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오히려 육아를 하며 반전의 순간이 무척 많았어요. 늘 최악까지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북토크도 하고, 올해는 팟캐스트도 시작했어요.


Q. 반전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밤박하님에게 리추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말 같은 것이 있을까요?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말은 너무 많아요. 보니가 돌 조금 지났을 무렵 영유아 검진을 갔어요. 제가 회사에 있어서 공동 육아 선생님 중 한 분이 보니를 데려갔고 저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결과를 들었죠. 그런데 보니 키가 너무 작다고 말씀하시면서 '병적인 수준이다'라는 표현을 하시는 거예요. 보니가 또래보다 작은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회사에서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하루 종일 울적했어요. 그리고 그날의 일기를 적었는데 정말 많은 메이트들이 댓글을 달아줬어요. 의사의 표현에 대해 같이 화를 내주는 사람도 있었고, 속상해하며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 경험을 적으면서 다독여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중에 '수희'님이 제가 예전에 수희님께 적어드렸던 댓글을 소환해서 이야기해주셨어요. "예에~전 제 일기에 도준이 손톱이 종이장에서 점점 단단해짐을 느낀다는 문장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도준이 손톱만큼 느리지만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는 수희님의 마음을 응원한다'라고 적어주신 댓글이 생각났거든요. 그 응원이 도준이 손톱 자를 때마다 떠오르는 제 마음속 하나의 기둥이에요!! 오늘은 제가 받은 응원보다 더 큰 응원을 드리고 싶네요!!"
저는 사실 그 댓글을 쓴 게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런데 제가 과거에 했던 위로가 더 큰 위로가 되어서 돌아온 것 같아서 너무너무 힘이 되고 감사했어요. 지금도 리추얼 방은 제가 뭔가 억울한 일, 서글픈 일을 당하면 달려갈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곳이기도 해요.

Q. 밤박하님이 생각하는 리추얼은 어떤 것인가요?
저에게 리추얼은 하루를 재편집 하는 시간이고 제 삶의 주도성을 찾아오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Q. 다른 메이트들에게 ‘육아일기’ 리추얼을 소개한다면?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인’이 되는 게 싫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육아를 하면서 오히려 주체적으로 변했고 많은 사람과 연결되었어요. 대부분 육아일기를 쓰면서 아이 위주의 기록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육아하는 양육자’ 자기 얘기를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육아일기 리추얼은 아이라는 매개체로 공개했을 때 판단 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육아일기 리추얼에는 일기를 쓰는 양육자들의 여러 가지 고민과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있으니 ‘육아인’의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지난 시간의 밤박하님이라고 생각해요. 리추얼을 쌓아가며 기대하는 밤박하님의 모습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저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육아는 삶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기는 원래 부모를 닮게 태어나잖아요. 보니도 벌써 완벽주의 같은 게 있어서 스티커를 붙일 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완벽하게 붙이려고 해요. 그러다 실수해서 비뚤어지거나 찢어지면 속상해하며 우는데 그게 너무 저 같은 거죠. 저의 단점이 아이의 삶에 예견된 부분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육아를 계속 잘하는 방법은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하는 선택들이 좀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가고 좀 더 가치있는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가 엄마는 결국 더 가치있는 것을 선택하는구나, 더 사랑하는 방법을 선택한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박하님의 이야기는 꼭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이 읽어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삶의 편집권은 나에게 있으니 가끔은 부족한 부분보다 나의 좋은 것, 작지만 반짝이는 부분을 기록해 두며 나에게 좋은 것을 계속 심는 시간은 내가 나답게 지낼 수 있는 힘을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함을 드러내도 좋은 안전한 공간인 밑미에서 나다움을 충전할 수 있는 리추얼을 꼭 경험해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