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할 때도 리추얼이 있으면 일상을 지킬 수 있어요.” 혜민의 리추얼 이야기

interview by 소하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할 때도 리추얼이 있으면 일상을 지킬 수 있어요.”
Q. 혜민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달리기를 좋아하는 5년 차 러너이자 상민님에 이어 ‘달리기 & 글쓰기’ 리추얼 메이커를 하고 있는 생기 있고 단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혜민입니다.
Q. 밑미 리추얼을 어떻게 알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달리기를 막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혼자 가볍게 10분, 20분 이렇게 뛰었어요. 혼자서 계속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달려줄 사람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꾸준히 나를 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코로나 시기기도 해서 온라인 인증을 하는 곳을 찾다가 밑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하고 좋아하게 되신 거예요?)
달리기를 시작했던 건 마음이 힘들어서였어요. 달리기하기 전엔 마음이 힘들고 불안한 느낌이 있어서 빨리 벗어나려 심리 검사도 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봤어요. 그중 문장 채우는 검사에서 ‘나는 ____할 때 불안하다’라는 문장에 ‘나를 잃어버렸을 때 불안하다’라고 썼더라고요.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게 불안을 가져오고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 뒤로 달리기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생기면서 나를 믿는 힘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여러 상황에 흔들거렸다면 지탱할 수 있는 뿌리가 생긴 느낌이더라고요. 이런 느낌 덕분에 달리기가 좋아졌고 계속하고 싶어서 함께 달리기할 사람들을 찾으면서 밑미에 오게 되었어요.

Q. 달리기가 혜민님을 굳건히 잡아주는 뿌리 같은 것이라니 생각만 해도 든든한 듯해요. 22년부터 지금까지 리추얼을 계속하면서 스스로 느끼는 변화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나요?
리추얼을 하면서 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은 편안함과 여유, 힐링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극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잔잔한 여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리추얼을 하기 전에는 저의 이런 부분을 잘 몰랐었어요. 작년 ‘오프더레코드’ 전시에 낼 기록을 정리하면서 리추얼 기록을 쭉 읽어보는데 마음의 편안함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었고 다른 메이트님들도 제 글을 읽으면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해진다는 댓글도 많이 남겨주셔서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리추얼 기록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이야기도 남길 때가 있어요. 나중에 리추얼 기록을 읽어보니 편안한 무드의 작품들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리추얼 기록을 통해 취향에 대해서도 정리를 할 수 있었네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를 잃어버린 시간에서 점점 뚜렷한 혜민님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밑미 리추얼 하기 전에는 모호한 무채색이고 특징 없는 사람이었다면 기록하면서 나만의 색이 생겼다고 느껴졌어요. 아직 더 알아봐야겠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뚜렷해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달리기하고 기록하는 것이 계속 나랑 마주하는 일인데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니까 어떤 상황에서 싫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발견하면 저에게 묻고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이런 것들에 대해 저한테 질문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감정에 대해 질문하다 보면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Q. 나에 대해서 더 많이 발견하신 혜민님,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하셨지만 리추얼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가능할까, 싶어요.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꿀팁이나 방법이 있다면요?
무언가 지속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것은 재미라고 생각해요. 제가 달리기 리추얼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의 연결감이었던 것 같아요. 밑미를 표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느슨한 연대, 다정한 사람들’ 이렇게 많이 표현하잖아요. 저에게 큰 의미였던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나의 기록을 쏟아내고 끝나는 것이 아닌 서로 댓글을 달아주는 것이 정말 좋아요.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이라 어색하지만 리추얼을 지속하면서 모르는 사람이어도 우리가 같이 달리기 리추얼을 하며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고, 서로의 달리기를 좋아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 되게 좋더라고요. 이게 일반 달리기 크루와 다른 점인 것 같아요.
(리추얼 메이트들과 만나서 달리기를 함께하신 적도 있나요?)
종종 만나서 함께 달려요. 보통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의 페이스에 맞춰서 같이 뛴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천천히 뛰어요. 온라인에서 글로 서로 응원을 주고받기도 했고 선언 미팅이나 회고 미팅에서 얼굴을 한 번씩 본 사람들이잖아요. 오프라인으로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달리기 리추얼을 하면서 좋은 것은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에요. 달리는 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달리는 속도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죠. 그리고, 일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회적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달리는 순간에는 오직 '살아 움직이는 나 자신'만 남게 되는데, 그때 저는 자유를 경험해요.
Q. 혜민님의 리추얼 도구들도 궁금해요. 달리기할 때 필수로 꼭 함께하는 도구나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세요?
러닝화는 2개인데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핑크색이에요. 옷에 맞춰서 신발을 골라 신고 나가는 편이고 요즘에는 러닝 벨트를 꼭 챙겨요. 예전에는 항상 핸드폰을 들고 뛰었었는데 러닝 벨트를 한번 써보니까 손에 아무것도 없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어떻게 핸드폰을 들고 뛰었나 싶어요. 그리고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뛰어서 이어폰까지가 달리기하는데 저의 필수품이에요.

(달리기할 때 꼭 듣는 플레이 리스트 혹은 몰입이 잘 되는 음악이 있으세요?)
여러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그중 항상 1등은 위켄드의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라는 노래예요. 뛰지 않을 수 없는 비트의 노래라서 달리다가 진짜 힘들다고 느껴지거나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 음악의 힘을 빌려 뛰어요. 저에겐 이 노래가 힘이 나게 해주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들어도 힘이 나지 않는다면 달리기를 중단해요. 이 노래를 들었는데도 달리기가 안 되는 날이면 내 몸이 지금은 힘들구나 인정해 주고 천천히 뛰거나 걷기도 해요.
Q. 치어리더로 시작해 최근에는 메이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혜민님이 메이커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상민님이 메이커를 하실 때 꽤 오랜 기간 치어리더가 없었다가 작년 가을부터인가 치어리더 제안을 받아 지금까지 했어요. 달리기 & 글쓰기 리추얼은 워낙 댓글이 많이 주고받고 있던 터라 치어리더를 한다고 크게 변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메이트였을 때보다 더 댓글을 잘 달아야겠다는 마음과 소속감 같은 것도 느껴졌던 것 같아요.
(메이커 제안을 받고는 어떠셨어요?)
일단 저에게 제안을 주신 것에 감사했어요. 그와 동시에 내가 해도 되는가와 내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어요. 상민님은 다양한 활동을 하셔서 인지도가 있는 분인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잘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었지만 밑미를 제가 좋아하니까 리추얼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밑미의 한 공간을 제가 이끄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달리기 리추얼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저 같은 경험을 사람들이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평소에도 달리기 전도사라고 사람들에게 달리라고 알려주는 것을 많이 해서 메이커를 결정할 때 그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Q. 좋아하는 달리기와 메이트님들 덕분에 용기 낸 혜민 메이커님, 리추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말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정말 많아요. 그중에 좋았던 것은 제가 남긴 댓글이나 제 인증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제 댓글이 많은 힘이 되었다는 말이 저에게도 힘이 되더라고요. 제가 쓴 댓글이나 리추얼 글을 본인 리추얼 글에다 쓰기도 하고요. 제가 응원을 남겼는데 저에게 응원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Q. 혜민님이 생각하는 리추얼은 어떤 것인가요?
달리기 리추얼은 내 일상을 지탱해 주는 뿌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무기력해지더라도 리추얼이 있으면 일상이 지켜지더라고요. 반대로 제가 너무 힘들거나 무너져 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달리기를 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그런 상태를 발견하면 다시 달리기하면서 일상을 찾아가요. 리추얼은 저를 잡아주는 뿌리 같은 것이에요.
Q. 다른 메이트들에게 ‘달리기’ 리추얼을 소개한다면?
달리기나 기록을 일상으로 들여놓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제가 달리기 리추얼로 좋은 변화를 경험했기에 좋은 것들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어요. 참여하시면 같이 응원하고 다정한 힘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지난 시간의 혜민님이라고 생각해요. 리추얼을 쌓아가며 기대하는 혜민님의 모습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올해 초에 단정한 일상을 꾸려나가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단정한 일상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잘 일하는 것이에요. 단순한 것 같지만 지키는 게 되게 어렵더라고요. 조금만 일에 파묻혀 있어도 금방 흔들리게 돼요. 일상이 흔들리는 것은 좋지 않으니 그런 때에 저를 꺼내주는 게 달리기와 기록이 있는 리추얼인 것 같아요. 리추얼로 일상을 계속 꾸려갈 수 있으면 좋겠고 아직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이 많다고 생각해요. 계속 기록하면서 나다운 모습을 잘 알게 되면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하는 용기를 실천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속하고 싶어서 시작한 밑미 리추얼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점점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고 삶이 선명해진다는 혜민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방법들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때에 불안한지, 나에게 자주 질문하고 알아가는 시간만큼 나를 잘 키워내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조금 더 선명한 나를 알고 싶다면 리추얼을 함께하며 각자를 잘 키워가자고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