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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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인터뷰2023.08.17 · 읽는 데 16

"내 안에 자꾸 맑은 물을 부어주려고 해요. 나를 좋아하니까." 밑미홈지기 은아

안녕하세요. 밑미홈지기 인터뷰 두 번째!(*밑미홈지기는, 밑미홈에서 머물면서 날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방문하는 분들을 환영하는 역할을 하는 밑미 커뮤니티의 치어리더예요.) 오늘은 밑미홈지기 은아님을 소개해요. 은아님은 지난 7월 말 열린 <나도 날 잘 몰라> 애프터파티에 참여했을 만큼 밑미와 리추얼에 대한 애정과 다정한 에너지가 남다른 분이에요. 그런데 은아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은아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오히려 힘들던 시절도 있었더라고요. 그런 은아님이 어떻게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다정하게 변하게 됐을까요? 은아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봐요!

🍊 은아님을 5글자로 소개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저는 ‘내가 참 좋은 나’ 은아에요.

뭘 좋아하면 궁금한 것도 생기고 잘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해주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잖아요. 전에는 나의 못난 부분이 더 크게 보여서 자책하고 질책하는 마음이 크고 제가 싫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그냥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괴로울까?’ 생각하니 새로운 사실이 보였어요. 좋아하니까 괴로웠던 거예요. 내가 좋은데 계속 싫어한다고 여기니까 마음속 깊이 있던 저의 목소리가 ‘왜 자꾸 싫다고 말해’ 하면서 불쑥 튀더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인정을 했어요. 그러고 나선 스스로에게 ‘내가 참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 좋은 일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 저는 은아님이 처음부터 다정한 기운이 가득찬 분인 줄 알았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따듯하게 인사해주시고, 밑미홈에서 밑미팀을 만나면 안부를 물어주시고요. 그런데 점차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언젠가를 계기로 크게 변화하신 것 같더라고요. 제가 만나기 전의 은아님 이야기가 궁금해요.

☺️ 작년까지만 해도 지금과 매우 달랐어요. 지난 12월의 저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뭐랄까 굉장히 마음이 얇고 퍼석해진 상태였거든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직책을 꽤 오랜 기간 맡아서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 한 켠에 버거운 마음이 쌓였던 것 같아요. ‘내가 리드를 잘 해줬어야 되는데,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되는데’ 자책하면서 제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좋은 면들이 책임감에 많이 짓눌렸어요.

어느 날 퇴근했는데 집이 엉망인 거예요. 방 하나에 온갖 잡담한 물건들이 창고처럼 잔뜩 쌓여 있고, 싱크대에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바닥은 먼지 구덩이이고… ‘이런 엉망인 집에 퇴근하고 한밤중이 돼서 들어오다니 내가 잘못 살고 있구나. 이게 지금 정상적인 생활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해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러고 그때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모두 마치고 그만둔 게 딱 12월 31일이었어요.

내가 지금 왜 이러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에 1월 1일부터 스스로 쉼표를 찍고 밑미 리추얼을 시작했어요.

22년 11월, <하루 한 줄 문장메모> 리추얼 하면서 적은 문장이에요. 제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가 담겨 있는 문장이라 한동안 품고 다녔어요. 문장 쪽지는 이만~큼 모여 지난 5월, 유리병에 담아 밑미홈에 가져다 두기도 했답니다.

🍊 많은 분들이 직장에서 번아웃을 겪고 밑미를 찾아와요. 은아님도 그러셨군요.

☺️ 사실 일할 때에도 밑미 리추얼을 계속 시도했었어요. 근데 그때는 리추얼을 프로젝트처럼 했던 거 같아요.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막상 해내야 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죠. 못하면 또 자책하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프로젝트처럼 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그냥 나에게 귀 기울여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임채원님의 <10분 명상&작은 성취>로 시작했어요. 하루에 딱 10분 나에게 집중해보면 거기서부터 무언가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선언미팅에서 채원님이 해 주셨던 얘기가 제가 변화하는 큰 계기가 됐어요.

제가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퇴사했고 지금은 무거웠던 관리나 책임의 옷들이 맞지 않아서 내려놓고 올해 1월부터는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때 채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떤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 앞에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눈에 가끔 그려질 때가 있는데, 은아님이 그래요. 무언가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자각하는 것도 굉장히 큰일인데, 맞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그 옷을 벗고 내려놓는 것은 굉장히 큰 용기예요. 근데 은아님은 이미 그 용기를 내고 옷을 벗었고 자기한테 맞는 옷을 다시 입으려고 이 자리에 왔잖아요. 그 자체가 커다란 날개가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될 거예요.” 그러면서 응원한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나의 결심이 틀리지 않았구나. 잘못되지 않았구나.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잘 가면 그 응원의 말처럼 언젠가는 나한테 좀 가까이 가 있겠구나’라고 힘을 얻었어요. 명상을 하면서는 잠깐 동안도 오롯이 내 숨소리에 이렇게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매일 아침 집중명상을 했어요. 그 시간이 저에게는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세상이랑 나 사이에 한번 작게 띄어쓰기를 했달까요.

🍊 그러고 나서는 <나를 껴안는 글쓰기><타이핑 필사&에세이 쓰기><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하루 한 쪽 외면 일기>와 같은 글쓰기 리추얼을 계속 하셨어요.

☺️ 읽고 쓰는 행위가 제게는 마음의 기지개 같아요. 쓰기 전에는 두렵지만, 무언가 키워드 삼아서 몰입해서 쓰고 나면 다 썼다는 뿌듯함과 함께 그 키워드에 대한 내 마음의 어느 한 챕터가 명료해진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아져요. 달리기나 요가하고 나서 머리가 청량해지는 느낌 있잖아요. 글을 쓰고 나면 그런 기분이 들어요. 마음 한켠에 쭈글쭈글 쪼그라들었던 게 쫙 펴진 느낌. 그래서 마음의 기지개라고 해요.

그런데 저도 밑미 리추얼 하기 전에는 글이라고 하면 완성도 있게 써야 하고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글쓰기 리추얼도 글을 써보자는 생각보다도, 명상을 하고 나서 떠오르는 감정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였어요. 2월에 슝슝님의 <나를 껴안는 글쓰기>, 그리고 3월부터 5월까지 현요아 작가님의 <타이핑 필타&에세이 쓰기>를 했어요. 제 안에 떠오르는 감정들을 일기처럼 적기도 하고 책의 한 구절을 마중물 삼아서 제 생각을 에세이로 적어봤죠.

저한테는 읽고 쓰는 시간이 제 내면의 어떤 것들을 흘러가게 하는 시간이더라고요. 전에는 물을 담아놓은 통에 먼지나 불순물 같은 게 막 끼면 그릇이 망가진 것 같아서 퍼내고 바로잡으려고 전전긍긍했다면, 4개월 정도 리추얼을 하고 나니 퍼내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퍼내지 않아도 맑은 물을 계속 끼얹어 주면 무언가가 계속 흘러가면서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겠구나, 다시 맑아질 수 있겠구나 깨달았죠. 요가하고 산책하고 명상하고 읽고 쓰면서 나에게 맑은 물을 계속 퍼 넣고 어떤 것들을 흘려보내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4월에 열렸던 밑미책방이었어요. 그때 제가 보리님의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 리추얼이랑 현요아님의 <타이핑 필타& 에세이 쓰기> 리추얼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요.

🍊 ’작정하고 써보자’였네요(웃음)

☺️ 네(웃음). 지금 나한테 몰입할 때라고 생각해서 쓰기에 굉장히 몰입을 했는데, 그때 밑미팀에서 밑미책방이라는 행사를 여니 원하는 분은 에세이를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전이라면 쉽게 참여를 못했을 거예요.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거든요. 근데 사실 ‘가나다라’만 알면 쓰잖아요. 밑미 리추얼을 하면서 내가 나를 너무 높은 벽 안에 가두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못 쓰겠으면 못 쓰겠다고 마음을 솔직하게 썼을 때 다정하게 응원해주는 댓글들을 받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잘하는 것보다 그냥 해보려는 마음이 생겼죠. 그래서 처음 퇴사를 결심했던, 엉망이었던 방을 1월 1일부터 2주에 걸쳐서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고 서재로 만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쓴 에세이를 밑미책방에 냈어요.

그리고 밑미책방이 열리는 날, 구경을 왔어요. 집에서 밑미홈까지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 걸려요. 차를 타고 왔어도 되는데 그날은 특이하게 사람들 틈에 섞여서 오고 싶은 거예요. 사실 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가거나 사람들 틈에 있을 때 사람들 말소리가 너무 괴로워서 이어폰을 끼거나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형태의 행동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날도 ‘사람들 많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면서 탔는데, 홍대입구역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풍경이 탁 트이는데 주변에 앉아 있는 분들이 하는 얘기도 들리고 표정도 보이더라고요. 이어폰을 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나 모습, 세상에서 보는 풍경 같은 걸 긍정적인 마음이나 다정한 시선으로 보게 됐어요. 그때 제가 변화했다는 걸 결정적으로 실감했죠.

그리고 밑미홈에 딱 도착했는데 2층 테이블에 있던 제 글을 어떤 분이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시는 거예요.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내 이야기가 어떤 분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구나’ 뿌듯함과 함께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전 처음 느끼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 밑미책방에서의 내 글에 달린 댓글과 밑줄

제가 쓴 이야기로 사람들 앞에 나아가 보고 그거를 함께 응원받는 걸 직접 목격하는 데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주체적인 기쁨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러고나서 옥상에 올라갔는데 평소 온라인으로 글을 나눴던 리추얼 메이트들이 보이는 거예요.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보는 건데도 마음으로 반갑고 즐거웠어요.

그 시간 덕분에 ‘내가 나를 돌보면서 나한테 다정하게 대하다 보면 바깥을 보는 시선이나 태도도 바뀌는구나. 나한테 좀 여유를 주고 숨을 쉬게 해주면 그제서야 보이는 풍경이나 시선들이 있구나’ 느꼈어요. 내 마음이 너무 캄캄했을 때는 바깥을 볼 여유도 없고 봐도 삭막한 것들만 보였는데, 이제는 주변도 긍정적이고 다정하게 볼 수 있게 됐어요. 그쯤 밑미홈지기 모집글을 봤는데요, 집을 나와서 도착하는 곳이 밑미홈이라면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또 다른 기쁨과 반짝이는 것들이 쌓여서 또 다른 에너지 원동력이 되어 흐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꺼이 지원을 했죠.

🍊은아님은 <나도 날 잘 몰라> 애프터파티에서 스스로를 ‘사람을 좋아하는 내향인 은아’라고 소개했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 사실 제가 엄청난 집순이인데요, 밑미홈지기를 하면서 저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됐어요. 저는 내 안에 침잠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완전히 내향인인 줄만 알았는데, 밑미홈에 온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에게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저에겐 ‘혹시 몰라서 병’이 있어요. 그래서 초기에 밑미홈 올 때에는 뭘 이것저것 많이 가져왔어요.

은아님이 <나도 날 잘 몰라> 애프터파티에서 소개한 자신의 리추얼 기록물

🍊 아, 책이나 뜨개용품 가져오시는 걸 자주 본 것 같아요.

☺️ 전에는 더 많이 가져왔어요(웃음). 이것도 해야 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다 갖고 와서는 결국 오시는 분들을 그냥 바라보게 돼요. 밑미홈에 오시는 분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요. 어떤 공간인지 알고 오시는 분들이랑 팝업스토어나 카페인 줄 알고 친구랑 놀러 오신 분들. 알고 오시는 분들은 대체로 수줍게 들어오셔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굉장히 행복해 하세요. 그냥 오신 분들은 대개 쓱 둘러보고 나가시는데요, 그중에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면서 ‘이런 곳을 왜 무료로 제공해요?’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세요.

🍊 맞아요. 간혹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세요(웃음).

☺️ 그런 분들은 모르고 왔어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조용히 나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오래 머물고 가세요. 책을 읽다가도 그런 분들을 보면 제가 자꾸 다가가고 말을 걸게 되더라고요.

밑미홈지기 반상회에서 만든 진(zine)이에요. 밑미에서 얻은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요.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잘하려고 한 발씩 나아가고 용기를 내서 바깥으로 나오고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절로 응원하게 돼요. 그게 다른 사람을 응원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응원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분들의 모습이 제 안에도 차곡차곡 쌓여서, 제가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삶의 어떤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밑미홈에서 제 시간에 집중할 때도 있지만 사람이 적은 날에는 오시는 분들에게 더 많이 말을 건네고 싶고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러면 밑미홈에서 만난 분들 중 인상깊은 분이 있나요?

☺️ 한 커플이 떠올라요. 처음에는 굉장히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어오셔서 구경을 하시길래 제가 감정카드를 한번 해보라고 추천을 드렸어요. 연인이어도 속깊은 이야기는 잘 못하고 피상적인 얘기만 나누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밑미 감정카드는 서로 내밀한 면을 이야기하기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두 분이 자리에 앉아 감정카드를 하는데, 여자분이 펑펑 우시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뭔가 잘못됐으면 어떡하지. 두 분이 싸우고 나가버리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해 하고 있는데, 남자분이 여자분에게 몸이 자꾸 기우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여지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자분이 커피를 내리러 오셨길래 제가 넌지시 왜 그러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얘기를 나누다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린 것 같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초조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남자분이 여자분을 많이 생각하시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다시 감정카드 들고 가서 지금 나눈 감정을 어떤 감정으로 바꿨으면 좋겠는지 들어주고 그렇게 바뀌기 위해서 서로 어떤 표현을 자주 할지 이야기 나눠보고 잘 다독여주면 좋겠다고 얘기를 드렸어요.

🍊 우와, 거의 커플 카운슬러 역할을 하셨네요!

☺️ 그러니까요! 얼마 안 지나서 여자분 마음이 풀리는 게 보였어요. 그리곤 같이 오셔서 “아까 속상했는데 이제 괜찮아졌어요”하면서 제 손을 잡고 고맙다 하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때 지금 참 근사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것도 두 분이 용기를 내서 가능한 것이고, 서로에게 어떻게 발맞추어 갈지 이야기를 나눈 것도 두 분이 어떤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잖아요. 누군가의 내밀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귀하고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바깥에, 타인에게 문을 열었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은아님 내면에서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켰기에 큰 변화라고 느껴지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 그전에는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저의 힘든 이야기가 먼저 튀어나왔어요.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너의 그런 말 때문에 나 너무 힘들어’라고 저를 먼저 얘기하고 그래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일이 진척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둠으로 치닫곤 했어요. 그런데 내면에 집중하면서 내 감정도 있는 그대로 ‘내가 힘든 상태구나’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상대의 힘듦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 사람의 힘듦을 어떻게 하면 응원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사적인 이야기로는 최근에 아빠가 저랑 통화하다가 ‘너희 집에 놀러가고 싶은데 아빠가 가면 너 되게 아빠를 싫어하겠지?’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셨어요. 아빠의 농담을 듣고 순간 '아빠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니, 어떻게 농담으로라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화가 나는 걸 인지하고, 얼렁뚱땅 전화를 끊었어요. 아빠에게 표현은 하지 않았던 거죠. 예전 같았으면 감정이 떠오르는 대로 즉각 발산했을텐데, 안 좋은 감정을 인식하고, 일단 쉼표를 한 번 찍은거예요. 이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변화였어요.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해서 사랑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이렇게 한 템포 쉬고 제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면서, 제 숨구멍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거고요.

🍊 은아님이 다른 밑미홈지기 혜니님과 함께 밑미홈에서 열었던 <낮잠 시간> 비슷한 같아요. 성수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준비했다는 말이 감동적이었거든요. (은아님과 혜니님은 밑미홈지기를 활동하고 받은 대관권을 <낮잠 시간> 기획에 사용했다.)

어느 날 밑미홈에 와서 근처 카페에 갔는데, 제가 문 열기 전에 일찍 간 거예요. 그래서 벌컥 들어가서 ‘지금 스콘 돼요?’ 했더니 직원분이 깜짝 놀라면서 11시에 오시면 사실 수 있다고 하는데, 매장 뒤편에 앉아 계시던 직원분이 보였어요. 제빵하는 분 같았는데 좁은 주방 냉장고 앞에 힘없이 앉아 계시다가 제가 들어가니까 깜짝 놀라서 커튼을 탁 치셨어요.

바리스타로 일하고 또 카페 공간을 기획하던 때 생각이 막 났어요. 카페는 여름이 성수기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일찍 나와서 서서 힘들게 일을 하고 지금 이렇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조금 일찍 와서 다른 가게나 팝업스토어들도 둘러봤는데 오픈 전에 이미 줄이 서 있고 그 안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얼굴은 다 분주하고 바쁘고 땀이 막 송글송글한 거예요. 이전 같았으면 그분들 모습을 보면서 제 힘든 마음이 떠올라서 외면하거나 우울해졌을 텐데, 그날은 막 기운을 불어넣어드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혜니님과 함께 낮잠 시간을 기획했어요. ‘좋은 에너지를 우리 같이 나누자. 조금 더 여유를 갖자. 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자.’ 자꾸 이런 것들을 제안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 하는 얘기이기도 해요.

🍊 전에는 방어를 하면서 오히려 나를 꾸짖게 됐다면, 지금은 주변을 향한 관심과 다정함이 결국 나에게도 힘이 되는 거네요. 해방감도 드시겠어요.

☺️ 맞아요, 맞아요. 그게 저와 화해하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몰라요. 그러면서 저를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그 시절에 저도 안아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저도 그런 면이 있어서, 은아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정말 큰 공감도 되고 귀감도 돼요. 너무 좋네요. 그러면 은아님이 혼자서 하는 개인적인 리추얼도 있을까요?

☺️ 사는(living) 소리를 녹음해서 자기 전에 들을 때가 있어요. <사는 소리 녹음 목록>이라고, 1월에 퇴사하고 방을 치우기 시작할 때 먹는 것도 바꾸기 시작하면서 같이 시작된 리추얼이에요. 억지로 자극적인 것을 먹으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돼서, 배달 어플을 지우고 음식을 지어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종종 제가 밥 짓는 소리를 휴대폰으로 녹음했어요.

밥을 해 먹을 때는 그냥 신이 나서 양파도 썰고 야채도 썰고 막 해먹는데, 그걸 소리로 들으니 새롭더라고요.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쿵쾅쿵쾅 벽에 못질 하는 느낌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막 어떤 날은 밥을 다 하고 나면 제가 혼자 ‘우와’하면서 기뻐하는 소리를 내요. 그런 사소한 움직임을 듣고 나면 ‘나 오늘 사부작사부작 되게 열심이었구나. 오늘도 나한테 잘하려고 노력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될 텐데, 만만치 않은 책임감을 요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다시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 전에는 뭔가 녹음한다고 하면, 상대방과의 통화라던가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하기로 했던 것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면 이것을 증거로 삼아 가만두지 않겠다는 굉장히 송곳 같은 마음으로 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나한테 힘이 되는 소리를 녹음해놓자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 그래서 좋은 에세이를 읽으면 소리내어 녹음해서 다시 듣기도 해요. 조카랑 놀면서 가족끼리 꺄르르 웃는 소리 같은 걸 다시 들으면 그게 또 저에게 원동력이 되고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 지난번에 은아님이 제게 문자로 좋은 꿈만 꾸라고 하셨던 인사말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게 어디서 오는지 이제 알았네요.

☺️ 맞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요약하면, 여러분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여러분 마음에 계속 맑은 물을 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작은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저는 알람을 자장가로 맞춰 놨어요. 아침에 깜짝 놀라면서 일어나면 그다음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들이 연달아 오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편안하게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잔잔한 자장가를 하고, 그 소리가 잔잔히 들리면 이제 편안하게 일어나요. 그런 작은 것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해 놓아서 다시 잘 때 기분 좋게 하는 것, 환기하고 햇볕을 쬐는 것, 창문을 열어 계절을 느끼는 것, 그 찰나의 소중한 순간을 잔뜩 쌓아두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만만치 않은 순간이 왔을 때 여러분들의 그 만만치 않은 삶을 잘 건너갈 힘이 될 거예요.

이야기하고 나니 나에게 맑은 물 붓기, 마음의 기지개 같은 시간은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 행위와 시간이 떠오르나요? 모호하다면 밑미홈에서 은아님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좋겠죠. 은아님은 금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밑미홈에 있어요. 자장가부터 글쓰기, 사는 소리 수집까지. 스스로에게 맑은 물을 부으며 다정함을 나누는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밑미홈지기를 만나고 싶다면, 밑미홈에 놀러오세요!

🏡 밑미홈(서울숲길 44) 2층

⏰ 매일 오전 10시~오후 9시

✅ 매주 운영시간이 조금씩 달라져요. 방문 전에 밑미홈 인스타그램(@at.meetmehome)으로 운영시간을 꼭 확인해주세요!

함께 나눈 이야기

7

기존 밑미 사이트에서 옮겨온 이야기예요. 회원 정보를 옮기기 전이라 쓰신 분의 이름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 2023.08.184

    "내가 나를 돌보면서 나한테 다정하게 대하다 보면 바깥을 보는 시선이나 태도도 바뀌는구나" 너무 좋아요. 저도 연습해야겠어요

  • 2023.08.184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고 이렇게 멋지게 소개까지 해주신 밑미팀🧡 정말 감사드려요. 삶이 때때로 정말 만만치 않지만, 밑미 덕분에 다정함을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 더위가 기승이네요! 부디 지치지 마시길! 저의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여 주신 모든 분들께 응원을 전합니다.

  • 2023.08.183

    은아님이랑 얘기하면 긍정 에너지 마구 솟아날 거 같아요. 그나저나 아침 레코딩 너무 좋네요 🤭

  • 2023.08.191

    흐앙 질문도 답변도 하나하나 다 너무 좋아서 오래 머물렀어요🥹🥰 은아님의 초롱초롱 따뜻한 눈으로 얘기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저는 집에서 직접 식사 준비하고 끼니 챙기는 걸 어려워하는데, 은아님의 사는 소리 녹음 리추얼 너무 멋져서 갑자기 당장 뭐라도 해먹어보고 싶어졌어요!🤗 ㄲㅑ 꼭 해보고 후기 들려드릴게요. 딱 지쳤을 때 읽게 된 이 소중한 글,,,밑미팀도 은아님께도 감사합니다...🌷

  • 2023.08.211

    은아님의 글 너무 소듕해요 고마워요 :) 맑은 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정히 나눠주셔서!

  • 2023.08.221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맑은 물이 가득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따뜻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 2023.08.28

    이런 밑미 리추얼을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학교 다닐때는 입시에만 포커스를 두다보니 나에 대한 탐구를 하기 어렵잖아요 ㅜ

이 글을 읽고 나서
비워둘 30분, 오늘부터 만들어볼까요?

이 글과 맞닿은 리추얼을 준비하고 있어요. 14일 코스, 누른 날이 1일차예요.

준비 중
나 리추얼 — COMING SOON
14일 · 오늘 시작 가능 예정
밑미레터

매주 월요일 아침 6시 편지를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