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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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인터뷰2025.02.07 · 읽는 데 10

“무색무취인 줄 알았던 일상의 다채로움을 알게 되었어요.” 베라의 리추얼 이야기


interview by 소하

“무색무취인 줄 알았던 일상의 다채로움을 알게 되었어요.”

PART 1. 리추얼을 알게 되고 시작한 이야기

Q. 베라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감정일기로 밑미 리추얼을 시작해 현재 6회째 이어가고 있는 베라입니다. IT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어요.

Q. 밑미 리추얼을 어떻게 알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밑미는 손하빈 대표님이 에어비앤비를 다니다가 밑미를 창업했다는 글을 보고 알게 됐어요. 그때는 리추얼을 하지 않았고 작년 2월쯤 번아웃이 심하게 오면서,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어 과외, 투자 커뮤니티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심리 상담도 받고 밑미에서 감정일기 쓰기 리추얼도 시작했어요. 다른 것들은 한두 달 만에 그만뒀는데, 감정일기 리추얼만은 계속하고 있어요.

Q.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것을 배우려 시도하시는 것을 보면 베라님은 배우고 성장하는데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밑미의 다양한 리추얼 중에 감정일기 쓰기 리추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다양한 리추얼 중에서 달리기나 글쓰기 리추얼이 재미있어 보였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감정일기 리추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리추얼 소개글 때문이에요. 메이커 수은님이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을 오래 했고, 아이를 돌보듯 우리 마음을 보살피자는 문구가 와 닿더라고요.

당시 자주 하던 고민이 있었어요. 다섯 살 딸을 키우면서, 저는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며 늘 예쁘고 좋은 말을 해주려 노력했지만 제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더라고요. 그때 ‘아이를 돌보듯 내 마음을 돌봐준다’는 문구 덕분에 감정일기 리추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어요.

PART 2. 감정을 기록하는 일, 변화한 것들

Q. 모든 어른들에게 그런 시각은 필요한 것 같아요. 남들에게, 아이에게만 잘하려는 내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하기가 쉽지 않은 듯해요. 베라님은 리추얼 이전에도 일기나 기록 같은 것을 잘하시는 편이었나요?

기록은 자주 했지만 감정에 대한 일기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어요. 대부분 이건 부족했으니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 다음 커리어 패스는 이쪽으로 가야지, 이직을 준비하려면 뭘 배워야 하지? 같은 계획 위주의 기록이었어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써본 적은 없더라고요.

(저는 일기를 쓰는 편인데도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처음 감정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베라님은 감정 기록을 처음 하실 때 어색하거나 어려운 부분은 없으셨어요?)

처음엔 감정을 들여다보는 게 잘 안돼서, 그냥 일반적인 일기를 썼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한 일들을 나열했는데 수은님이 하루의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을 찾아보자고 가이드를 주셨어요. 처음에는 매일 똑같이 ‘힘들다’, ‘피곤하다’ 같은 감정만 있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쓰다 보니 점점 다른 감정들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힘든 하루 속에서도 ‘뿌듯했다’, ‘즐거웠다’, ‘기대됐다’ 같은 감정들을 발견하고 기록했어요. 감정일기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리추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 책 읽는 것 외에는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도 없고, 스스로를 ‘무색무취의 사람’, 그래서 일과 육아에 특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일기를 쓰면서 나는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이런 게 재미있어하는구나 발견하게 됐어요. 똑같이 힘든 하루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조금이라도 했다는 사실이 버텨낼 힘을 주더라고요.

Q. 무색무취의 사람이 유색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 중이시네요. 베라님이 스스로의 변화를 느낀 만큼 주변 분들도 베라님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궁금해요.

작년 11월, 전적을 한 이후로 꽤나 힘들었어요. 원래는 일에 열정적이고 여러 가지를 주도적으로 시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주어진 일만 하기에도 벅차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런 저를 보던 친구들이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까지 말했어요.

그러다 감정일기를 반년 가까이 쓰고, 어느 날 친구와 밥을 먹는데 저도 모르게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막 이야기했나 봐요. 친구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저를 바라보더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 1년이 걸렸네"라고 하더라고요. 또 다른 친구도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해줬어요.

저도 스스로 변화를 느껴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고, 이전에 관심이 없었던 동료들의 고통에도 더 신경 쓰게 됐어요.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말랑해진 것 같아요. 최근 팀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팀에서는 제가 공감도 잘하고 감정적인 면을 자주 보여서 그런지, 극 T라고 해도 안 믿더라고요. ㅎㅎㅎ

Q. 단단하면서 말랑해진 베라님이시군요. 밑미 리추얼을 하면서 리추얼 프로그램이 오픈되지 않을 때에는 혼자서도 리추얼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혼자 하는 리추얼과 밑미에서 메이커, 치어리더, 메이트와 함께하는 리추얼의 다른 점이 있었나요?

작년 연말, 수은님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를 했어요. 감정일기를 훑어보면서 매달 느꼈던 대표적인 감정을 정리하고, 100점 만점 기준으로 각 달의 점수를 매겨 그래프를 그려봤어요.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니 중간중간, 수은님이 안식월로 밑미 리추얼을 쉬었던 시기에 제 감정 점수들이 확 낮아졌다는 걸 발견했어요. 수은님이 감정일기를 계속해 주셔야 제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더니, 수은님이 웃으시더라고요.

(혼자 감정일기를 쓰는 것은 많이 어려우셨어요?)

혼자 못 쓰는 건 아니지만, 같이 쓸 때보다 확실히 동력이 떨어지더라고요. 혼자 하면 훨씬 적게 쓰게 되기도 하고요. 선후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감정일기를 안 쓰는 달은 유난히 더 바쁘고 여유가 없기도 했어요.

저는 규칙이 있으면 잘 따르는 편이라, 일주일에 세 번 쓰는 리추얼의 규칙이 도움이 됐어요. 메이트들이 열심히 하고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이면 저도 영향을 받아서 댓글을 한 줄이라도 더 남기게 되고, 한 번이라도 더 쓰게 되더라고요.

감정일기 리추얼에는 너무 행복하거나 즐거운 사람들보다는 번아웃, 우울증, 가족 관계로 인한 고민처럼 힘든 분들이 많이 오세요. 그래서인지 수은님이 회고 미팅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서로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주시는데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러다 보니 다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한 번 더 들어가 보게 되고, 제 소식을 전하려고 일기를 쓰기도 해요.

PART 3. 리추얼을 지속하는 나만의 방법

Q. 밑미 리추얼은 같이 하는 힘을 매번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워킹맘이신 베라님은 리추얼을 하루 중 언제, 어떤 순서로 하는지 베라님만의 리추얼 방법이 궁금합니다.

회사와 집이 멀어서 출퇴근길이 지하철로 편도 2시간이 걸려요. 처음에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감정일기를 썼는데, 나중에는 피곤하고 일이 많아지면서 그 시간을 지키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그 후로는 아예 "정해진 시간에 써야 한다"는 틀을 없애고, 생각날 때마다 쓰기로 했어요.

퇴근길 택시에서 쓰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나 짬이 날 때 화장실에서 핸드폰에 키워드만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내용을 덧붙이기도 해요. 새벽에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두세 장씩 길게 쓰는 날도 있고요. 형식을 정하지 않으니까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오래 쓸 수 있더라고요.

저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해요. 출퇴근 시간도 길어서 아침 9시에 나가면 새벽 2시에 집에 오다 보니 출근 전 새벽에 써야지 또는 퇴근 후 써야지라고 규칙을 정하면 결국 못 쓰게 되더라고요. 감정일기를 제 삶에 어떻게든 집어넣으려다 보니 오히려 규칙이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밑미 리추얼을 신청하기 전에 리추얼을 하려면 따로 시간을 빼야 하는데, 지금은 여유가 없으니까 좀 더 나아지면 해야지 하며 미뤘어요. 그런데 너무 힘드니까 뭐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급하게 신청했거든요. 다른 분들도도 리추얼을 위해 시간을 일부러 낼 필요 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Q. 바쁜 직장인이나 워킹맘들에게는 베라님의 리추얼 방식이 꿀팁일 것 같아요. 감정일기는 핸드폰 기본 메모장에 기록하시나요? 따로 쓰는 어플이 있는지, 월마다 있는 회고 미팅 때에는 어떻게 일기를 살펴보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메모들과 섞이지 않게 리추얼용 메모 앱을 따로 사용하고 있어요. Capacities라는 앱인데, Daily Notes를 쉽게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앱의 캘린더에서 점이 찍힌 개수를 보며 "이번 달엔 이만큼 썼구나" 확인할 수도 있고요.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좋은데 다시 보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수은님이 회고 미팅 때 어플에 적은 걸 프린트해서 공책에 붙여보라고 추천해 주셨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회고 미팅은 어때요? 이전에 감정일기를 쓰지 않았었기에 매달 나의 감정을 되짚어보는 시간도 색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회고 미팅에서 이번 달을 돌아보면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어요. 혼자 감정일기를 썼다면 다시 보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의 일기를 읽다 보면 ‘이번 달 내내 힘들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서도 이런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네?’ 같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돼요. 상반기에 했던 고민을 하반기에 똑같이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아, 이 고민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요.

리추얼에서는 감정뿐만 아니라 욕구도 살펴보는데요. 처음 1~2주 차는 감정에 집중하고, 3주 차에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욕구를 탐색해요.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이런 욕구를 가지고 있구나’를 발견하게 되고, 발견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힘들겠다는 깨달음도도 얻게 돼요.

(감정일기를 쓴다는 것이 나의 감정을 자주 마주해야 해서 어려울 것 같은데 베라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느낌이 없어요.)

저는 새로운 저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수은님이 미팅 때 인용해 주신 말이 있는데, 감정을 돌아보는 일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해요.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들은 효율성을 위한 언어라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면,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대요. 빨리 갈 수도 없고, 험난하고, 느릴 수밖에 없다고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방식과 많이 달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Q. 일상이 바쁘거나 리추얼에 집중하기 힘든 날도 있을 것 같아요. 리추얼을 지속하는 나만의 방법 같은 것이 있을까요?

감정일기의 효용이 크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들다 라는 단어도 사실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잖아요.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 화가 난 건지, 체력적으로 지친 건지, 어떤 관계에서 외로운 건지, 이런 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 딸이 뭔가 불편한 표정을 지을 때, 저는 이유를 물어보곤 해요. 그런데 물어보는 것 자체가 관심의 표현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도 저한테 ‘지금 왜 이런 기분이지?’ 하고 물어보는 것이 나를 신경 쓰며 챙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큰 위안이 돼요. 심리 상담에서 상담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듯이, 저도 저 자신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는 거죠. 제가 저를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솔직할 수 있고요. 이런 과정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동안 리추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메이트나 메이커, 치어리더의 말이 있는지 궁금해요.

치어리더 서정님이 매번 정성스럽게 댓글을 남겨주세요. 그날의 일기만 보고 댓글을 쓰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내용을 기억하고 이어서 댓글을 달아주시더라고요. ‘지난번에 비슷한 부분에서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지신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요. 이런 응원 댓글을 받으면 관계성이 충족되는 느낌이 들어요. 고마움에 저도 다른 메이트들에게 댓글을 달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메이트의 일기에 댓글을 달면 좋겠지만, 그게 부담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한테 댓글을 달아준 메이트의 일기를 찾아서 댓글을 남기거나, 제가 인증글을 올린 날의 메이트 일기에만 댓글을 달기도 해요. 그렇게 조금씩 댓글을 달다 보면 부담감도 없어지더라고요.

Q.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지난 시간의 베라님이라고 생각해요. 리추얼을 쌓아가며 기대하는 베라님의 모습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나중에 이런 경험을 딸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엄마의 모든 일기를 읽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제든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엄마도 그랬어."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죠.

이 글을 읽고 나서
비워둘 30분, 오늘부터 만들어볼까요?

이 글과 맞닿은 리추얼을 준비하고 있어요. 14일 코스, 누른 날이 1일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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