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으면서 '나는 지금 왜 쥐를 잡고 있지? 내가 쥐를 잡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쥐를 잡을 뿐이죠.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에게는 목적과 의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목적이 있는지에 따라 인간이 취하는 삶의 양식 역시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 되어버렸을 때, 고통은 내가 무찔러야 할 적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원하지 않는 고통이 인생에 찾아왔을 때, 우리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의 하나를 선택하고는 합니다.

고통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방법은 더 숭고하고 큰 행복을 위해 고통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통스러운 수험 기간을 견뎌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성공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승진하고 성공을 하면 지금의 힘듦을 보상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면 우리는 성취감을 느끼고 고통의 대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의 크기가 크지 않을 때에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때입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고통을 감수했지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럴 때 선택 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고통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고 여기는 것이죠.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건 내 탓이 아니라, 나를 괴롭힌 상사 때문이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없어.'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태어나다니, 나는 정말 불운해."와 같은 식으로 문제의 원인의 외부로만 돌리고 스스로 희생자를 자청하는 거죠. 이때 우리는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넘겨주게 되고,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더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내 고통의 근원을 외부에 두는 이상,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을 테니까요.

인생에서 고통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첫 번째 정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인생에 고통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니체는 이를 '아모르 파티'라고 이야기 합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단순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행복, 성공, 기쁨만 있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상실, 고통, 실패를 경험합니다. 자연재해나 예상치 못한 사고처럼 삶의 우연성에서 비롯되는 불합리함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모르 파티는 자신의 인생에 그 어떤 결과가 찾아오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능동적으로 해쳐나가는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니체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늘 아팠고, 사랑하는 여자와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말년에는 정신병을 앓기도 했지요. 하지만 니체는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발휘해서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지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할수 밖에 없는 고통 앞에서 좌절하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담대한 정신, 그리고 그것을 딛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삶에 대한 의지를 기르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