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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가요?
심리 이야기2026.07.13 · 읽는 데 5

지금의 정답이 내일의 오답이라면?

모든 새로운 발견은 과거의 것을 의심한 결과

메이트, 우리가 지금 너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수많은 ‘진실’이 사실 과거에 진실이라고 불리었던 것들을 의심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굳게 믿었어요. 그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상식이자 진리였죠.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혹시 우리가 틀린 건 아닐까?’라고 질문한 순간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만나게 되었어요. 뉴턴의 물리학은 세상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작동하는지 설명해 주는 완벽한 진리로 여겨졌지만 아인슈타인의 의심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라는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죠.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이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불렀어요. 과거에 진실로 믿었던 것들이 새로운 발견들을 통해 의심되다 결국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죠.

비단 과학뿐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한 번 옳다고, 진실이라고 믿으면 잘 의심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확실하다고, 내가 옳다고 믿어야 더 안전하다고 느끼거든요. 내가 믿어온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믿음 위에 서 있는 나까지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요. 내가 믿는 것이 부정당하면 나의 존재가 부정당한다고 느끼면서 말이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어주는 것들

스웨덴의 승려였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그의 책에서 어느 날 밤 스승님이 알려준 '마법의 주문'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의 스승은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라고 이야기해요.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문을 세 번 반복하면 마음속의 수많은 근심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내 의견과 생각을 방어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내려올 수 있어요. 사소한 의견 차이가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커졌던 순간을 한번 기억해 보세요. 어느 순간부터 문제 해결보다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가 많아요. 생각이 곧 나라고 믿으면, 내 생각이나 내 믿음에 대한 반박은 내 존재에 대한 공격이 되니까요. 내 생각이 부정당하면 마치 자기 자신이 공격받고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내가 믿는 것,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려 하죠.

하지만 내 생각이 내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내가 틀려도 괜찮다는 것, 내가 틀린다고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생긴 틈으로 타인의 이야기가 들어오고, 새로운 배움이 들어올 수 있어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계속 자라고 변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모른 채로 머무를 수 있는 능력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고 나면, 우리는 한동안 어중간한 자리에 서 있게 될 수 있어요. 예전의 확신은 내려놓았는데 새로운 답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애매모호하고 불안한 시간이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을 못 견뎌서 서둘러 아무 확신이나 다시 붙잡아요. 그래서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살기 위해서는 모른 채로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시인 존 키츠는 불확실함과 의문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위대한 시인을 만드는 자질이라고 보았어요. 답을 서둘러 내리지 않고 모호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깊이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건 시인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에요. 삶은 원래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는 단순히 겸손한 척하는 제스처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는 마음의 근력에 가까워요. 그리고 근력이 그렇듯, 이 힘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거예요. 정답을 몰라도 무너지지 않는 경험,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나 자신이 부정당하지 않고, 세상이 끝나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모르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요. 확신으로 닫힌 마음은 안전해 보이지만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열린 마음은 불안해 보이지만 계속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어요.

오답의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 연습

불확실함을 견디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은 어떻게 키워질 수 있을까요? 오늘 밑미레터에서는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할게요.

첫 번째로, 내 의견 뒤에 '지금은'을 붙여보세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가 아니라 "나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해보는 거예요. 작은 말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들어요. 이렇게 언어로 여지를 주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열어두는 셈이 되거든요. 지금의 생각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앞으로의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 주는 거죠.

두 번째로, 나티코의 스승이 알려준 주문을 나의 일상에서 실제로 써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누군가와 부딪히려는 순간, 반박의 말이 목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에 마음속으로 세 번 반복해 보는 거예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 주문은 내 생각을 방어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내려올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마지막으로 내가 틀렸음을 발견한 순간을 축하해 보세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부끄러운 순간이 아니라, 어제보다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보게 된 순간이에요. '아, 내가 틀렸구나'라는 발견은 곧 '나는 배웠구나'라는 뜻이니까요. 인류의 지식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도약해 왔듯, 우리의 삶도 나의 확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마다 한 뼘씩 자라나요.

평생 한 번도 틀리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정답을 쥐고 멈춰 서 있는 삶보다, 오답의 가능성을 품고 계속 질문하며 걸어가는 삶이 훨씬 더 아름답고 충만하지 않을까요? 삶이 건네는 메시지에 문을 활짝 열어놓은 사람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되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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