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충만한 관계가 있나요?
참다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진정한 만남을 맺고 있나요?
메이트님의 일주일을 떠올려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나요? 가족과 친구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온라인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인연들과 자주 가는 카페나 편의점의 직원들까지, 정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 세상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볼게요. 메이트님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 중 ‘진정한 만남’은 얼마나 되나요? 독일의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 맺는 관계에는 ‘나와 너’의 관계 그리고 ‘나와 그것’의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와 너’의 관계 :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관계 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상대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적이나 의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대체할 수 있지만, ‘나와 너’는 서로에게 유일하고 대체될 수 없습니다.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로 관계 맺기
함께 보낸 시간과 가까운 정도가 ‘나와 너’의 관계 혹은 ‘나와 그것’의 관계를 정의해주지는 않습니다. 오랜 기간 만난 연인도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고 있다면 ‘너’가 아닌 ‘그것’으로 관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고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소유하려 들 때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또한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됩니다.
반면 만난 지 얼마 안 된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만할 수 있다면, ‘나와 너’로 관계 맺을 수 있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의 직업도, 나이도 심지어는 이름도 모르지만, 서로의 진심을 온전히 드러내며 진심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요? 아무리 짧은 만남이라 해도 이 관계는 ‘나와 너’의 만남이 될 수 있습니다. 부버는 인간이 참다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번 떠올려보세요.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많은 관계 중 목적성 없이 그저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만할 수 있는 관계가 있나요? 상대의 모습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그것’ 아닌 ‘너’로서 바라봐주고 있는 관계가 있나요? 나 자신과의 관계 역시 돌아보세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있나요? 아니면 자기 자신조차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며 나의 어떤 모습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족집게 과외처럼 방법을 알려주는 메뉴얼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그것’으로 관계 맺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인지하고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나와 그것’의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해져 왔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그것’이 아닌 ‘너’로 만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 : 도구적 관계입니다. ‘그것’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므로 더 좋은 ‘그것’으로 언제든 대체가 가능합니다.



